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작품해설
작가연보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페터 한트케 · Novel
138p

현대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페터 한트케의 소설. 페터 한트케는 보편적인 문학성에 반하는 실험적인 작품들로 항상 새로운 화두를 만들며 해마다 가장 유력한 노벨상 수상 후보로 지목되고 있다. 그의 소설은 통상적으로 '줄거리 없는 소설'이라 얘기되는데, 이 작품은 한트케가 1970년대 들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통적인 서사를 회복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한때 유명한 골키퍼였던 요제프 블로흐는 공사장 인부로 일하다 석연찮게 실직하고 방황하던 중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며 납득하기 힘든 언행을 일삼는 블로흐의 모습을 통해 소외와 단절의 현대 사회, 그 불안한 단면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작가의 오랜 친구이자 영화계의 세계적인 거장 빔 벤더스가 이 작품을 영화화하며 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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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페터 한트케의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233)으로 출간되었다. 한트케는 보편적인 문학성에 반하는 실험적인 작품들로 항상 새로운 화두를 만들며 해마다 가장 유력한 노벨상 수상 후보로 지목되고 있다. 그의 소설은 통상적으로 ‘줄거리 없는 소설’이라 얘기되는데, 이 작품은 한트케가 1970년대 들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통적인 서사를 회복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한때 유명한 골키퍼였던 요제프 블로흐는 공사장 인부로 일하다 석연찮게 실직하고 방황하던 중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며 납득하기 힘든 언행을 일삼는 블로흐의 모습을 통해 소외와 단절의 현대 사회, 그 불안한 단면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한편, 작가의 오랜 친구이자 영화계의 세계적인 거장인 빔 벤더스가 당시 이 작품을 영화화해 호평 속에 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했다.
■ 정체성을 상실하고 소외된 현대인,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현대 사회
이전에 유명한 골키퍼였던 요제프 블로흐는 건축 공사장에서 조립공으로 일하던 중 조금 늦게 출근한 자신을 흘끗 쳐다보는 현장감독의 눈빛을 해고 통지로 지레짐작하고 작업장을 떠난다.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자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을 느끼며 극장, 카페, 호텔 등을 무의미하게 전전한다. 그러던 중 얼굴을 익힌 극장의 매표원 아가씨를 쫓아가 함께 하룻밤을 보낸다. 다음 날 아침 블로흐는 여자와의 대화에서 불쾌함을 느끼다가 “오늘 일하러 가지 않으세요?”하고 묻는 그녀를 목 졸라 살해한다. 경찰이 수사망을 좁혀 오자, 국경 마을로 달아난 블로흐는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자기를 향한 어떤 상징이나 신호일 것이라는 강박에 시달린다.
주인공 블로흐의 모습은 매우 비상식적이다. 지각이라는 정황만 가지고 자신을 향한 눈빛을 덜컥 해고 통지로 받아들이고, 사실 여부도 끝내 확인하지 않는 그의 사고와 대응방식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는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끊임없이 배회하며 아무것도 아닌 일로 소동을 일으키고 쉽게 다툼에 휘말린다. 매표원 아가씨를 살해하는 동기도 불분명해 보인다. 그는 한때 외국으로 원정 경기를 다니며 팬들에게 사인 엽서를 부칠 만큼 유명한 골키퍼였지만, 지금은 공사장에서 이름 없는 인부로 일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경기를 보면서도 관중 속에 휩쓸리지 않으려 하는 모습을 보면, 그가 유명 선수였던 과거의 자신과 무명 노동자인 현재의 자신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이상행동은 자기 정체성의 상실에 기인하는 것이다. 현장감독의 눈빛을 해고 통지로 받아들인 것도 타인의 시선에 예민한 그의 과잉 대응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공사장을 나온 그는 대낮의 화창한 거리에서 불안을 느끼며 어두운 극장, 카페로 숨어든다. 친구들과의 통화도 사람들과의 대화도 실패한다. 누구도 그의 존재를 규명해 주지 못한다. 블로흐가 여자를 살해한 것은 일하러 가지 않느냐는 그녀의 한마디가 제자리를 잃은 그의 불안을 정확히 꿰뚫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타인에 의해 자신이 규정되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정체성을 상실한 인간이 느끼는 불안은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불러올 만큼 파괴적이다.
블로흐는 누구와도 정상적인 대화를 하지 못한다. 그는 공중전화가 보일 때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지만, 친구들과의 통화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전처는 통화 내내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사람들과 나누는 모든 대화는 농담으로 치부되거나 엉뚱하게 곡해된다. 블로흐가 매표원 아가씨와의 대화에서 불쾌함을 느낀 것도 그녀가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짐작으로 넘겨 버리고 그와 무관한 자기 얘기만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말을 하면 상대에게 의미가 전달되고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거울이 빛을 반사하듯 튕겨져 나오거나 맥락 없이 뒤엉켜 다른 곳으로 흘러가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블로흐는 뮤직 박스의 음악이나 켜 놓고 보지 않는 텔레비전 소리같이 무의미한 기계음에서 안정을 느낀다. 자기 존재와 소통 방식을 잃은 ‘상실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의미 없는 대화를 계속할수록 더 큰 고립감과 불안을 느끼고, 그에 대한 보상을 인간이 아닌 기계나 미디어에서 찾는 것이다.
“공격수나 공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골키퍼만 바라보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죠.” 하고 블로흐는 말했다. “공에서 시선을 돌리는 것은 정말 부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중략) 말하자면, 누군가가 문을 향해 가고 있을 때, 가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문손잡이를 보는 격이기 때문이다.(본문 119쪽)
축구 경기 내내 골키퍼를 보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관중은 공을 차는 공격수나 공에 관심을 집중한다. 사실상 득점은 골대에서 이루어지기에 결정적인 순간에는 모두가 골키퍼를 쳐다보게 되지만 관심은 길게 지속되지 않는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관중들은 공이 가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고 골키퍼는 다시 긴 시간 동안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채 경기를 계속해야 한다. 모든 관중이 공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 페널티킥을 맞은 골키퍼는 공도 없이 이리저리 몸을 날린다.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처럼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정체성을 상실하고 소외된 채 문손잡이로 전락한 인간이 내보이는 불안의 단면들은 씁쓸하고 서글픈 웃음을 유발한다. 이는 작가가 문학적 낭만으로 덮지 않은 진실의 어두운 서정이다.
■ 범죄소설의 형식을 뒤엎고 인물과 독자의 불안을 일치시키는 역설적 범죄소설
범죄소설이라고 하면, 으레 사건이 발생하는 경위가 설명되고 범죄자와 추격자 사이에 쫓고 쫓기는 긴박한 상황이 전개되며 결국 사건이 해결되어 어떤 결과가 도출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살인을 저지르고 경찰을 피해 달아나는 주인공을 다룬다는 점에서 범죄소설의 테두리 안에 있으면서도 일반적인 범죄소설과는 다른 양상을 띤다. 이는 한트케가 소설의 전통적 관습을 부정하고 새로운 수법을 시도한 프랑스의 문학 사조인 누보로망의 영향 아래 있음을 보여 준다. 납득할 만한 사건의 인과 관계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으며, 블로흐의 강박적인 이상행동과 인물들의 소통 불가로 인한 불안감은 고조되지만 사건 자체가 야기하는 팽팽한 긴장감 같은 것은 없다. 오히려 소설이 전개될수록 살인 사건 자체는 뒷전으로 물러나고, 이야기는 종결, 미결이 아니라, 사건과 전혀 무관한 곳에서 엉뚱한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작품은 이렇게 범죄소설이면서 범죄소설의 형식에 철저히 반하는 방식으로 역설적인 효과를 끌어낸다.
주인공 블로흐가 자신에 관한 신문 기사를 읽으며 한 번씩 의식적으로 상기시키지 않으면 잊어버릴 정도로, 소설 속에서 살인 사건이 차지하는 자리는 희미하다. 범죄를 저지른 주인공도 자신이 살해한 여자 옆에서 태연히 잠을 자는가 하면 도주 중임을 거의 망각한 채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른 사건에 더 관심을 갖고 몰입한다. 그가 잔악하고 대담한 살인마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블로흐는 분명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불안과 강박에 시달린다. 다만 존재감과 정체성을 상실하여 자신이 느끼는 불안과 자기 행위 사이의 상관관계를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수시로 떠올리는 영화 속 장면이나 신문의 다른 기사들처럼 자신이 저지른 범죄 행위 역시도 타자화하며 행위의 주체인 자신을 스스로 소외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존재와 행위로부터 철저하게 유리된 블로흐는 자기와 무관한 사람이 잃어버린 목걸이를 찾는 데 열을 올리고, 쫓기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피해야 할 경찰이나 세관원에게 벙어리 학생의 실종 사건에 대해 열심히 묻고 다닌다. 엉뚱한 곳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 하는 것이다.
소설은 살인이라는 굵직한 사건이 아니라, 인물에 내재한 소외와 불안의 심상을 따라 무질서하게 펼쳐진다. 정황에 맞지 않는 언행, 무의미한 단어들의 나열, 맥락 없는 대화 속 극단적인 말놀이와 농담, 급작스럽게 등장하는 뜻 모를 기호들은 블로흐가 느끼는 불안과 강박



이창주
3.5
확률상 골키퍼가 몸을 날리지 않고 서 있는것이 페널티킥을 막을 확률이 더 높다고 하더라도, 골키퍼는 그 자신의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우리도 어느 순간에,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이 골키퍼처럼 몸을 무작정 날리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134340
4.5
인과라는게 허상이라면 허망한 웃음 뒤에 두려움만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늘 분리된 관계를 연결시키며 살아가는 것 아닐까. 결국 모든 것이 사실과는 상관 없다. 그래서 상처받지만 도망칠 방법은 없다.
샌드
3.5
페터 한트케가 위대한 작가냐 물으면 예라고 대답은 하겠다만, 형식적 독특함에서 오는 흥미로운 면을 제외하곤 책에서 재미를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물론 대표작 두 편만 본 거라 뭐라 장담할 순 없겠다만은 두 편의 인상이 같아서 제게 페터 한트케는 재미보다는 형식미로 더 기억에 남을 작가일 듯합니다. 이 책은 그래도 제목이 주는 상징적인 면과 감정을 담은 분위기가 상당히 좋아서 그걸 따라가는 데 흥미로운 면이 있었습니다. 저는 영화가 재미는 좀 없어도 형식적으로 독특하면 높은 평가를 하게 되는데, 책에선 또 재미가 우선인건지 뭐 그런 거에 대한 생각이 조금 들기도 했습니다.
상맹
4.0
문체와 형식은 너무 간결한데 그 문장들에서 인간 실존의 불안이 보인다는 점이 참 흥미롭다. 바틀비처럼 무언가에 감정을 담지 않고 그냥 바라보고 서술할 뿐인데 주인공의 행동들은 또 그러하지 않으니. 그런 시선이니 말과 언어도 언어 그 자체로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것도 그러하지만 제목이 역시 킥인 것 같다.
준태
1.5
개소리. 소쉬르의 영향을 받았다는데 정작 그가 보면 고개를 갸웃거릴 소설이다. 애초에 기호학이 태동하기 전부터 언어와 전위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그리고 이건 언어를 대상으로한 실험조차 아니다. 언어가 아닌 구성과 형식을 비튼 것이며, 그러니 당연 내러티브가 '드러나지 않고' 텍스트의 문법이 생소하게 읽힐 수 밖에 없다. 베케트와 비교되는 까닭은 더욱 더 모르겠다. <몰로이>나 <첫사랑>은 읽으며 서서히 숨이 조여 왔다. 그것은 이 소설이 전하는 것과 전혀 다른 감각의 불편함이다. 화자의 혼잣말이나 더듬거림, 동어 반복 등은 죄다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런 부분에서 기호학을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차라리 인간과 세계의 비틀림을 논하는 것이 낫겠으나 그것은 카프카의 몇 페이지 단편만도 못 하다. 작가 본인이 나와 '지시'니 '사물'이니 떠들어 대는데, 그걸 '듣는' 시간에 사르트르를 다시 '보는' 게 백 번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둘 다 하는 '말'은 같은데다(당연 같으면 안 되나 이 소설에서 그 차이를 찾을 수는 없다. 한쪽은 실존과 본질의 문제이고 한쪽은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문제인데도 말이다.)깊이로 치면 후자가 훨씬 더 사유를 풀어놓고 있다.
장현서
4.0
언어의 소외와 고립 - 골키퍼가 언제 올지 모르는 공을 기다리며 주춤거리는 것처럼, 블로흐는 알 수 없는 언어들에 갇혀 골문을 벗어난다. 골키퍼가 공을 막을 확률은 우리가 빗발치는 언어를 잡아낼 확률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제제*
2.5
그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인물의 혼돈 가득한 안구와 불안으로 가득 메워싸여있는 두뇌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문학. 오로지 언어로 표현해낸 정신 속 소용돌이를 초지일관 밀어붙이며 형식적 실험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황정욱
4.0
다른이의 말에서 자꾸 숨겨진 뜻을 찾을려고 하면 말꼬리나 잡는 사람이 된다. 나타나는 실제에만 집중하는 게 좋다. 20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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