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한숨

옌롄커 · Essay
3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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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학의 거장 옌롄커가 중국, 문학, 글쓰기에 대해 총체적으로 자기 생각을 밝힌 에세이집이다. 제목에 '침묵'이라는 단어가 있듯, 정치권력 아래서 그는 오랜 세월 검열을 당하며 혹시 발밑에 뱀이 있지 않나, 하늘 위에는 매가 날고 있지 않나 하는 두려움에 휩싸인 채 작품활동을 해왔다. 글을 고치는 자의 마음밭은 '초조'와 '불안'이 지배하는 검은빛이었다. 식사할 때면 옌롄커는 펜과 젓가락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었지만, 글을 쓸 때는 초조와 불안이 종이 위의 삶인지 아니면 그의 정신생활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그는 "글쓰기가 내 생명의 일부가 된 것처럼 두려움도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고 말한다. 양보와 타협이 어느새 글쓰기의 규칙처럼 되어버린 그에게 출판하려고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의 인격 가운데 일부를 하나하나 파내야 하는" 작업이었다. 중국인들은 아주 오랫동안 침묵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어 "항상 배불리 먹고 늘어지게 잠만 자는 개와 다르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로 그들은 점점 생각도 할 줄 모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런 숱한 세월을 견뎌온 옌롄커는 이제 이 책에서 말문을 터뜨리면서 "자신이 개돼지와는 다른 존재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하며 문학과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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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서문_말을 하고 싶었다 1장 어둠을 느끼도록 하늘과 삶이 지명한 사람 2장 국가의 기억상실과 문학의 기억 3장 ‘다른 중국’의 비천함과 문학 4장 미국 문학이라는 ‘거친 아이’ 5장 금서와 쟁론에 대한 몇 가지 견해 6장 나의 문학적 반성문 7장 중국에서의 글쓰기의 특수성 8장 두려움과 배반은 평생 나와 동행할 것이다 9장 고도의 권력 집중과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하늘 아래서 10장 존엄 없이 살아가기와 장엄한 글쓰기 11장 한 마을의 중국과 문학 12장 나의 이상은 ‘내가 생각하는’ 소설을 써내는 것이다 옮긴이의 말_마음껏 외칠 수 있기를

Description

거장 옌롄커가 자신의 글쓰기와 문학에 대해 말하다 가장 깊은 곳의 어둠까지 끌어내 쓴 빛나는 산문 국가도 기이하고 사람들도 기이한 중국 그 어둠 속에서 글쓰기의 유령이 된 작가 그는 문학을 통해 인간의 감정과 사물의 기억을 연장하려 애쓴다 그 무수한 기억의 하류들이 이 산문집에 담겨 있다 초조와 불안이 글쓰기가 되다 이 책은 중국 문학의 거장 옌롄커가 중국, 문학, 글쓰기에 대해 총체적으로 자기 생각을 밝힌 에세이집이다. 제목에 ‘침묵’이라는 단어가 있듯, 정치권력 아래서 그는 오랜 세월 검열을 당하며 혹시 발밑에 뱀이 있지 않나, 하늘 위에는 매가 날고 있지 않나 하는 두려움에 휩싸인 채 작품활동을 해왔다. 글을 고치는 자의 마음밭은 ‘초조’와 ‘불안’이 지배하는 검은빛이었다. 식사할 때면 옌롄커는 펜과 젓가락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었지만, 글을 쓸 때는 초조와 불안이 종이 위의 삶인지 아니면 그의 정신생활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그는 “글쓰기가 내 생명의 일부가 된 것처럼 두려움도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고 말한다. 양보와 타협이 어느새 글쓰기의 규칙처럼 되어버린 그에게 출판하려고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의 인격 가운데 일부를 하나하나 파내야 하는” 작업이었다. 작가들이 정부로부터 검열당하고 그에 따라 출판 금지되거나 끊임없이 수정, 도피 작업을 하면서 중국인들 대부분은 집단 기억상실에 걸리게 되었다. 중국 네티즌들은 1989년 6월 4일의 톈안먼 사태를 입에 담지 못한 채 ‘5·35’ 혹은 ‘6월의 네 번째 날’이라고 지칭한다. 그렇지만 작가들조차 ‘1989년 6월 4일’이라고 기술할 자유를 쟁취하지 못한 것은 이미 글쓰기의 독립성이 상실됐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자신의 연약성으로 인해 자아가 점점 축소되는 것은 (루쉰의 소설에서) 아Q가 마음속으로만 욕을 내뱉으며 이를 사회와 적에 대한 반항과 반격으로 여겼던 것과 다르지 않다. 옌롄커는 “권력이 나의 독립성을 물어뜯어 한입 베어 물거나 다리를 부러뜨림으로써 불구가 되게 할 수는 있지만” 자신은 그런 불구의 독립성을 부양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지난 2013년 3월과 4월에 잠자리가 말 등을 타고 넘듯이 가볍고 민첩하게 미국 버클리대 밴쿠버캠퍼스에 이어 노스캐롤라이나대와 듀크대, 예일대, 하버드대를 거쳐 뉴욕대와 스워스모어대, 럿거스주립대까지 돌면서 강연을 했다. 말발굽 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입은 쉴 틈이 없었다. 인위적으로 쌓아놓은 제방이 마침내 무너져 거센 물결이 다시 산천과 강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옌롄커가 평소 중국에서는 말하고 싶어도 감히 말할 수 없었던,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중국인들은 아주 오랫동안 침묵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어 “항상 배불리 먹고 늘어지게 잠만 자는 개와 다르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로 그들은 점점 생각도 할 줄 모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런 숱한 세월을 견뎌온 옌롄커는 이제 이 책에서 말문을 터뜨리면서 “자신이 개돼지와는 다른 존재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하며 문학과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두울수록 더 빛나는 문학 1960년 ‘3년 자연재해’(1960~1962)를 겪은 옌롄커의 유년 시절은 3000만 명이 굶어 죽은 일 때문에 온통 굶주림의 기억으로 덧칠되어 있다. 아직 몇 살 되지 않았던 그때 옌롄커는 어머니를 따라 쓰레기를 버리러 시골마을 울타리 쪽으로 갔는데, 흩어져 있는 꽃송이 모양의 관음토觀音土와 알갱이 모양의 황토를 가리키며 어머니가 말했다. “얘야, 잘 기억해둬라. 굶어 곧 죽을 것 같을 때 관음토와 느릅나무 껍질은 먹어도 되지만 황토와 다른 나무껍질은 절대 먹어선 안 된다. 그랬다가는 당장 죽거든.” 어머니의 뒷모습은 마른 낙엽 같았고, 옌롄커는 먹을 수 있다는 그 점토 앞에 서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먹을 것을 달라고 어머니한테 보챌 때마다 어머니는 ‘시련’이라는 단어를 되뇌었다. 옌롄커는 이때 굶주림이 생사의 사슬처럼 자신의 목을 휘감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 사슬에 목이 졸려 죽을 것만 같았다. 그는 자기 목숨이 “원반던지기 선수처럼 단번에 광야의 무덤 옆으로 던져버”려질지도 모른다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때부터 옌롄커는 숙명적으로 어둠을 잘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오늘날 중국의 성장 속에서 왜곡, 변질, 부패, 부조리, 무질서를 읽어낸다. 인류가 수천 년의 시간을 들여 수립한 감정적·도덕적 질서, 그리고 인간 존엄의 척도가 그 광활하고 오래된 땅 위에서 해체되고 붕괴되고 소실되는 것을 본다. 법률의 준엄한 제도가 중국에서는 어린애들의 고무줄놀이로 전락한다. 그런 현실에서 작가가 민주와 자유를 논하려면 너무나 힘에 부치고 거센 권력의 바람에 맞서 옷깃을 여미면 팔꿈치가 드러날 정도로 운신의 폭이 좁다. 필부필부들은 음식과 생존, 곤경에 대한 걱정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무리지어 있는 작가들은 더 불안하고 초조하다. 사람들은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무엇을 두려워하는 걸까? 이 민족의 초조감이 작가에게는 가장 빛나는 곳의 음영이 된다. 옌롄커는 사람들이 따스하다고 말할 때 냉기를 느끼고 사람들이 빛을 말할 때 어둠을 본다. 사람들이 행복감에 젖어 춤출 때, 그는 누군가 그들의 발밑에서 오라에 묶이고 걸려 넘어지며 구속되는 모습을 본다. 옌롄커의 글쓰기는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켜던 맹인처럼 어둠 속을 걸으면서 그 유한한 불빛으로 어둠을 비춰 사람들로 하여금 최대한 어둠을 보고서 그 어둠을 피하도록 만든다. 확실한 목표와 목적을 가져 그들의 존재가 빛나도록 하는 데 글쓰기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좋아하는 작품과 그저 그런 작품 옌롄커의 책 가운데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다. 자신의 문학 인생을 정리하는 이 책에서 저자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든 나는 이 책이 내 창작에서 대단히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하나의 선명한 흔적은 될지언정 훌륭한 소설은 아니라는 자평이다. 같은 선상에서 『샤를뤄』 역시 군사문학과 사실주의 문학으로서의 의미만 가질 뿐이며, 만약 의미를 더 확대하자면 그 작품은 소멸해버릴 것이라고 평가한다. 한편 옌롄커는 독자들에게 『물처럼 단단하게』가 읽힐 기회가 꼭 있기를 바란다. 또한 『딩씨 마을의 꿈』과 『사서』를 많이 읽어주기를 기대한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현실 생활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 싶어 『딩씨 마을의 꿈』을 쓰면서 최대한도로 현실과 역사에 대해 너그럽고 포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후 다른 작품들을 발표하자 옌롄커의 지인들은 물었다. “자네가 『연월일』과 『골수』 『일광유년』을 쓰던 시기의 창작은 정말 훌륭했네. 왜 계속 그런 작품을 쓰지 못하는 건가?” 그는 무기력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마을을 지나면, 이미 그 가게는 없지.” 즉 중국은 더 이상 그때 그 시대나 현실에 놓여 있지 않아 작가의 심리나 현실도 그 시대의 절정의 글쓰기로 이끌지 못한다. 사실 옌롄커에게 항상 따라붙는 꼬리표는 ‘중국에서 가장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되고 금서도 가장 많은 작가’라는 것이다. 검열자들은 『물처럼 단단하게』를 읽고 ‘혁명적인 면과 선정적인 면’에서 다 한계를 넘었다고 판단했다. 작가가 직접 베이징에 가서 연줄과 인맥을 동원해봤지만 이 책은 금서가 되고 말았다. 『샤를뤄』가 비판을 받아 유통이 금지되었을 때 옌롄커는 반년 가까이 침대 위에 올라가 검토서(반성문)를 써야 했다. 한 장 한 장 반복해서 검토서를 썼지만 한 번도 통과되지 못했다. 당시 옌롄커는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짓는 삶까지 준비해놓고 있었다. 『레닌의 키스』가 출간됐을 때 주변에서는 다들 ‘대단한 소설’이라고 말했지만 직업군인이었던 작가는 이 작품 때문에 군대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발표와 동시에 금서가 되었다.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