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서문 - 다비드 르 브르통
서론
1부 - 원죄로서의 추함
1장 : 남성과 여성의 구별
2장 : 추한 신체, 용납할 수 없는 근거
3장 : 노파와 마녀
2부 - 자연의 실수
1장 : 불복종의 추함
2장 : 거부되는 세 개의 몸, 추함의 세 유형
3장 : 아름다움과 추함 그리고 시선
3부 - 아름다움의 의무
1장 : 추녀는 죄인이다
2장 : 추함의 역설
3장 : 사랑받지 못하는 추함
결론
부록 : 동화 속에 나오는 추녀
발문 - 조르주 비가렐로
클로딘느 사게르 인터뷰
역자 후기
미주
참고문헌
인명 색인
못생긴 여자의 역사
클로딘느 사게르
3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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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외모를 둘러싼 혐오와 권력관계의 긴 역사를 추적한다. 여성의 존재 자체를 추하다고 본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 르네상스 시대, 이어 그러한 여성성에 문제를 제기했던 근대, 마지막으로 여성이 추한 외모의 책임자이자 죄인이 되어버린 현대까지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본다. 저자 클로딘느 사게르는 이 긴 논의의 결론으로, “남성들은 자신의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만들어야 했다” 고 말한다. 가톨릭 사제들, 철학자들, 작가들, 의사 등 사회 주류의 남성들이 특히 여성 혐오에 기여했다. 그들은 오랜 세월 여성의 본성을 본질적으로 추하다고 주장해왔으며, 여성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출산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같은 생물학적 사명에 충실하지 않을 때 여성을 추한 존재로 치부했다. 근대에 이르러 철학은 해방을 부르짖었지만 여성에 대해서만큼은 아니었다. ‘빛의 세기’의 어떠한 위대한 철학자도 평등에 여성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평등 실현을 공언한 프랑스 혁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20세기의 시작과 더불어 화장품 산업이 발전하고, 점점 더 많은 젊은 여성이 성형수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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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Table of Contents
Description
왜 여성에게 아름다움은 ‘의무’인가? 왜 여성에게 추함은 ‘죄악’인가?
프랑스 사회학자 클로딘느 사게르, 여성에 대한 3천년의 오류를 바로잡다!
왜 ‘못생긴 여자의 역사’에 주목해야 할까? 미투 운동을 중심으로 한국사회에서도 여성 인권에 대한 논의가 어느 때보다 뜨겁지만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비인간적으로 대해 온 문제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천 년의 시간에 걸쳐 우리의 일상 속에서 켜켜이 쌓여온 결과이기 때문에 오래된 여성 혐오의 역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일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 책 <못생긴 여자의 역사>는 여성의 외모를 둘러싼 혐오와 권력관계의 긴 역사를 추적한다. 여성의 존재 자체를 추하다고 본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 르네상스 시대, 이어 그러한 여성성에 문제를 제기했던 근대, 마지막으로 여성이 추한 외모의 책임자이자 죄인이 되어버린 현대까지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본다. 저자 클로딘느 사게르는 이 긴 논의의 결론으로, “남성들은 자신의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만들어야 했다” 고 말한다. 가톨릭 사제들, 철학자들, 작가들, 의사 등 사회 주류의 남성들이 특히 여성 혐오에 기여했다. 그들은 오랜 세월 여성의 본성을 본질적으로 추하다고 주장해왔으며, 여성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출산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같은 생물학적 사명에 충실하지 않을 때 여성을 추한 존재로 치부했다. 근대에 이르러 철학은 해방을 부르짖었지만 여성에 대해서만큼은 아니었다. ‘빛의 세기’의 어떠한 위대한 철학자도 평등에 여성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평등 실현을 공언한 프랑스 혁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20세기의 시작과 더불어 화장품 산업이 발전하고, 점점 더 많은 젊은 여성이 성형수술을 하고 있다.
“남성만큼 지적이라고 해도 여성의 지성은 잘난 척 하는 수준에 머무른다. 하지만 남성의 지성은 심오하고, 숭고하다. ... 여자는 고차원적인 지식이 없어도, 말이 적어도, 중요한 사안을 이해하지 못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예쁘고, 매력적이면 그걸로 충분하다.”
- 임마누엘 칸트
“여성 작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과 작가란 말은 모순적이다. 문학계에서 여성이 맡는 역할은 공장의 여공과 다를 바가 없다. 재능이 필요 없다.”
- 프루동
“여자를 껴안을 때면 떠올려라. 들끓는 벌레들과 피고름을. 코를 찌르는 악취를. 그러면 너는 곧 썩어문드러질 그 몸뚱이의 치장을 무시할 수 있을 것이다.”
- 피에르 다미앙
“겉으로는 아름다워 보이지만 여자의 몸 안은 쓰레기로 가득하다. 그 배를 갈라 보여줄 수만 있다면 그 흰 피부 아래 얼마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한지 보게 될 것이다.”
- 로제 드 캉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를 계속 잃어간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그렇다. 여자가 추앙을 받는 것은 아름다운 외모 덕인데, 세월이 그 매력을 앗아가고 나면 여자는 빈털터리가 된다. 미모가 사라진 후에도 여전히 추앙받는 여자는 거의 없다.”
- 마담 드 랑베르
여성은 태어남과 동시에 아름다워야 할 ‘의무’를 부여받으며,
외모가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면 존재마저 부정 당한다
그리스 시대에 아름다움이라는 어휘는 육체적, 정신적, 도덕적 차원을 아우르는 말이었다. 그러나 많은 철학자들의 글을 보면 여성의 아름다움은 겉모습에 그친다. 그들은 여성이 생리와 출산 등으로 늘 불편한 상태이기 때문에 정신적인 삶에 온전히 열중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여성이 가진 고유한 생리적 조건을 도덕적 한계로 연결하기에 이른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이 같은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계승하고 있다. 스스로 아름답다고 여긴다면 여성은 끊임없이 아름다워지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추해지고 싶지 않다는 긴장감 때문에 여성은 오늘도 아름다움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추함의 역사는 남성과 여성 모두의 이야기를 담아야 할 텐데도 이상하게 추함에 관한 철학, 의학, 사회, 문학 텍스트는 온통 여성에 대한 얘기뿐이다. 결론적으로 남성의 추함과 여성의 추함 사이에 심각한 불균형이 있다. 여성이라는 성 자체에 그 같은 낙인을 찍은 것도 모자라서 이른바 ‘못생긴 여자’를 만들어내고 정신적, 신체적 폭력을 가한다. 남성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여성은 정상적이지 않은 존재로 취급당한다. 무례하고 비열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마치 추한 외모가 모든 행동의 면죄부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신체적 추함은 도덕적 추함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도덕적인 추함은 행동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신체적인 추함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다.
오랫동안 사회는 추한 여성들의 투쟁을 조롱하고, 겁박하고, 폭행하고, 심지어는 고문과 화형으로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존재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한 저항과 투쟁이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권리와 자유를 가져왔지만 지구적 차원에서 볼 때 여전히 소수에 불과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직 여성에게만 아름다울 의무를 강요하는 사회가 정상적인가?
적어도 20세기 서구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가 아니다. 남성과 동등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몇 개의 권리를 여성들이 쟁취해 낸 덕분이다. 그러나 외모의 영역에서만큼은 아직도 그렇지 못하다. 한 여성에 관해 말할 때 여전히 제일 먼저 언급되는 것은 외모다. 심지어 여성은 자신의 외모에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아주 미미한 결점도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죄의식을 느끼고, 스스로를 수치스러워한다. 타인의 시선의 피해자이면서도 자신의 외모를 비하하는 타인의 비난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 비난을 내면화하고 결국 자기 비하에 빠진다. 자신을 보며 추하다고 손가락질 하는 타인보다 더 신랄하게 스스로에게 손가락질 한다. 특히 오늘날의 광고는 교묘하게 여성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외모를 막연히 부끄러워하도록 만들고 있다. 몸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도록 부추기는 각종 새로운 기술을 뒤쫓으며 여성은 완벽하지 않은 자신의 몸을 계속해서 수정해야만 한다. 얼굴에 이어, 가슴, 엉덩이를 바꾸고, 지방을 제거하며, 노화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각종 미용 시술을 받는다.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김미진 박사는 ‘역자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여성의 문제다. 미덕으로, 사회의 원리로, 일상 속에 감춰져 있는 다양한 형태의 성적 차별에 대해서는 예민하게 반응하면서도 정작 오랜 세월, 여성에게 강요되어 온 아름다움의 의무에 대해 우리는 그것이 올바른지 물어본 적이 없다. 그것이 부당하다고 외쳐본 적이 없다. 늘 기준에 미달이지만 기준에 합당한 몸을 가지기 위한 노력을 포기한 적이 없다. 보기에 좋은 존재가 되기 위해 얼마나 자기 자신과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어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결코 억압과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다. 평화가 전쟁의 이유가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아름다움과 추함의 치열한 전쟁터가 된 여성의 몸, 이미 너무나 내면화되어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아름다움과 추함의 도그마를 어린 친구들이 당연한 것으로 결코 받아들이지 않기를 희망하며 이 책을 기획하였다.”
이 책은 출간 이후 프랑스 유수의 방송, 신문 등에서 뜨겁게 다루어졌으며 2017년 터키에서 번역 출판된 것을 시작으로 스위스, 캐나다 등 다양한 나라에서 소개되고 있다.
o 저자 인터뷰
저자 클로딘느 사게르 인터뷰 : "추함은 낙인이다."
Place Gre'net - 그간 철학자나 역사학자는 추한, 못생긴 여성에 대해 거의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 같은 무관심을 어떻게 설명



김긍정
5.0
못생겨도 괜찮다고 말하기까지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강귀은
3.0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온 깊고 묵직한 한숨이 도대체 몇 번이나 되었는지 모르겠다. *최근 한 여자연예인과 남자연예인의 열애기사가 떠서 이슈가 됐다. 이슈의 빌미는, 여자가 남자보다 12살이나 연상이라는 사실이었다. 열애설기사 밑에 달린 대부분의 댓글들에는 나이 든 여성이 젊은 남자와의 만남 속에 비교적 퇴물로 보는 인식들과 비난 혹은 조롱이 주를 이루었다. . . ‘대게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외모와 외향에 더 많이 신경을 쓴다’, ‘여자와 남자가 거울을 보면 대게 여자들은 자신의 몸보다 부정적으로 느끼는 경향이 크고 남자들은 만족하는 경향이 크다’, 등등. 나 역시도 그랬고, 대부분 우리들은 그런 말들과 인식이 만연하다. 얼마 전에 남자인 친구와 통화를 하는데, 오랜만에 보게 될 친구한테 ‘나 살이 많이 쪄서 못 알아볼 수도 있어. 살 조금만 더 뺴면 만나자’ 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는데 ‘에이, 그런 거 왜 신경 쓰냐, 나도 살 엄청 많이 쪘는데 뭐 어때’ 라고 하더니, 뒤이어 ‘하기사, 남자랑 여자는 다르지. 남자야 뭐 크게 상관없지만, 여자는 신경이 많이 쓰이긴 하지.’ 라고 말했다. 친구의 어감은 나쁘지 않았고 물론 나쁜 의도가 없는 말이었기에 그 순간에는 인지하지 못했는데, 돌이켜보니 뭔가가 이상하다싶었다. 왜 여자랑 남자는 다르고, 여자는 신경 쓰이고 쓰여야하는 일이고, 남자는 그것이 별 일이 아닐 수 있는 일이 되는 거지? 왜? 왜? 그리고 몇 일 뒤에 이런 일이 또 있었다. 다른 남자친구와 얘기를 나누는데, 거친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손이 많이 투박해지고 건조해서 텄다고 했더니, ‘그래도 신경 써야지. 여자 손이 거칠면 되나’ 하는 거였다. 물론 이 친구도 나쁜 의도는 전혀 없는 말이라는 건 알았다. 아니,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 아빠도 그런 말을 자주 하시니까. 같이 사는 남자선배도. “숙녀 손이 그렇게 거칠면 어쩌나”, “여자아인데, 걱정이다” 등등. 그 말들을 하는 사람과 받아들이는 나 역시, 그리고 우리 모두 너무 당연시 인식하는 바다. <여자는 곱고 예뻐야 한다>,<그렇지 못하다면 관리를 해야 한다>,<여자의 외모와 몸매수준은 사회적위치의 수준과 비례한다> 등등. 과연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많이 거울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외향을 꾸미는 것에 투자를 하고 외모와 몸매에 집착하며 그것을 자신의 주체로 삼는 것이 여성의 타고난 특성일까? 애초에 사회적인 억압과 관습에 억눌린 여성들의 역사가 없었다면, 현대 여성들의 모습은 아주 많이 달라있을 것이다. 많이 일깨우고, 목소리를 키우면서 조금씩 여성들의 억압들이 풀려가고 있는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의 무의식에 뿌리내려져버린, 무수한 편견과 차별들이 너무도 많다. 스스로마저도 당연하게 내면화시켜버린 사회 속 여성들의 억압과 차별들. 그렇기에 아직도 페미니스트운동이 필요한 것이고, 여성의 역사를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제대로 알고, 파악한 후 정당하게 운동하고 목소리를 키워야겠지. 무엇이든 본질을 엇나가버린 운동은 이미 변질 된 것이니, 목소리를 키우고 사회의 변화에 힘을 실으려면 잘 알고서, 내 목소리를 정당하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내야 한다. 더 많이 알아야겠다. 더 많이 느끼고, 공부하고 파악해야지. *페미니스트는 아주 좋은 운동입니다. 일부 변질된 사람들과 왜곡시켜버린 집단들로 인해 정당하게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이 두 번 상처받지 않길 바랍니다.
RI
4.0
거식증 파트는 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도도섹시퀸최강미녀최송희🍒
4.5
한때 못생긴 여자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그냥 나라고 말해주고싶은 책 잠지를 갖고 태어나서 단지 고추가 없어서 여자들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예뻐도 못생겨도 부족한 점이 존재하는 것이 디폴트고 남성은 당연 스레 여겨지는 혼자 돈을 벌거나 성욕이 있거나 하는 것들은 모두 '마녀' 등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정한 여자가 되려면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아야 하며 그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 못생긴 여자는 배워야 하지만 예쁜 여자는 똑똑 할 수 없다. 여자는 똑똑할 수 없기에. 여성의 성기가 나쁜 의미를 갖는 다는 것은 어떤 방식에서 어떤 사고에서 나와야 이룰 수 있는 말인지 궁금하다 성적인 의미가 없어지는 순간에 이르러 서야, 그들은 번식의 의무에서 해방된다. 번식을 하지 않는 여성은 여성이 아닌가? 남성은 잠재적 고환으로 보지 않지만, 여성은 잠재적 자궁으로, 잠재적 엄마로 취급한다. 여자든 남자든 사람으로 대해 줄 수 있는 사회가 도래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모자란 사람들이 아닌 '나 자신' 으로 살아 갈 수 있게 거식증에 대한 다른 사람의 평가가 좋지 않아서 읽어봤더니, 어느정도 맞는 부분이 있다 생각한다. 거식증은 '닿을 수 없는 이상'을 향한 병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하지만 '완벽함'을 향하는 사람들은 그게 어떤 수단이던, 설령 내 건강이나 몸이 망가져도 본인이 생각하는 완벽함에 다다르려 애쓰는 병이라고 생각한다. 그 것이 외모적인 부분이건 강박적인 삶의 부분이건 혹은 여성으로서의 몸을 포기하기 위해서 (성적인 매력을 드러내기 싶어하지 않은 여성들도 많이 들 걸린다고 한다. 무의식적으로 여성의 몸이 되면 위험하다라는 생각이 그들을 마르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유진과 유진이라는 책에도 (거식증이 형태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그들은 생리를 두려워한다) 묘사되어 있고, 실제로 거식증 책에 보면 있는 부분이다. 왜 이 책의 말에 동의 하지 않는지 어떤 점인지 궁금하다(비방의 목적이 아닌 단순 궁금증) 거식증이라는 병은 그저 '마르고' 싶어하는 병이 아니라 단순히 외모 지상주의의 한 부분이 여러 복잡한 면이 있다는 것을 다큐 등이나 책을 찾아보면 알 수 있을텐데, 만약 단순히 외모지상주의의 면에서 다루지 않았다고 이 책의 거식증 부분을 폄하 한다면 이해가 안가서 한 마디 주절주절 적어봤다.
덩경
5.0
여자에게 필요한 건 아름다운 외모가 아닌 실질적인 권력. 아름다움은 결코 영원할 수 없으므로 권력이 될 수 없다.
Heaven Seo
4.5
중세에는 늙고 추한 여자도 마녀였지만, 보통의 남자들이 가질 수 없을 만큼 지나치게 아름다운 여자들도 마녀였다. 마녀사냥으로 비롯되는 여성혐오는 아주 옛날부터 우중들의 스포츠로 자리잡힌지 오래라 이제는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ㅈㅐ
4.0
고대로부터 여성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추함’의 기준이 무엇이고 ‘아름다움’의 기준이 뭐였나, 누가 그것을 정했고 이득을 취했나 낱낱이 밝히는 책. 이북으로 500 페이지로 보인 책이 분명 내용은 끝나는 분위기인데 150 페이지 가량 남았길래 의아했는데 그게 다 참고문헌이었다. 남성은 아주 오랜 시간 여성의 외모에 대해 발언해왔고 기준을 정해왔다. 납, 코르셋과 하이힐, 전족, 피어싱. 무엇을 위해 여성은 자신의 몸을 학대하게 되었는지 명명백백하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 모든 여성은 ‘꾸미면’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못생긴 여성, 추한 여성은 곧 게으른 여성이 된다는 것. 주체적으로 아름다워야하는 여성의 삶. 작가의 말 중 “여성도 추할 권리가 있다”는 게 기억에 남는다. 한국에서 탈코르셋(디폴트)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외국의 페미니스트들도 움직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으며, 꾸밈 노동이라는 게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얼마나 오랫동안 다른 이름으로 강요되어 왔는지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다. 오랫동안 여성을 억압해왔던 도구는 부서지는 중이다. 옮긴이의 말 중 좋았던 부분.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여성의 문제다. 미덕으로, 사회의 원리로, 일상 속에 감춰져 있는 다양한 형태의 성적 차별에 대해서는 예민하게 반응하면서도 정작 오랜 세월, 여성에게 강요되어 온 아름다움의 의무에 대해 우리는 그것이 올바른지 물어본 적이 없다. 그것이 부당하다고 외쳐본 적이 없다. 늘 기준에 미달이지만 기준에 합당한 몸을 가지기 위한 노력을 포기한 적이 없다. 보기에 좋은 존재가 되기 위해 얼마나 자기 자신과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어왔는지 알지 못한다. (중략) 아름다움과 추함의 치열한 전쟁터가 된 여성의 몸, 이미 너무나 내면화되어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아름다움과 추함의 도그마를 어린 친구들이 당연한 것으로 결코 받아들이지 않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이 사회의 어린 딸들에게 바치고 싶다.”
전혜민
3.5
욕밖에 안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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