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평전

김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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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출간한 <안중근 평전> 개정판. 안중근 의사의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하얼빈 의거와 이후 공판투쟁 모습 등 그의 행적이 어떠했는지를 역사적 사료와 증언기록을 통해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안중근 의사의 처형 전후에 대한 여러 사람의 증언과 기록을 통해 그날의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책 후반부에서는 안중근 의사 순국 후 국내외에서 쏟아진 시문과 각종 전기 등을 수록해 당시 안중근 의사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준다. 아울러 부록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여순옥중에서 쓴 각종 휘호를 정리해 수록했고, 중국에서 발했되었던 《민우일보》에 실린 안중근 의사에 관한 사설 <이등감국 암살안건을 논함>을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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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북두칠성 정기 안고 태어나다 망해가는 나라에 의열사 부르네 이토 히로부미, 고종황제 퇴위시켜 일본의 조선침략론 불타오르고 ‘탈아론’의 첫 희생이 된 조선 7개의 흑점 있어 아명 응칠이라 지어 큰 인물, 아버지 안태훈 신천군 청계동으로 이사 유복했던 어린 시절 글공부보다 상무기풍 키워 제2장 개화인물 안태훈과 상무소년 안중근 동학군에 맞서 담대한 용기 보여줘 40명 정병으로 1000여 동학군 물리쳐 ‘갑오의려’의 개화적 시대인식 떡잎부터 남다른 ‘될성부른 나무’ 안씨 가문에 밀려든 첫 번째 위기 백범 김구를 초청하다 안중근 가문과 김구의 인연 술마시고 노래하던 호방한 시절도 제3장 개화.천주교 수용을 통해 안중근 사상 형성 19세 때 영세 입교 후 천주교인으로 활동 좌절된 천주교대학 설립의 꿈 해서교안으로 탄압받아 의협심과 정의감으로 사회문제 해결 안태훈의 천주교 입교 시기 재론 제4장 민권.민족의식에 눈뜨고 구국운동 나서 러일전쟁 와중에 한국 침탈한 일제 망국위기에 계몽운동 나서다 아버지와 망명계획 세우고 상해 한국재산가들에게 실망하고 ‘민족’의미 헤아린 민족주의자 국내 사명 깨닫고 귀국길에 돈의학교와 삼흥학교 세워 서북학회 그리고 국채보상운동에 참여 제5장 구국의 꿈을 안고 고국 떠나 의병 창설 군대 해산 과정 목격 현대식 무기와 활.죽창의 대결 1907년 8월 1일 고국 떠나 간도에서 다시 러시아로 이범윤 등 만나 의병전쟁 설득 나서 의병참모중장으로 출전 제6장 의병전쟁 그리고 단지동맹 ‘처변삼사’, 의병을 조직하고 의병 이끌고 국내 진입작전 사로잡은 왜군포로 석방이 화근 돼 만국공법 인식한 선각자 선혈로 맺은 ‘단지동맹’ 제7장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를 쏘다 협객 형가의 의거 거사자금 100원 빼앗다 “이토 처단은 내가 한다” 거사 동지 우덕순 등 만나 <장부가> 지어 의기 높이고 을사늑약 이래 희소식, 10월 26일 세 발의 탄환 이토를 토살하다 하늘을 향해 ‘대한만세’ 외쳐 이토 히로부미, 유언 없이 현장 즉사 제8장 교활한 검사에 맞서 당당히 진술 러시아 당국, 서둘러 일본에 재판권 넘겨 재판장소 놓고 일제 치밀한 계산 미조부치 검사와 치열한 ‘논쟁’ 벌여 “이토가 미쳐서 한국을 침략해 응징했다” 미조부치의 집요한 ‘회유’ “남의 나라 빼앗은 것을 방관하는 것은 더 큰 죄악” 제9장 일제, 안중근에 사형을 선고 잔혹한 조사 끝에 재판 회부 일제, 변호사 선임 거부하고 일본인 관선변호사로 대체 첫 공판정 인산인해 이뤄 “의병참모중장이 왜 일본판사의 심문 받나” 일왕 비판하자 비공개 재판 헐뜯고 비하로 일관된 검사 사형 논고 변호사의 황당한 변론 현하의 최후진술, 마침내 사형선고 사형선고 받고 미소 머금어 제10장 자서전과 《동양평화론》 등 집필 한국 애국지사들이 순국한 여순감옥 여순감옥에서 《안응칠 역사》 저술 공소포기하고 《동양평화론》 집필 끝맺지 못한 논설 《동양평화론》 《동양평화론》의 구체적 실천방안 제시 제11장 안중근 의거 찬양 시문 국내외에서 쏟아진 시문 송나라 문천상의 의기와 절필시 제12장 순국 전야, 죽을 준비 마치고 집요한 회유와 완강한 배척 총독부, 민완경찰 보내 회유 어머니의 간곡한 말씀 독립운동가 계봉우의 안중근 평가 홍 신부의 신심과 뮈텔주교의 배심 순국의 전야, 여섯 통의 유서 동생들에 전달 제13장 순국, 죽어 천년을 가오리다 순국의 날 온종일 비 내리고 북한 작가의 최후의 날 스케치 류동선의 최후의 날 증언 한국 연구가의 최후의 날 기록 통역 소노키의 ‘처형전후’ 공식 보고서 동생들의 뜻밖의 면회 형장의 마지막 순간 두 동생 만나 유서 여섯 통 전하고 국내외에서 추도회 열고 추도가 지어 청나라 원세개 등 만사 보내 조의 고결한 생애, 순결한 죽음 공화주의자인가 근왕주의자인가 제14장 문기 넘치는 휘호 옥중에서 쓴 수많은 휘호 일인 관리들도 휘호받기 원해 제15장 전기에 나타난 안중근 평가 안중근 전기 누가 썼는가 박은식이 평한 안중근 김택영이 평한 안중근 이건승이 평한 안중근 홍종표가 평한 안중근 계봉우가 평한 안중근 정육이 평한 안중근 오전기가 평한 안중근 안정근이 평한 안중근 황의돈이 평한 안중근 이강이 평한 안중근 채원배가 평한 안중근 양계초가 평한 안중근 제16장 안중근 의사의 유족 그 이후 유족, 의거 뒤 러시아로 이주 장남 분도의 사인 의문점 많아 안 의사 모친, 동포 경성운동 나서 안공근의 혁혁한 항일운동 김구와 안중근 가문의 ‘운명적’ 관계 안 의사 유족의 시련과 비극 부록 이등감국 암살안건을 논함1 이등감국 암살안건을 논함2 이등감국 암살안건을 논함3 안중근 선생 추념가 대한

Description

고결한 삶을 살다 간 ‘지나간 미래상’ 안중근 지난 2009년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토살한 하얼빈 의거 100주년이었다. 그리고 2010년은 안중근 의사가 여순감옥에서 순국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우리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국적 1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함으로써 한민족의 독립의지와 기상을 천하에 떨친 그의 행적이 그동안 너무 쉽게 간과되어온 탓이다. 안중근 의사가 안과 의사냐고 묻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안중근 의사와 안창호 의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부지기수인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왜 이제 와서 다시 안중근일까. 안중근 의사는 독립운동가로서뿐 아니라 세계평화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선각적인 지도자였다. 하얼빈 의거 말고도 국채보상운동, 교육사업, 의병전쟁 등 수많은 구국 운동에 참여했고,《동양평화론》을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를 주장했다. 그가 주장한 동양 평화에 대한 지론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적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동아시아의 현재와 미래의 ‘평화구도’와 공동체 모델로 인식되는 대단히 선구적인 것이었다. 그는 한.중.일이 공동으로 동양평화회의를 구성하고, 국제적 분쟁지인 여순을 중립화해 그곳에 동양평화회의 본부를 설치할 것과 3국 공동의 개발은행을 설립해 공동화폐를 발행하자고 제안했다. 유럽공동체EU와 같은 기구를 100여 년 전에 구상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혜안은 21세기의 동아시아 정세에 그대로 대입해도 될 정도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안중근 의사를 ‘지나간 미래상’이라 부르는 것이다. 끝맺지 못한 논설 《동양평화론》 이 책에서는 이러한 안중근 의사의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하얼빈 의거와 이후 공판투쟁 모습 등 그의 행적이 어떠했는지를 역사적 사료와 증언기록을 통해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안중근 의사의 처형 전후에 대한 여러 사람의 증언과 기록을 통해 그날의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책 후반부에서는 안중근 의사 순국 후 국내외에서 쏟아진 시문과 각종 전기 등을 수록해 당시 안중근 의사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준다. 아울러 부록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여순옥중에서 쓴 각종 휘호를 정리해 수록했고, 중국에서 발했되었던 《민우일보》에 실린 안중근 의사에 관한 사설 <이등감국 암살안건을 논함>을 게재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정세는 100여 년 전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총과 칼이 ‘자본’이라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강대국은 약소국을 위협하고 그들의 이익 챙기기에 정신이 없다. 100여 년 전 안중근 의사의 사상은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논리거나 이상이 아니다. 동아시아의 미래를 내다본 그의 혜안은 분명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는 일제의 위약으로 《동양평화론》을 끝맺지 못한 채 순국했다. 다시 말해 《동양평화론》의 완성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 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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