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다고지

파울루 프레이리
2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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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교육사상의 선구자였던 파울루 프레이리의 <페다고지>가 발간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번역 출간되었다. 전세계 민중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었으며,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금서 목록의 한 칸을 차지하기도 했던 <페다고지>를 이제는 당당히 고전의 반열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페다고지>의 영문판 제목은 'Pedagogy of the Oppressed'. 즉 '피억압자를 위한 교육학'이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파울루 프레이리는 교육에 있어 중립이란 없다고 주장하였다. 기존 체계의 논리에 따르도록 만드는 도구로 기능하거나,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바탕으로 세계의 변혁에 참여하는 방법을 발견하게 하는 수단이 되거나, 둘 중 하나이다. 프레이리는 <페다고지>를 통해 '피억압자'의 존재를 상기시키고 그들에게 역사적 소명을 부여한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어 모든 이의 인간화를 위해 싸우는 것, 이것만이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대립을 해소하고 인간이 자유로워지는 해방의 길이라 역설하고 있다. 전교조 선생님들을 비롯한 많은 깨어있는 지식인들에게 <페다고지>는 깊은 영감을 주었다. 하지만 <페다고지>를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지금, 오히려 이 책이 외면을 당하는 역설이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닌지... 여전히 비인간적인 교육, 경쟁만을 부추기는 교육이 우리를 절망시키는 이 시대에 <페다고지>는 '희망의 교육학'으로 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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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30주년 기념판 발간에 부쳐 파울루 프레이리와 페다고지 머리말 저자 서문 제1장 피억압자를 위한 교육의 정당성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모순 및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 억압과 억압자 억압과 피억압자 해방 : 선물이나 자기성취가 아닌 상호 과정 제2장 억압의 도구로 이용되는 '은행 저금식' 교육 개념, 그 전제와 비판 해방의 도구로 이용되는 문제제기식 교육 개념, 그 전제 '은행 저금식' 교육 개념과 교사-학생 모순 문제제기식 교육 개념과 교사-학생 모순의 해소 세계를 매개로 하는 상호 과정 미완성의 존재로서의 인간, 미완성의 의식, 완성에 이르려는 노력 제3장 대화 : 자유를 실천하는 교육의 본질 대화와 토론 대화와 교육 내용의 모색 인간-세계의 관계, '생성적 주제', 자유를 실천하는 교육 내용 '생성적 주제'의 탐구와 그 방법론 '생성적 주제'의 탐구를 통한 비판적 의식의 자각 탐구의 여러 단계 제4장 반(反)대화와 대화 : 대립하는 문화 행동 이론의 두 가지 토대, 억압 도구로서의 반대화와 해방 도구로서의 대화 반대화적 행동 이론과 그 특징 : 정복, 분할 통치, 조작, 문화 침략 대화적 행동 이론과 그 특징 : 협동, 단결, 조직, 문화 통합 해제 / 왜 지금 <페다고지>를 다시 읽어야 하는가?

Description

더 완숙하고, 덜 추하며, 더 정의로운 21세기를 꿈꾸는 책 <페다고지>- 30주년 기념판 가르친다는 것은 희망을 말하는 것 배운다는 것은 성실을 가슴에 새기는 것 ― 루이 아라공(L. Aragon ; 1897~1970, 프랑스의 민중 시인) 왜 지금 다시 <페다고지>인가? 이 책은 2000년 미국에서 발간된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 ; 피억압자의 교육학) 30주년 기념판의 국역본이다. <페다고지>는 이미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아니 어느 한때 금서 목록의 한 칸을 차지했을 만큼 잘 알려진 책이다. 이 책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암울했던 군사 독재 시기 금서 목록에 올라 비합법적으로 유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지식인, 노동자, 학생 들에게 민중의 의식을 깨우치는 책이자 교육자 자신이 교육받는 책으로 널리 읽혀진 바 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어 <페다고지>가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시기가 오자, 이 책은 사람들의 손에서 멀어져 갔다. 파울루 프레이리가 "피억압자의 교육학"이라 명명한 이 책이 더 이상은 아무런 효용도 갖지 못하게 된 것일까? 그가 말하는 의식화, 대화와 반(反)대화 교육의 차이, 프락시스(praxis) 등의 개념은 더 이상 우리에게 유효하지 않게 된 걸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한다. 아직 "자유의 실천"이 되지 못한 교육 많 은 사람들이 교육의 중립을 이야기한다. 전교조가 처음 결성될 때도 사람들은 "학생들이 중립적인 사고를 하도록 인도해야지 의식화하는 것은 편향된 교육"이라 말하며 "인간화 교육"을 외치는 많은 선생님들을 강단에서 몰아냈다. 그러나 1970년에 발간된 <페다고지> 초판의 서문을 쓴 리처드 숄의 말을 빌리면 "교육에서 중립적인 것이란 없다. 교육은 젊은 세대를 기존 체계의 논리에 통합시키고 따르도록 만드는 도구로 기능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유의 실천'으로서 현실에 대해 비판적이고 창조적으로 대응하고 세계의 변혁에 참여하는 방법을 발견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할 뿐이다". 교육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것이 무엇인가? 다수의 아이들을 희생시켜서라도 소수의 아이들이 더 나은 계층으로 편입하도록 도와주는 것인가? 아니면 아이들 하나하나가 진정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자라게 하는 것인가? 이 질문의 답은 의심의 여지 없이 명확해 보이지만 현실은 그 답과는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최근 서울대 학생생활연구소가 발표한 서울대학생의 50% 이상이 강남 8학군 출신이라는 조사 결과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아이를 서울대에 보내기 위해 강남으로 이주하는 부모들이 줄을 잇고 있다는 건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서울대 입학이 이후의 삶을 중요하게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서울대와 비서울대, 명문대와 비명문대, 대졸자와 비대졸자가 끊임없이 구분되는 사회에서 행해지는 교육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그리고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인간화 교육"(인간화는 프레이리 교육 철학의 주요 개념이기도 하다)을 외치는 선생님들은 교장에 의해 'C'라는 점수 평가를 받고 무능력한 선생님으로 간주되고 있다(실제 작년 전교조가 주관한 교사 대회 때 걸린 플래카드의 표어 속에는 'C받이 교사들'이란 말이 등장했다) 프레이리는 <페다고지>에서 억압자의 교육에서는 학생들이 세계 바깥에 있는 하나의 대상이 되어 사물로 전락하는 반면, 피억압자의 교육에서는 학생들이 세계 속에서 세계와 더불어 한 인격체가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학생들과 교사들이 세계 속에서 주체와 주체로 만날 때 교육은 비로소 '자유의 실천'이 된다고 역설한다. 여전히 존재하는 억압과 피억압 프 레이리는 말년에(그는 1997년 생을 마감했다) 무한 경쟁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사상이 팽배하고 있는 것을 우려했다. 그가 <페다고지> 30주년 기념판에 서문을 쓴 도나우두 마세두 매사추세츠 대학 교수와 함께 작업한 책에서 한 말을 들어보자. " 우리는 금세기 말(20세기 말)에 전개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숙명론, 즉 다수의 삶을 희생시키면서 소수가 대부분의 이득을 취하는 시장 윤리에 대해 결단코 반대해야만 한다. 이것은 바꿔 말해서 경쟁할 수 없는 자는 죽는다는 윤리다. 그것은 잘못된 윤리며, 사실상 윤리가 부재한 윤리다. 나는 계속 인간으로서 살아갈 것을 주장한다" (Paulo Freire & Donaldo Macedo, 「Ideology Matters」) 이 명박 집권이래, 아니 그보다 오래전부터 우리사회에서는 기회의 평등 속에 자유로운 경쟁이라는 원리가 만고불변의 진리로 굳어진 듯 하다. 하지만, 서울대 사회대학 입학생 중 고소득층 자녀와 비고소득층 자녀의 비율이 16.8:1인 상황에서 기회의 균등과 자유경쟁이 의미있는 구호일까? 애시당초 교육에 쏟아붓는 돈이 다른 것이다. 물론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잔치는 끝났고" 눈에 보이는 억압은 사라졌다. 그러나 프레이리는 계급이 없어졌다고 이제 그런 구분은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브라질 북동부의 어느 가족이 쓰레기 더미에서 먹을거리를 찾고, 잘려진 사람의 가슴 살덩이를 일요일 점심으로 먹을 만큼 끔찍한 생활조건에 대해서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프레이리가 이 책의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다음과 같은 신화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한 누구도 이제 억압은 사라졌다고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일하며, 따라서 직장 상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직장을 떠나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신화, 근면하기만 하면 누구나 기업가가 될 수 있다는 신화, 노점상도 대규모 공장주에 못지 않은 기업가라는 신화, 모든 초등학생 중에 대학까지 진학하는 학생은 극히 일부인데도 교육의 보편적 권리가 보장되고 있다는 신화, "내가 누군지 알아?" 하는 식의 말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개인이 평등하다는 신화, …… 억압자는 근면하며 피억압자는 게으르고 부정직하다는 신화, 피억압자는 본성적으로 열등하며 억압자는 우월하다는 신화 …… ". 위에서 언급한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페다고지>의 사상을 필요로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인간다움을 회복하여 보다 사랑하기 쉬운 세상을 다 함께 만들어가길 바랐던 프레이리의 염원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페다고지>에 나오는 세 가지 주요 개념 은행저금식 교육을 지양하는 문제제기식 교육 | 프 레이리는 교육 방식에 있어 은행 저금식 모델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면서 민주적인 문제제기식 교육을 그 대안으로 제기한다. 은행에 예금을 하듯 교사가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지식을 '맡기기만' 하는 은행 저금식 교육은 학생을 교사의 명령에 따르는 수동적인 대상으로 만들 뿐이다. 따라서 은행 저금식 교육은 다음과 같은 습관과 태도를 낳는다. 1. 교사는 가르치고 학생들은 배운다. / 2. 교사는 모든 것을 알고 학생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 3. 교사는 생각의 주체이고 학생들은 생각의 대상이다. / 4. 교사는 말하고 학생들은 얌전히 듣는다. / 5. 교사는 훈련을 시키고 학생들은 훈련을 받는다. / 6. 교사는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고 실행하며 학생들은 그에 순응한다. / 7. 교사는 행동하고 학생들은 교사의 행동을 통해 행동한다는 환상을 갖는다. / 8. 교사는 교육 내용을 선택하고 학생들은 (상담도 받지 못한 채) 거기에 따른다. / 9. 교사는 지식의 권위를 자신의 직업상의 권위와 혼동하면서 학생들의 자유에 대해 대립적인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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