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허수경 · Poem
1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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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나는 어느날 죽은 이의 결혼식을 보러 갔습니다 아픔은 아픔을 몰아내고 기쁨은 기쁨을 몰아내지만 어느날 눈송이까지 박힌 사진이 그 밤에 붉은 꽃에 늙은 들개 같은 외투를 입고 늙은 새는 날아간다 머리에 흰 꽃을 단 여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집을 묻는다 안개와 해 사이 그러나 지나가는 세월도 어느날 애인들은 구름은 우연히 멈추고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제2부 그러나 어느날 날아가는 나무도 내 마을 저자에는 주단집, 포목집, 바느질집이 있고 맑은 전등 베를린에서 전태일을 보았다 그 옛날 공장은 삶은 과일들의 자궁 미술관 앞에 노인들은 물 흐르듯 앉아 아이가 달아난다 두렵지 않다, 그러나 말하자면 두렵다 흑백사진 한장 검은 노래 청아한 가을 붉은 노래 제3부 바다가 나의 고아들은 그날의 사랑은 뜻대로 되지 않았네 부풀어오르는 어머니 해는 뜨겁고 붉은 조개를 단 거북 동천으로 聖 숲 꿈, 불 여관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옛사랑 속에는 전장의 별들이 몽골리안 텐트 모르고 모르고 이 지상에는 제4부 우연한 나의 누런 달 아래 있는 놀이터 비행기는 추락하고 폭발하니 토끼야! 숨은 사랑 우리들의 저녁식사 눈 안의 눈 갑자기 생긴 길 오후 두시경 어느 눈 덮인 마을에 추운 아이 하나가 숨 청동 염소 물빛 ▨ 발문/신경숙 ▨ 시인의 말

Description

1992년 독일로 떠나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1990년대의 대표적인 시인 허수경씨가 세 번째 시집을 간행하였다. 주목받던 시인은 독일에서 선사고고학을 공부하면서 아득한 조국의 언어를 붙들고 터키 등지로 발굴현장을 더돌고 미라를 뒤적이며 오래된 영혼의 노래를 피워냈다. 참으로 차분하면서도 깊어진 그의 시어는 비록 어둡지만 아이들과 토끼, 새, 눈, 숲 등을 매개로 새로운 시의 지평을 열었다. 낯선 이미지와 시상의 얼개는 내면의 아름에 대칭되는 문명과 전쟁 그리고 죽음을 병치하면서 견디고 품어야 하는 삶의 불화를 엿보게 한다. 그의 시는 규정하기가 어려운 어떤 고독으로 차 있다. 그 고독은 딱딱한 것이 아닌 한없이 부드러운 그 무엇은 아마도 이 지상에서 생존해가는 해독불가한 생명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는 그 생명들에 대한 연민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래서 언어가 무력해지며 그 무력감 속에서 간신히 무엇인가를 우리글에게 내보이는 소통의지를 보이고 있다. 현재 그의 주된 세계관이 동방 쪽의 고고학과 미라 발굴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면 그의 주된 세계관이 동방 쪽의 고고학과 미라 발굴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면 그의 시는 손이 저리도록 단절된 듯한, 가슴이 텅비어 있는 미라의 과거와 대화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의 시가 죽음 속의 생을 보여주기도 하며 생 속의 죽음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시집의 중요한 한 비의는 '편지'라는 점이다. 시인은 이 '편지'가 전달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편배달부가 살해되었으며 그 우편낭은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이것은 존재들의 의사소통과 멀리 이어져 있는 길이 편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시적 장치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세계의 길 위에 달려가는 불길한 그림자를 보여준 그 상징 자체가 현실일 것이라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사랑과 진심이 상처받는 내면을 그린 많은 시편들은 번뜩인다 하겠다. 그래서 「어느 눈 덮인 마을에 추운 아이 하나가」 「나의 고아들은」은 모두 허수경 시인의 사랑의 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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