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결혼, 일로부터
수시로 울컥하는 여자들을 위한 셀프구원의 기록!
일상적인 슬픔은 시詩로 다스릴 것, 그리고 고통을 응시하여 다시 꿈꿀 것!
이 책은 40대 기혼 여성인 저자가 거칠고 비린 일상을 시詩로 추스른 산문집이다. 저자가 30대 중반부터 40대 초반까지 결혼 후 가장 치열하게 살아야했던 약 5년 여간의 삶을 내밀하게 기록했다. 어딜 가나 치유와 긍정의 말들이 눈멀게 하는 요즘, 저자는 결혼, 출산, 육아, 일 등에서 절망과 설움, 슬픔과 아픔이라는 분명히 존재하는 삶의 절반을 기피하지 않고 솔직하게 밝힌다.
결혼하기 전에 만났던 남자 A, B, C, D, E, F…… 를 회상하며 20대 시절 사랑에 엄숙하기만 했던 이야기, 7년간 연애한 첫사랑을 잃고 힘들어하는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한 이야기, 기혼남녀의 솔직한 속마음, 만남과 헤어짐에 관한 철학적 사유 등 여자로서 겪는 일상(제1장 여자, 내 생을 담은 한 잔 물이 잠시 흔들렸을 뿐이다), 궁합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한 시어머니를 설득하기 위해 인디언이 기우제를 지내듯 좋은 점괘가 나올 때까지 점집을 순회한 이야기, 고생만 하신 친정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 낯설고 어려운 시댁 적응기, 고등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목동에 살면서 접하는 혼란스러운 육아 및 교육관, 남편의 실수로 30평 목동아파트에서 바퀴벌레가 나오는 20평 전셋집으로 추락한 이야기 등 결혼 후에 엄마로서 겪게 되는 일상(제2장, 엄마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 서른다섯에 재취업에 도전하면서 겪게 되는 사회의 쓴맛, 지하철에서 본 가난한 소년, 병원에서 만난 아픈 소녀, 동네 골목에서 조우한 할머니 시인, 거리에서 만난 폐지 줍는 할아버지 등 글쓰기 수업 선생과 자유기고가인 저자가 생활밀착형 작가로서 겪게 되는 일상(제3장 작가, 사는 일은 가끔 외롭고 자주 괴롭고 문득 그립다) 등을 담았다.
어디가 아픈지만 정확히 알아도 한결 수월한 게 삶이라는 것을, 내일의 불확실한 희망보다 오늘의 확실한 절망을 믿는 게 낫다는 것을, 남루한 현실을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힘이 된다는 것을, 저자는 자신의 솔직한 일상과 그에 곁들여지는 시를 통해 귀띔해준다.
- 서문, 12쪽 -
일을 마치고 늦은 밤 귀가하면 식구들은 잠들고 집이 난장판이 되어 있곤 했다. 식탁 위에는 라면 국물이 반쯤 남은 냄비와 뚜껑도 닫지 않은 김치보시기, 고춧가루 묻은 젓가락이 엑스자로 놓여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벗은 양말은 발 아래 낙엽처럼 채였다. 텔레비전은 저 혼자 무심하게 떠들고 있었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아무것도 손댈 수가 없을 때면, 나는 책꽂이 앞으로 가서 주저앉았다. 손에 잡히는 시집을 빼서 시를 읽었다. 정신의 우물가에 앉아 한 삼십 분씩 시를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왜 그랬을까. 나는 기계적으로 일하는 노예가 아니라 사유하는 인간임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를 읽으면서 나는 나를 연민하고 생을 회의했다. 생이 가하는 폭력과 혼란에 질서를 부여하는 시. 고통스러운 감정은 정확하게 묘사하는 순간 멈춘다고 했던가. 마치 혈관주사처럼 피로 직진하는 시 덕분에 기력을 챙겼다. 꿈같은 피안으로의 도피가 아니라 남루한 현실을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힘이 났다.
- 추천사, 고병권(철학자, ‘수유너머R’ 연구원, 『생각한다는 것』저자) -
시를 낳지도 짓지도 않았다. 다만 ‘배 위로 트럭 세 대’가 지나간 것 같았다는 고통으로 낳은 두 아이, 사는 게 고달파서 엉엉 울고 싶었을 때에도 새벽같이 일어나 지어야 했던 하얀 밥들처럼, 그녀는 시를 껴안고 산 사람이다. 그 많은 시들은 대체 어디에 두었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다 문뜩 알게 되었다. 밤새 눈이 내린 듯, 그녀의 모든 것들에 시가 덮여 있음을. 아침에 무뚝뚝하게 나가는 아들 녀석도, 늙은 아버지에게 건넨 반찬통들도, 시어머니에게 받은 이불들도 그 눈을 맞을 것이다. 그녀가 시집을 펼쳐들 때면 추억 속 연인들도, 치열했던 이삼십대의 상처들도 그 눈을 맞을 것이다. 그녀에게서 위로든 커피든 뭔가를 건네받은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것들이 막 녹아내린 시에 젖었음을.
올드걸old-girle의 탄생!
늘 곁에 있어도 보이지 않았던, 세상의 모든 올드걸들을 위한 첫 책!
꿈이 뭐냐고, 무얼 욕망하느냐고, 어떤 슬픔이 있느냐고……
나이 든 여자에게, 가만히 물어본다!
여전히 상처받는 여린 문학소녀, 그러나 이제는 상처에 머물지 않고 고통을 응시하여 다시 꿈꿀 줄 아는 여자가 이 시대에는 굉장히 많다. 다만, 일상에서는 엄마역할로 기능하느라 딱히 드러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그들을 돌봄과 희생의 대명사로만 보려고 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늘 곁에 있어도 보지 못한 것이 아닐까. 미용 산업, 성형 산업, 의류 산업 등의 거대한 자본시스템에 경유하지 않는 존재라서 부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이 든 여자와 마주하고 당신은 꿈이 뭐냐고, 무얼 욕망하느냐고, 어떤 슬픔이 있느냐고 물어본다는 건 영 어색하다. 어쩌면 보통명사 ‘엄마’의 사적영역은 한때 누군가의 ‘자식’이었던 우리 모두에게 상상불가능의 지대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드걸은 살아 있다! 돈이나 권력, 자식을 삶의 주된 동기로 삼지 않고 본래적 자아를 동력으로 살아가는 존재, 늘 느끼고 회의하고 배우는 ‘감수성의 주체’는 『올드걸의 시집』을 통해 나 여기 살아있음을 생생히 증명한다.
올드걸은 고정된 인격체가 아니라 하나의 존재방식이다. 그러니까 피부에 잔주름 없애고 명품몸매 가꾸어 ‘영우먼’ 되려는 욕망처럼, 눈가의 물기와 사유의 탄력을 잃지 않는 ‘올드걸’ 되려는 욕망이 우리 엄마들에게는 언제나 있어 왔다. 매스컴에 의해 떠들썩하게 알려지고 지속적으로 재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올드걸의 시집』은 그동안 곁에 있어도 보지 못했던 그녀들의 속내를 가만히 물어보고, 들어주는 책이다. 노트 하나, 시집 한 권이면 족한 엄마 안의 여린 소녀를 만나는 시간이다.
- 서문, 8~9쪽 -
예전에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 노문희 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녀의 담당구역인 건물 3층 복도 끝에 휴식공간이 있었다. 새의 둥지처럼 몸 하나 겨우 웅크릴 공간, 책상 하나 놓이니 꽉 차는 창고 같은 방이었지만, 다행히 벽면의 통유리 너머로 짙푸른 나무가 흔들려 운치를 더했다. 책상 위에는 낡은 스프링 노트가 정물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학생들이 버린 노트를 주워서 일기를 쓴다고 했다. 그녀가 넘기는 노트 속에는 깨알 같은 글씨와 소녀 얼굴의 스케치가, 마치 전혜린의 노트처럼 동경과 낭만으로 일렁였다. 나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까맣게 염색한 보글보글 억센 파마머리에, 울퉁불퉁 힘줄 튀어나온 마른 손등에, 소매통 넓은 파란색 작업복을 걸친 청소부. 예순 살의 그녀가 감수성 주체로 여기 책상에 앉곤 한다는 사실이 마냥 낯설었다. 돌아오는 길, 우리 엄마도 가을이면 단풍잎, 은행잎 주워서 식탁유리 밑에 끼워놓곤 했던 생각이 났다. 엄마가 화초 가꾸기를 좋아하니까 그런 줄 알았는데, 엄마가 주운 것은 낙엽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구나 싶었다. 살면서 흘린 것, 놓친 것, 떨궈진 것들을 낙엽에서 보았던 게 아닐까. 잃어버린 당신 시간을 모으듯 몸을 구부려 줍고 부서질세라 쥐고 고이 간직하는 동안 엄마는 가을을 통과하는 소녀였던 거다.
- 추천사, 윤석남(미술가, 한국 여성주의 미술 1세대 대표작가) -
서문만 읽어도 이 책을 왜 여성들이 필독해야만 하는지 결론에 도달한다. 시에 대한 오독이어도 좋다. 시를 읽고 그 시에 힘입어 자신의 남루한 삶으로부터 유유히 탈주할 수 있는 것. 이런 삶이 어찌 남루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너무 쉽게, 그러나 깊게 들어온다. 전문직이든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