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장석남 · Poem
1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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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시인선' 15권. 장석남 시인의 일곱번째 시집이다. 버릴수록 가져지고 지울수록 선명해지는 게 세상살이의 이치라면 장석남의 시는 이미 그 일가를 이루었을 터, 이번 그의 일곱번째 시집은 작고 더 작아져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고요'라는 구멍 속에서 홀로이 노는 한 사내를 만나게끔 한다. 시인은 강박적이리만치 열과 행을 꽤나 조여서는 더는 뺄 것도, 더는 넣을 것도 없이 콤팩트한 시를 우리 앞에 선보인다. 비움과 침묵 속 여백과 공기의 팽팽함, 그로 풍만해지는 마음의 빈자리에 더욱이 아무나 앉히는 것은 결코 아닌 채로 시인은 빈 의자를 내놓는다. 등단 25년의 관록, 시인이 가진 특유의 섬세함과 유연성을 가장 정점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감히 자부하는 60편의 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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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시인의 말 1부 의미심장(意味深長) 하문(下問) 1 하문(下問) 2 가난을 모시고 담장 가을 저녁의 말 고대(古代) 호수 장마 끝물 나의 유산은 옛집에 들어 오솔길을 염려함 2부 중년 불임 큰 눈 가라앉는 발자국들 수로(水路)에서 무쇠 솥 독강에서 탑(塔) 바람과 더불어 하나 난롯가 저물녘 모과의 일 초당에 가서 해변의 자화상 들판에서 고창 선운사 다시, 오래된 정원 다랑이길 파도 소리 성(城) 정자의 주춧돌을 세우며?이상에게 나의 불빛 옥수수밭의 살림 시월의 석류?평창의 김도연 아코디언 물미역 씻던 손 축소 인쇄 안견의 를 펴놓고 3부 기차 법문 냉이야 냉이야 수월(水月) 스님 낙법(落法) 발굴(發掘) 와운산방(臥雲山房) 노래가 되기는 멀었어라 빈방 남지암(南枝庵)을 기록함 탱자 향기 물과 빛과 집을 짓는다 생활 벌 치는 사람 첫눈을 기다림 어찌하여 민들레 노란 꽃은 이리 많은가? 민화 동화(童話) 안부 망명 생일 술래 3 물의 여정(旅程) 입적(入寂) 시월(十月) 해설 | 호젓함을 모시다 | 엄경희(문학평론가)

Description

나는 어찌하여 이, 뵈지도 않는 길을 택하여 가는가? -장석남 시인의 일곱번째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김종삼 선생님이 딸의 소풍을 따라갔다가 어느 무덤가에서 가슴에 돌을 얹고 누워 있었다던, 날아갈까봐 그랬다던 향기로운 에피소드가 문득, 생각나는 -「하문(下問)·2」 중에서 애초에 시로 태어난 자를 고르라 할 때, 아주 오래전 사람이 아닌 근래 다국적 말의 홍수 속에서 그 허우적거림을 실로 맵게 겪은 이들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 할 때, 단연코 맨 앞자리에 앉고 또 앉혀야 할 그이라면 일단은 장석남 시인이지 않을까 싶다. 연탄에 집게를 꽂아 연탄을 갈고 연탄불을 살릴 때의 그 조심스러움으로 일상에서 시를 살릴 때 후후, 그가 일으키는 불씨는 제 입김을 통한 것이 대부분이니 지금껏 우리말의 단련이란 그로 하여금 얼마나 달궈져왔겠는가.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스물다섯 해, 스물셋 말갛던 청년이 마흔여덟 ‘어둡는’ 중년이 되기까지 시를 모아 집을 삼은 것이 도합 일곱번째니 평균 3년하고도 절반마다 그는 시로 분한 저 자신의 분가를 지켜봤으렷다. 선 하나를 느끼는 데서 시작된 시가 곧 선 하나를 느끼는 데서 마무리됨을 일찌감치 알아차린 탓에 흔하디흔한 막대기조차 쓰다 버릴 일이 아니라 쓰다 심을 일로 몸을 써온 그, 라는 시의 타고남을 익히 알아온 까닭에 나는 그에게 먼저 고요와 도망에 대하여 ‘여쭙느니’,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를 앞에 두고 서다. 저물면 아무도 없는 데로 가자 가도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고요의 눈망울 속에 묻어둔 보석의 살들-이마 눈 코 깨물던 어깨, 점이 번진 젖, 따뜻한 꽃까지 다 어루어서 잠시 골라 앉은 바윗돌아 좀 무겁느냐? 그렇게 청매빛으로다가 저문다 결국 모과는 상해버렸다 -「저물녘-모과의 일」 전문 버릴수록 가져지고 지울수록 선명해지는 게 세상살이의 이치라면 장석남의 시는 이미 그 일가를 이루었을 터, 이번 그의 시집은 작고 더 작아져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고요’라는 구멍 속에서 홀로이 노는 한 사내를 만나게끔 한다. 무쇠 솥을 사 몰고 올 때, 그것을 꽃처럼 무겁다 할 때, 그 속에 쌀과 수수와 보리를 섞어 안친 밥을 지어 우리들을 부를 때, 그를 어찌 시라 아니할까. 시로 그리 생겨먹은 것을. 그가 가진 특유의 섬세함과 유연성을 가장 정점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감히 자부하는 60편의 시가 3부로 나누어 담긴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강박적이리만치 열과 행을 꽤나 조여서는 더는 뺄 것도, 더는 넣을 것도 없이 콤팩트한 시를 우리 앞에 선보이고 있다. “하나 둘 셋 넷 다서 여서 일굽 일굽 일굽” 하듯 그만의 특유한 말법도 살아 있으려니와 두 줄 할 것을 한 줄로, 한 줄 할 것을 한 단어로 찍어버리는 데 선수가 되어버린 그는 말을 지우는 데 더 큰 말의 그림자가 드리운다는 것을 알아버린 연유로 이렇게 씨 뿌리듯 툭툭 시를 뱉는다. 손으로 쓰는 시 그 너머에 입으로 부는 시라니. “아무 보는 이 없이 피는 꽃이 더 짙은 까닭은 아무 보는 이 없기 때문”(「물과 빛과 집을 짓는다」)이란 말인가. 이른바 더, 더, 가 아니라 덜, 덜, 을 향해 가는 비움과 침묵 속 여백과 공기의 팽팽함, 그로 풍만해지는 마음의 빈자리에 더욱이 아무나 앉히는 것은 결코 아닌 채로 시인은 빈 의자를 내놓는다. 그 일에 한생을 내걸 정도로 의자 따위에 작심을 하기도 한다. 어둡는데 의자를 하나 내놓으면 어둠 속으로 의자는 가겠지 어둡는데 꽃 핀 화분도 하나 내놓으면 어둠 속으로 잠겨가겠지 발걸음도 내놓으면 가져가겠지 -「망명」 부분 그래, 의자 따위라 함은 그가 눈으로 집고 손으로 들어올리는 ‘돌멕’과도 같이 흔하디흔한 것, 그만큼 사사로운 것. 의자는 따뜻하거나 찰 테고 의자는 단단하거나 부서지겠지만 의자만이 가진 의자만의 예민함을 감지하는 시인은 의자만이 내는 의자만의 소리를 받아낼 수 있는 고도의 청력으로 세상 만물의 들숨과 날숨을 엿들을 줄 알게 된 터, 예를 들어 “때 까만 메밀껍질 베개의 서걱임”(「가난을 모시고」)을, “옥수수밭의 수런거림과 두런거리는 살림을”(「옥수수밭의 살림」), “한밤 물미역 씻는 소리”(「물미역 씻던 손」)를, 그리하여 “흰 돌멩이 하나 들어다가 갓 풀린 개울물에 넣어”두고 “귀도 하나는 그 곁에 벗어”(「생일」)놓는 일 등을 말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법문’ 아닌 소리가 또 어디 있으랴. 세상 모든 소리가 ‘법문’이 아니고 또한 무엇이랴. 결국 시인이 말하고자 함은 아마도 세상을 맞닥뜨리는 자의 어떤 자세란 데 있을 것이다. 수로에 외발로 서서 고개 움츠리고 비 맞는 왜가리 어떤 기다림도 잊고 다만 기다림의 자세만으로 생을 채우려 용맹정진하는 왜가리 나는 늦도록 깊고 습한 터널을 뚫는다 시큼하고 외로운 수로(水路) -「수로(水路)에서」 부분 무심이라는 유심, 그 할 수 없음이라는 할 수 있음에 대하여 줄기차게 밀어붙이는 부드러운 완력 틈틈이 늘어진 미주알처럼 어쩔 수 없이 들키고 마는 무언가가 있다. 어머니, 늙은 어머니이자 아픈 어머니와 더불어 늙어가는 중년의 그에게서 언뜻언뜻 비치는 죽음의 잔상. 그러나 그는 이 또한 제 손에서 쥐었다 놓는 혼자만의 놀이로 다스릴 것이다. 그 안에서 충분히 돌려 빚은 경단처럼 말캉해진 시인은 그러려고 이토록 오래도록 품을 격으로 삼은 것이 분명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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