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의 인생을 그리는 화가이다.
지금의 당신을 만든 사람은 당신 자신이다.
앞으로의 삶을 결정할 사람도 당신 자신이다.
-알프레드 아들러-
고민과 후회에 갇힌 나를 해방하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선천적 특질과 성장 환경의 영향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으로 나의 인생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원인론에 빠져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시선을 돌려 목적론으로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 아들러가 제시하는 목적론을 이해하면 지금 나를 가두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목적론은 인생에 대한 접근법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아들러는 ‘인간의 행동 95%는 올바름에도 당연하기 때문에 무시해 버리고 5%밖에 되지 않는 부정적인 행동에 주목한다’고 말한다. 인생 고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간관계 문제는 이 5% 때문이다. 타인과 나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용서하고 받아들이면, 타인의 행동에 선의가 내재하고 있음을 믿으면, 고민하는 문제가 정말 나의 문제인지 이 문제를 방치하면 정말 곤란해지는 사람이 누구인지 냉정하게 판단하면, 인간관계의 문제는 대부분 해결된다.
열등감이 없는 사람은 없다
지금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 때문에 열등감을 느낀다 해서 위축될 필요 없다. 아들러는 ‘열등해서 열등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우수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열등감은 존재한다. 목표가 있는 한 열등감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 우월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다. 발전을 향한 열망을 품은 열등감은 성장을 촉진하는 훌륭한 촉매제이다.
우리는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의 흐름에 유연하게 적응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해야 한다. 타인과 환경을 핑계 삼아 실천 범위를 제한하고 좌절을 피하고자 가능성을 포기하면 열등 콤플렉스에 빠지게 된다. 도전을 주저하고, 변화를 멈추고, 가능성에서 후퇴하면서, 낙담, 불안, 걱정에 지배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자신, 타인, 세상을 향한 분노를 일으킨다. ‘어쩔 수 없었다’, ‘내 탓이 아니다’라고 외치지만 냉정하게 바라보면 사실 선택할 힘과 권한이 자기에게 있었음을 알게 된다. 지금에 이른 결정을 내린 사람은 자신이다.
열등감에 갇혀 열등콤플렉스로 키운 사람과 열등감을 이용해 성장한 사람으로 나뉘는 것이지 열등감이 없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미숙함을 비난하지 말자. 완벽을 꿈꾸기보다 용기를 내어 지금의 자신을 인정하고, 한 걸음씩 전진하는 사람이 진정 강한 사람이다.
감정은 목적을 위해 만들어 내는 수단일 뿐, 휘둘리지 말라
초등학생쯤 되는 아이들이 싸우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멀리서 봤을 때는 ‘애들은 싸우면서 크지. 그래도 다칠 정도로 싸우면 안 될 텐데’ 정도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점점 가까이 가보니 놀랍게도 맞고 있는 아이가 조카라면? 그럼 가벼운 걱정이 놀람과 분노로 바뀌고,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아이들이 싸우는 상황은 변치 않았는데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감정과 행동이 달라진다. 이렇듯 우리는 상대방으로 인해 감정을 품고 행동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에 집중하거나,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상대방 행동의 목적에 주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목적이 있고. 감정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모든 감정이 마음속에 있는 것은 아니며, 자신과 타인, 그사이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분노와 울음은 상대를 조종하고 싶은 목적을 위해 스스로 만들어 낸 감정이다.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비난하고 동정과 주목을 받으려고 우는 것이다. 분노 역시 상대를 공격하고 지배하고 싶다, 주도권을 잡고 싶다, 나의 권리를 지키고 싶다는 목적을 드러내는 수단이다. 발생한 일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분노’라는 최종 결정을 내린 사람은 자신이다. 타인에 대한 통제 욕구를 내려놓으면 분노도 가라앉는다. 분노, 슬픔, 우울, 불안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주목하고 지배당하면, 비참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다.
원하는 대로 자신을 바꿀 수 있다.
심리학적 ‘성격’은 개인의 패턴화 된 인식, 사고, 감정에 기초한 행동 패턴을 말하며 변하기 어렵다고 가정한다. 만약, 유년 시절의 경험과 환경으로 만들어진 성격이 평생 변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모습도 과거와 그리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성격, 신념, 사고방식, 행동 경향, 버릇 등을 아울러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정의하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선천적 특질과 성장 환경의 영향을 받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살면서 자신이 해 온 수많은 선택이 지금의 라이프 스타일을 결정한 것이다.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라이프 스타일로 변화시켜야 하는 이유는 라이프 스타일이 자신과 세계에 대한 시선과 해석을 결정하며, 이 해석이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즉,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면 해석이 바뀌고, 그에 따라 행동도 달라진다. 자신을 ‘어차피 해도 잘 안되는 사람’이라고 해석하는 사람과, ‘하면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석하는 사람의 행동이 같을 수는 없다. 세상을 경쟁자와 적이 가득하다고 해석하는 사람과, 협력하고 공감할 동료로 가득하다고 해석하는 사람의 행동이 같을 수도 없다. 부정적인 자기개념과 세계상을 가지고 있다면 그 두 가지가 만들어 내는 목표인 자기이상도 긍정적일 수 없다.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이프 스타일은 인생의 공식과 같다.
라이프 스타일이 건설적이고 건강한지 점검할 수 있는 4가지 키워드가 있다. ‘존경심, 책임감, 사회성, 생활력’이다. ‘상대방을 대등한 인간으로서 존경하고 있는가?’, ‘주어진 과제를 책임감 있게 해내고 있는가?’, ‘자신의 요구를 제안할 때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며, 타인의 요구를 경청하고 있는가?’,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갖추고 있는가?’ 이 질문을 라이프 스타일의 바로미터로 삼으면, 삶을 스스로 결단하는 용기, 자신과 타인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용기를 북돋우는 너그러운 인격, 상호신뢰와 존경으로 맺어진 소속감을 얻게 된다. 그 결과 일상은 행복과 만족으로 채워지고 인생도 풍요로워진다.
인간관계 문제를 해결하려면 타인과의 거리부터 확인한다
타인의 기대에 충족하기 위해 애쓰고, 인정받기를 바라면, 결국 타인의 삶을 살게 된다. 인간관계 문제로 시달리지 않으려면 타인과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적당함은 계량적 수치가 아닌지라 내가 넘지 말아야 할 경계를 어디에 그려야 할지 몰라서 어려운 것이다.
타인의 과제와 나의 과제를 분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과제의 결과를 최종적으로 책임질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면 주체가 명확해진다. 과제의 주체를 혼동하지 말고, 나는 나의 과제를 수행하고, 상대의 과제는 상대에게 맡기는 것이다. 상대가 선의를 내세우며 나의 과제에 지나치게 개입하거나, 상대의 과제를 대신하느라 나의 과제를 소홀히 하거나, 상대의 과제임에도 마치 나의 과제인 양 속을 끓인 일은 없었는지 생각해보자. 아마도 그 끝은 그리 좋지 못했을 것이다. 과제 분리를 명확히 하지 못하고 서로의 영역에 발을 들이면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해서 ‘타인의 과제에 절대 간섭하지 않는다! 미움받더라도 상관하지 말고 나의 과제만 생각한다’, ‘본인 일은 본인이 알아서 하고 올곧이 책임진다’를 지향하면, 타인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져 버린다. 이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전제에서 벗어난다. 과제 분리는 인간관계의 출발점이지,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타인의 요구를 무시하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