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보다 ‘함께’가 좋은 이유
요즘은 뭐든 ‘혼자’서 하는 게 대세이지만, ‘함께’여서 더 좋다고 말하는 언니들이 있다. 함께 읽고, 함께 배우고, 함께 음식을 나누며 더욱 성장하는 여행을 즐기는 이들.
직업도 나이도 취향도 제각각인 언니들 네 명이 일본에 이어 대만을 열흘간 여행했다. 지난 일본 여행은 『언니들의 여행법 - 도쿄, 가루이자와, 오키나와』로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들의 여행은 유명 관광지를 돌아보는 여행이 아니라, 차를 마시고 서점을 찾고 옛 정취가 살아 있는 골목과 거리를 산책하며 도시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여행이다. 이들은 별 대수롭지 않은 평범한 장소일지라도 여행자의 왕성한 호기심을 발동시켜 그 속에 감춰진 수많은 이야기를 파고든다.
호텔 유리창에 씌어 있는 대만 문학가의 짧은 글귀에서, 우연히 듣게 된 버스킹하는 소녀의 노래에서, 허우샤오셴의 30년 전 영화 [비정성시]에서, 대만의 인기 가수 덩리쥔의 앳된 목소리에서 그들은 새로운 영감과 에너지를 얻는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여행은 일상의 감각과는 다른 감각의 근육을 발달시키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다가도 어느 순간 일정표를 집어던지고 과감하게 새로운 길을 선택하며, 오로지 위스키를 맛보기 위해 하루를 온전히 바치는 대책 없는 언니들. 달콤한 것은 싫다면서 스위츠의 천국 타이중에서 아이스크림과 펑리수와 누가 캐러멜에 혀와 돈을 아낌없이 탕진하는 이들의 여행이 유별나다.
책과 영화에 관한 한 거의 사전 수준인 심혜경, ‘음식이 곧 역사’라는 생각으로 오직 음식 주문을 위해 외국어를 배우는 손경여, 항상 밝은 모습으로 쇼핑의 기술을 전파하는 김미경, 그리고 차와 건축, 미술에 관한 깊은 관심으로 언니들의 여행을 더욱 촉촉하고 향기롭게 만들어주는 최예선. 이들의 독특한 여행 감성은 각자의 취향을 반영한 에세이와 3인칭의 시점으로 여행기 전반을 이끌어가는 에세이스트 최예선의 따뜻하고 감각적인 문체로 더욱 생생하게 전달된다.
왜 타이난에서 시작할까?
대만은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 2시간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인데다 지하철,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도 저렴하며, 고속열차로 북부에서 남부까지 단 두 시간 만에 주파할 수 있다. 전주나이차, 펑리수, 누가크래커, 우육면, 망고빙수 등 대만 하면 떠오르는 싸고 맛있는 음식도 매력적이다. 요즘엔 디자인 호텔이 부쩍 늘어서 레트로풍의 숙소부터 세련되고 편리한 호텔까지 숙소 선택의 범위도 넓다. 한마디로 대만은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먹을 수 있고, 원하는 분위기의 숙소에서 쾌적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대만의 속살이 궁금한 언니들이기에, 이들의 여행은 대만의 2백 년 고도 타이난에서 시작해 타이중, 르웨탄, 타이베이로 거슬러 올라간다. 타이난은 네덜란드의 통치를 받던 1624년에 행정수도로 지정됐고 이후 청나라에 복속된 후 1887년 수도를 타이베이로 옮기기 전까지 2백여 년간 대만의 수도였다. 그러니 타이난에서부터 대만의 고유한 문화가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대만의 온갖 샤오츠가 탄생하고,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 들어서고, 네덜란드, 청나라, 일본의 지배를 차례로 견디며 광풍 같은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곳…. 대만의 속 깊은 이야기가 듣고 싶다면 역시 타이난부터 시작해야 한다.
타이난은 안핑구바오의 네덜란드 유적과 시내 한복판의 하야시 백화점을 비롯한 일본통치기 유적들이 생생히 그 역사를 증언한다. 대만 최초의 학교이자 공자 사원인 공묘, 바다 물길이 시내를 가로지른 흔적이 남아 있는 선눙제의 골목, 여기에 타이난에서 처음 만난 대만의 문학가 예스타오의 시와 문학관이 우연처럼 여행에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진다.
하지만 타이난을 제대로 여행하려면 갖가지 샤오츠를 놓칠 수 없다. 달고 맛있는 과일, 언니들의 영혼까지 사로잡은 오징어쌀국수, 이름도 요상한 관차이반 등 맛있는 것을 먹으려는 이들의 집요한 노력은 우육면 한 그릇 먹겠다고 땡볕에 3킬로미터를 마다하지 않고 걷는 데서 절정을 이룬다.
언니들의 여행에 빠질 수 없는 것, 차와 술
언니들의 여행에서 ‘티타임’은 빠질 수 없다. 처음 이들의 만남을 이어준 것 역시 ‘차’였기 때문이다. 대만은 동방미인을 비롯해 맛있는 차가 지천이다. 타이중의 무위초당에서 대만차를 제대로 경험한 뒤로 언니들은 온갖 대만차에 빠져든다. 심지어 대만에서 최고의 풍경을 자랑하는 르웨탄에서도 수묵화 같은 호수보다 일월로차창의 차밭에 반해 홍옥 홍차, 아살모 홍차를 시음하느라 정신을 쏙 뺀다. 타이베이에서도 마찬가지. 타이베이 101타워에 간 언니들은 대만을 찾는 모든 관광객들이 들르는 딘타이펑을 뒤로하고 왕덕전에서 차를 고르는 데 모든 시간을 소비한다. 대만인 현지 친구와 함께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지로 유명한 단수이의 아름다운 옛 유적지를 돌아볼 때도 비밀처럼 숨겨진 찻집에 도착해서야 온전히 단수이 여행의 본심을 드러낸다. 이쯤 되면 언니들의 여행은 그야말로 ‘차 여행’이라 할 만하다.
한편 일본 여행에서 시작된 ‘심야술집’은 대만에서도 이어진다. 이들의 심야술집은 편의점에서 사 온 간단한 술과 안주로 숙소에서 즐기는 술자리다. 대만은 요즘 크래프트 맥주 열풍이 불어 선택지가 다양하다. 절기별 맥주, 흑백 맥주, 18일 맥주, 도시 시리즈 맥주, 과일 맥주 등 수많은 맥주의 향연 속에서 이들이 선택한 최고의 맥주는 바로 꿀맥주! 달콤한 술은 싫다면서도 이들은 여행하는 내내 손에서 꿀맥주를 놓지 못한다.
그리고 타이베이에서 한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이란의 카발란 위스키 공장 투어! 아직 우리에게 생소한 도시인 이란에는 설립된 지 불과 7~8년 만에 세계적인 위스키로 부상한 카발란 위스키 양조장이 있다. 언니들은 이곳에서 위스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구경하고, 자기만의 위스키 블렌딩을 체험하면서 특별한 하루를 보낸다. 동네 빵집 이순쉬안의 맛있는 파빵과 동화작가 지미 랴오의 책을 모티프로 한 공원을 발견한 건 기분 좋은 덤이었다.
타이베이의 재발견, 다다오청
언니들의 여행에서 숙소는 가장 중요한 선택지다. 타이베이에서는 백 년 된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숙소 주변이 ‘다다오청’이라 불리는 옛 약재상이 즐비한 거리 한가운데라는 건 도착하고 나서야 알았다. 그때부터 타이베이가 처음 상업도시로 부상할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다다오청 탐험이 시작된다. 1920년대와 관련된 책만을 파는 서점, 남녀의 인연을 기가 막히게 점지해준다는 성황묘, 언니들에게 우아한 아침을 선사한 ASW 티하우스, 시끌벅적한 닝샤 야시장까지 언니들은 옛 것과 새 것이 조화를 이룬 거리를 떠날 줄 모른다. 게다가 숙소에서는 음질 좋은 스피커가 딸린 전축으로 매일 밤 덩리쥔의 달콤한 노래와 경쾌한 듯 무심한 보사노바를 듣느라 밖을 나서는 시간이 한없이 늦어지곤 했다.
하지만 허우샤오셴에게 헌정된 시네마테크인 타이베이 필름하우스, 일본의 쓰타야보다 먼저 24시간 영업을 시작한 서점이자 대만인의 자랑인 성품서점 둔난점, 타이베이 서민들의 전통적인 아침식사인 더우장과 유탸오를 맛본 푸항더우장, 요즘 가장 핫한 대만식 프렌치 비스트로인 먀오블러스 등은 놓칠 수 없는 선택지였다.
밤마다 편의점의 술과 안주를 곁들여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허우샤오셴의 영화를 노트북으로 함께 보고, 가까운 서점에서 오래 머물고, 맛있는 차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지름신을 부르는 언니들.
이들의 여행은 열흘간의 짧지 않은 여정으로, 언니들만의 특별한 여행법으로 대만의 색다른 모습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