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스럽고도 고요한 인물들이
쓸고, 닦고, 정리한 슬픔들
강보원 시인의 첫 시집 『완벽한 개업 축하 시』가 민음의 시 284번으로 출간되었다. 강보원 시인은 2016년 《세계일보》 평론 부문으로 등단하여 평론뿐만 아니라 시, 에세이 등 다방면의 장르에서 고유한 글쓰기를 선보여 왔다. 시집 『완벽한 개업 축하 시』는 강보원이 시인으로서 내보이는 첫 결실로, 강보원 특유의 힘 빠진 유머와 지성, 구조에의 새로운 시도가 돋보인다. 시집은 “슬프지 않아도 괜찮으면요”라고 쓴 시인의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조재룡은 강보원의 시가 “슬퍼야 한다는 정서적 움직임을 통해” 슬픔을 기술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강보원은 슬픔을 “쓸고, 정리하고, 청소하”는 방식으로 슬픔의 전형성에서 벗어난 장면들과 인물, 화자들로 독특한 시를 직조해 낸다. 그리하여 건조한 단어들, 문장의 작동 방식에 대해 골몰하는 문장들, 만화적 인물들, 풍경들만 존재하는 산책의 장면들, 시 전체를 통제하는 독특한 시적 구조들이 선택되었다.
그러나 슬픔이 소거된 시에서 독자들이 읽어 내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슬픔,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모를 낯선 슬픔이다. 시집의 표제작 「완벽한 개업 축하 시」에는 ‘완벽한 개업 축하 시’가 들어 있지 않다. 완벽한 시에 대해 골몰하는 “그”의 고민이 있을 뿐이다. ‘완벽한 개업 축하 시’가 없는 시 「완벽한 개업 축하 시」를 통해 그 완벽함이 무엇일지 저마다의 방식대로 짐작해 보듯, 우리는 슬픔이 소거된 시집에서 낯선 슬픔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를 울게 하는 슬픔이 아닌, 차곡차곡 정리해 두는 것이 가능한 슬픔들을.
■ 의도된 헤맴
우리 바다 깊숙이 들어가고 있는 거 맞지? 그래 맞아. 그런데 왜 우주로 가고 있는 거 같지, 이거 우주선인가? 아니 잠수함 맞아. 아니 아니 이거 우주선 아냐? 아니 아니 잠수함 맞아.
―「비품 보관 요령」에서
강보원의 인물들은 자주 헤맨다. 그들은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현실이 바다인지 우주인지 확신할 수 없다. 몸을 실은 잠수함이 “빨갛고 동그랗고 울퉁불퉁한”(「잠수함(혹은 우주선)을 탄 함장의 일생」)지 정확히 기억해 내지 못한다. 공간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자신과 상대가 내뱉은 말에 대해서까지도 강보원의 인물들은 쉽사리 진실을 가려낼 수가 없다. 모든 말을 반대로 내뱉기로 한 남자와 여자가 있고, 장난 끝에 남자가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여자는 이렇게 답한다. “너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거야?”(「참외의 시간」) 어떤 가정으로도 명백한 참을 가려낼 수 없는 장난의 끝에는 오직 무수한 헤맴만 있을 뿐이다. 강보원은 화자와 문장 들을 끝나지 않는 헤맴 속에 놓아둠으로써 이들을, 그리고 독자들을 오롯이 시 안에 붙잡아 둔다. 시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동안 우리는 강보원이 탐구하는 문장의 가능성들과 새로운 시적 질서를 천천히 가늠해 볼 수 있게 된다.
■ 만화적 인물들의 무용한 몰두
징징이의 클라리넷을 부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사람이라면 낙지처럼 손가락을 모으고(낙지는 손가락이 없으므로) 손등을 구부려 손 전체를 클라리넷을 감아 쥔 낙지의 촉수처럼 만든다 그리고 입술을 쭉 내밀고 클라리넷을 부는 것처럼 양손을 입술의 앞쪽에 위치시킨 뒤 박자에 맞춰 들썩인다
―「클라리넷 연주법」에서
강보원 시의 인물들은 얼핏 만화 캐릭터처럼 보인다. 만화 《스펀지밥》의 낙지 캐릭터 ‘징징이’처럼 클라리넷을 불어 보고자 시도하는 화자가 나오는가 하면, ‘너무 헛기침이 많은 노배우’의 일과를 늘어놓기도 하고, 어질러진 방을 정리하려고 방구석에 놓인 벌집부터 옮기는 ‘나무 인간’이 등장하기도 한다. 당장이라도 떠들썩한 사건에 휘말려 우스꽝스러운 결말을 맞을 것 같은 인물들이지만 그들은 고요히 자기만의 일에 몰두한다. ‘징징이’의 발 모양처럼 다섯 손가락을 모아 보기도 하고 ‘징징이’가 서 있는 방식대로 발을 모아 보기도 한다. 이런 몰두 끝에 얻는 효용이라면 “바다 속에 잠긴 기분 짭짤한 소금 맛 내게 팔과 다리 두 개 정도씩 부족하다는 감각” 정도다. 효용이 없어 보이는 일에 몰두하는 일을 바라보는 것은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다가오지만, 그것을 꿋꿋이 계속하는 인물들을 바라보는 일은 곧 단단한 용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