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메시아주의를 다시 읽는다!
―바울의 유대교적 면모와, 서구 사상에 미친 영향을 밝혀내는 문제작!
이 해체 작업의 폭발력은 특히 바울에 대한 유대교의 독해와 그리스도교의 독해가 서로를 얽어맸던 곤경에서 이 양자를 구출해 냈다는 점에 있다. 타우베스는 이 강연에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라는 양극의 대립으로 인해 경직화된 사유의 형식을 폭파시켜 버린다. 바울에 대한 독해 작업을 통해 타우베스는 지금까지 무시되어 왔던 측면, 즉 유대 전통 안에 있던 해방적인 측면에 집중한다. 그리스도교가 슬쩍 감춰 버렸던 바울, 그리하여 역사 속에서 유대교에 가장 위험한 무기가 되어 버린 바울, 타우베스에게는 이 바울이 지금까지 탐구되지 않은 채 버려져 있던 광활한 지대를 횡단하는 데 있어 길잡이와 같은 인물이 된다.?알라이다 아스만·얀 아스만·볼프?다니엘 하르트비히, 「편집자 후기」 중에서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헤겔, 니체, 프로이트, 바르트, 슈미트, 벤야민……. 모두 사도 바울을 자기 사유의 핵심 대상으로 삼았던 신학자·철학자들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교의 창시자로서 신학에서만 중요한 사상가가 아니라, 2000년간 서구 세계를 지배한 그리스도교의 질서를 형성한 인물로서 이 질서를 고민하고 초월하려 한 사상가들에서도 최대의 스승이자 적수였다. 하지만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반목, 신학과 철학의 분리 등으로 인해 바울 사유의 전모는 아직까지도 완전히 드러나지 못했다. 과연 사도 바울은 누구인가? 유대인이면서 사도였던 그의 메시아주의는 어떤 재료들로 형성된 것인가? 바울에 비추어 현대 사상을 읽으면 어떤 새로운 이해가 가능한가?
그린비출판사에서는 야콥 타우베스(1923~1987)의 『바울의 정치신학』(Die politische Theologie des Paulus, 1987)을 ‘크리티컬 컬렉션’ 15번째 도서로 출간하였다. 이 책은 독일 철학계의 문제적 사상가 중 한 명이었던 타우베스의 마지막 사유를 담고 있는 저작이면서, 동시에 국내에 처음 출간되는 타우베스의 저작이기도 하다. 타우베스가 사망 직전인 1987년 2월에 행한 ‘바울 강연’을 엮어 출간한 이 책은, 바울의 사유를 완전히 새로운 맥락으로 옮겨 놓음으로써 타우베스를 바울 연구의 급진적 아웃사이더로 자리매김했다. 나아가 이 책은 신학과 정치의 관계를 둘러싸고 벌어진 20세기의 논쟁을 이해하게 해주는 조명을 비춰 주고 있기도 하다.
바울은 유대인이었지만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인물이다. 개종 후 그가 보여 준 사유와 활동 덕분에 그리스도교는 세계 종교로 정착할 수 있었고, 이런 이유로 바울은 그리스도교의 아버지로 불린다. 하지만 바울의 사유에 담겨 있었던 ‘유대교적’ 면모는 아직 제대로 파악되지 못했다. 야콥 타우베스는 제도적 경직화로 인해 감춰져 있었던 바울의 유대교적 전통을 밝혀냄으로써,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의 분리’라는 뿌리 깊은 이분법을 해체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바울이 제시했던 메시아주의적 ‘삶의 형식’과 ‘믿음의 형식’을 새로운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한다.
또한 철학적·역사적으로 『성서』를 해석하는 근현대의 전통과는 정반대로, 타우베스는 『성서』를 통해 현대 사상가들의 문제설정을 파악하고자 한다. 현대 사상가들이 바울과 그리스도교가 세운 서구의 가치 체계를 어떻게 뛰어넘고자 했는지, 정치와 법, 공동체의 문제에 관한 현대의 논쟁에서 바울이 어떤 키워드로 역할하는지를 드러냄으로써, 타우베스는 현대 사상에 침투해 있는 바울의 영향사를 새로운 차원에서 보여 준다.
새로운 바울 독해: 유대인 바울의 메시아주의 이해하기
▶「로마서」와 바울의 부정적 정치신학
타우베스는 사도 바울의 「로마서」를 독해하면서 바울의 새로운 모습을 끌어내고 있다. 이에 의해 구원에 대한 바울의 믿음, 바울이 세우려 한 공동체 등이 정치적 문제가 된다. 타우베스는 바울의 「로마서」가 “정치신학이며 카이사르에 대한 정치적 선전포고”(45쪽)라는 테제를 내세운다. 당시 세계 질서는 로마 제국과 혈연 공동체로 나뉘어 있었다. 바울은 이 질서에 맞서 범이스라엘(pas Israel) 사상을 주장한다. 여기서 ‘이스라엘’이란 (유대인이라는) 혈연에 기반한 공동체가 아니라, 하느님의 질서에 따른 ‘약속’과 ‘믿음’의 공동체이다. 하느님의 옛 백성인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모두 포괄하는 이 범이스라엘은 ‘메시아에 대한 믿음’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질서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범이스라엘’은 어떤 정치 질서를 지닌 공동체인가? 바울에게 세속의 정치 질서와 신의 질서는 완전히 분리되어야 하는 것이었고, 그에게 세속의 질서는 아무런 정당성도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지상의 정치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인 [율]법의 폐기를 주장한다(「로마서」가 정치적 선전포고였던 것도, 로마 제국이 [율]법의 기초한 질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메시아의 도래’와 함께 이 지상의 질서는 폐기되고, 믿음을 가진 자들은 구원받게 된다는 사상을 펼친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저항이나 반항을 하는 대신,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면서 서로 사랑하라(‘이웃 사랑’의 계율)는 충고를 던진다. 그리하면 최후의 순간에 메시아가 도래할 때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타우베스가 해석하는 바울의 사유는 우리에게 낯선 것이다. 얼핏 이는 어차피 종말이 올 테니 이 세상의 문제에서 도피하라는 염세주의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바울과 타우베스는 염세주의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들은 애세주의(愛世主義)자였다. 이웃에 대한 사랑을 통해 이 세계를 무화(無化)하고 “지상의 질서를 틀 짓는 권력의 구조 자체를 폐기해 버리는 부정적 정치신학”을 작동시키려 했던 것이다(252쪽).
▶사도 바울: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교차점
타우베스의 바울 독해의 독특함은 바울의 ‘정치신학’을 새롭게 해석한다는 데만 있는 것만이 아니라, 바울의 사상을 ‘유대교적’ 배경 속으로 옮겨 놓고 이해하려 한다는 데도 있다. 타우베스는 바울의 메시아주의를 ‘메시아에 대한 믿음과 그에 따른 구원’, ‘욤 키푸르(Jom Kippur, 속죄일) 때 행해지는 전례’ 등 유대교적 사유 및 실천과의 관련 속에서 해석한다. 바울의 구상은 온전히 그리스도교적인 것이 아니었고, 그리스-로마적인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타우베스의 바울 해석이 혁신적인 것은 그동안 지속되어 왔던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인위적 분리를 폐기하고,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만나는 이 바울이라는 교차점에서 그동안 제도적 경직화로 인해 묻혀 있었고 또 역사적 발전 과정 속에서 완전히 억압되었던 믿음의 형식과 삶의 형식들에 대한 전망”을 열어 냈기 때문이다.
바울과 근대: 바울의 영향사를 새롭게 복원하기
▶20세기의 바울주의자: 발터 벤야민
타우베스에게 20세기에 태어난 바울주의자는 바로 발터 벤야민이다. 벤야민이 청년 시기에 쓴 「신학?정치적 단편」(Das theologisch-politische Fragment, 1921)과 「로마서」를 비교 독해함으로써 타우베스는 바울과 벤야민의 유사성을 밝혀낸다. 두 사람 모두 세속적인 것의 질서를 ‘니힐리즘’적으로 파악했다. 둘 모두 창조를 덧없는 것으로 이해했으며, 이 세계를 스러져 가는 것으로, 지나가는 것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바울과 마찬가지로 청년 벤야민에게도 지상의 질서와 신의 질서는 분리되어 있는 것이었으며, 벤야민 역시 세속적인 것의 질서를 폐기하는 메시아의 도래를 확신했다.
▶바울을 둘러싼 투쟁: 칼 슈미트와 야콥 타우베스
이처럼 타우베스가 보기에 바울은 세속의 질서와 신의 질서는 분리되어야 하며, 나아가 지상에서는 정당한 질서라는 것이 아예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타우베스에게 가장 강력한 적수였던 이가 바로 칼 슈미트다. 슈미트와 타우베스 모두 지상의 질서는 그 자체로 정당성을 지닐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타우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