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을 신비화하지 않으면서도
타인의 고통에 감응하고 공동체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돌보는 존재’로서의 무당을 복권해낸다.”
_하미나(작가)
“함께 울 일이 없어지면 가장 좋겠지만,
그런 사회가 쉽게 오지는 않을 것 같아요.
누군가는 계속해서 함께 우는 존재로 살아야 한다면,
저는 그런 무당이 되고 싶어요.”
자신을 비운 자리에 기꺼이 타자의 사연을 들이며
모두의 오늘과 내일을 지지하는 무당들의 다채로운 목소리
틀에 박힌 무당의 이미지에서 탈피해 차별 없는 점사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MZ세대 무당이자,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춤추는 예술가 홍칼리의 무당 인터뷰집이 출간되었다. 전작 《신령님이 보고 계셔》에서 무당이 된 계기와 일상,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무당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이야기했다면, 이번 책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에서는 세대도 젠더도 지향점도 다른 무당 6인의 개성 넘치는 삶의 내력을 전한다. 영화 〈만신〉의 주인공인 고 김금화 만신의 제자, 성소수자 무당, 시각장애인 무당, 국가폭력의 희생자를 위로하는 무당, 무당의 자활을 돕는 무당 등 전통적인 무당부터 현대적인 무당까지 다양한 무당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 무당은 여러 방송 매체에서 주로 모든 이의 운명을 꿰뚫어 보는 전지전능한 존재나, 온갖 감언이설과 협박으로 점집 손님에게 사기를 치는 범죄자로 재현되곤 한다. 많은 이가 정신과 의사와 심리상담사에게선 얻을 수 없는 위로와 용기를 무당에게서 구하면서도, 정작 무당의 삶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들여다본 적이 없다. 손님으로서 마주하는 무당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무당을 지금, 만나보자. 무당에 대한 오랜 편견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굿을 발명”하는 현장에 독자를 초대한다.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에는 무당 개개인의 정과 기가 담긴 괴로움과 기쁨을 기록했다. 독서는 모르는 존재의 방에 들어가 앉아보는 일, 골목을 돌며 버려진 물건에게 시선을 주는 일, 타자에게 마음의 뿌리를 내리는 일이다. 당신이 무당의 삶에 잠시나마 뿌리를 내려주길 바란다. 이 책이 샤머니즘과 무당에 대한 편견을 벗길 수 있는 안내서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것과 영적인 것, 혁명과 영성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실천서가 되면 좋겠다. 또한 무당이 흔드는 방울처럼 “나 여기 존재한다! 우리는 여기 존재한다!”라고 경쾌하게 소리치는 목소리가 되기를. _‘프롤로그’에서
“힘든 사람, 억울한 귀신은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곳을 찾아 무당에게 온다.”
한을 풀어주는 직업 ☆ 무당
무당은 “이력서에 쓸 수 없는 일”이라 신비롭고 영험한 ‘상태’로만 인식되곤 하지만, 타자의 고통을 받아들이려고 자신을 비우며 타자를 위해 기도하고 빌어주는 엄연한 ‘직업’이다. 어떤 사회건 역사의 매 순간에 무당이 존재해왔고, 말할 수 없는 고민이 있는 사람, 언어를 가지지 못한 사람이 무당을 찾아가 도저히 다른 데서 풀 수 없는 한을 풀었다.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는 그간 신비화된 이미지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무당의 일상적인 노동과 휴식을 이야기한다. 손님의 일이 잘 풀렸을 때 보람을 느낀다는 무당 혜경궁 김혜경은, 타인의 “모든 짐을 다 짊어져서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고 짜증”이 나면 잠시 산에 올라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푸른 풍경을 보며 마음의 평안을 되찾는다. 무당 무무는 신당을 찾는 손님의 가치관과 자신의 가치관이 어긋나 회의에 빠지기도 하지만, 손님을 향한 기도를 오래 드리고 “상담을 하면 오히려 살아나는 느낌”을 받는다. 무당 송윤하는 시각장애인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아 주업으로 안마 센터를 운영하고 부업으로는 “남의 인생에 관여하는 일”을 하면서 종합적인 치유자의 행보를 걷는다. 이들은 무당을 “용하게 보는 시선”과 “하찮게 보는 시선” 사이에서 오늘도 한 명의 평범하고도 특별한 직업인으로서 아침에 일어나 밥을 챙겨 먹고 열심히 일하고 밤에 다시 잠든다.
무당을 다른 직업과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무당이라는 직업은 굉장히 신비화되었지만 사실 평범하고, 반대로 초등학교 교사라는 직업은 평범해 보이지만 무척 신비한 것 같아요. 우리가 잘 모르는 대상은 너무 신비롭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없고요, 그래서 동시에 신비하고요. _본문에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게 굿의 역할이잖아요.
전쟁을 일으키고 살생을 저지른 신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지극히 정치적인 존재 ☆ 무당
개신교·천주교·불교 등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무속신앙은 “사회와 동떨어진 별개의 법칙”이 아니며, 무당은 “사회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단순히 신에게 선택받은 자가 무당이 된다고 여겨지지만, 개인이 감응하는 고통의 범위와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무당이 탄생한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맥아더 장군을 신령으로 모시는 강신무들이 생겨났고, 전염병과 피부병이 유행한 시절과 지역에는 호구별성(역병을 관장하는 신)을 모시는 무당이 많았다. 사회·문화운동을 하는 솔무니는 전태일 열사를 신으로 모시고 5·18민주화운동, 제주4·3항쟁,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무당이다. 혜경궁 김혜경은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성수대교가 붕괴했을 때, 대구 지하철에 불이 났을 때, 천안함이 침몰했을 때 공동체의 원(怨)을 푸는 나라굿을 했다. 그들은 사회에 발붙이고 우리와 함께 시대를 호흡하며 살아간다.
또한, 무속신앙 또한 가부장제와 이성애중심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만큼,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 없이 점사를 편협하게 해석하는 무당도 많다. 무무는 “여성 혐오적이고 퀴어 배제적인 언어”로는 차별받는 소수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없으며 종교인은 “끝없는 공부가 필요한 직업”이라고 말한다. 무당이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신의 이름으로 구조적 폭력에 가담”하게 되기 때문이다.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는 자신이 속한 사회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국가)폭력의 희생자를 침묵하게 하는 규범을 깨트리기도 도리어 규범에 갇히기도 하는 무당의 모습을 언어화함으로써, 무당도 결국 인간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연루되어 있고 세상에서 분리될 수 없는 존재니까요. 정도는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일정 부분 연결되어 있고, 차별과 인정의 문제든 자본과 분배의 문제든 기후와 생태의 문제든 나는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감각을 놓지 않으면서 내 삶과 내가 돌봐야 할 존재를 계속 책임지려고 노력하는 일, 온전히 책임질 수 없어도 노력을 멈추지 않으려는 마음이 연대가 아닐까 생각해요. _본문에서
“미용실 사장님이랑 수다도 떨고, 친구들 만나서 커피도 마셔요.
제가 어떻게 노는지 보여드릴게요.”
즐거움을 만끽하는 인간 ☆ 무당
모든 직장인이 다 그렇듯 무당도 자기 역할에서 벗어나 스트레스를 풀고 취미 활동을 할 때가 있다. 독서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맺는 송윤하는 점자정보단말기로 판타지소설을 주로 읽으며 《해리 포터》를 가장 좋아한다. 무당 예원당은 반짝이는 무구(巫具)뿐만 아니라 점사판과 향통 등 신령님과 관련한 모든 물건을 직접 만든다. 노래방에서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를 즐겨 부르고 작사·작곡도 하는 무당 가피처럼 흥과 끼가 넘치는 무당이 많다. 굿을 종합예술로 봐달라고 했던 고 김금화 만신의 말처럼, 무당의 세계와 예술은 무관하지 않다. 한때 가수가 꿈이었던 사람(혜경궁 김혜경), 무당이 되지 않았다면 디자이너가 되었을 사람(예원당), 춤추고 공연하는 사람(솔무니)이 인터뷰에 참여한 건 우연이 아니다. 신기운은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이며, 신기운을 예술로 풀 수도 굿으로 풀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무당이 “다양한 형식의 예술을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도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