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을 감각하며 존재의 조건을 인식하다
『문예시대』로 등단한 권명해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입술이 입술에게』가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에는 사물과 풍경을 민활하게 감응하며 사물과 타자를 만나 자기 내면을 표현한 6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급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일상을 되새기기는 어렵다. 우리의 일상은 스쳐 지나가고 경험은 쉽게 휘발된다. 권명해 시인은 경험이 상품으로 전락한 시대에 시를 매개로 섬세한 감각을 회복하고 진실한 자아를 찾는 과장을 그린다.
▶ 사물과 타자를 만나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다
권명해 시인은 일상생활, 기억과 유년, 사물과 풍경 등 여러 층위에서 사물과 타자를 만난다. 사물을 향한 감각은 은유를 통해 자아의 내면을 일상 사건에 투사한다. 이러한 관계는 감상의 오류에 빠지지 않고 “탄광을 헤집고 나온 심장”과 같은 이미지가 “작은 꽃잎으로 피어나길”(「분갈이」) 바라는 심정과 상응하며 구체성을 갖게 된다. 나아가 서로 교차하고 반복하면서 지평을 확장한다.
나의 단발머리 소녀야/너는 아직도 숨바꼭질 놀이를 하고 있구나//사라진 길 위에/오래도록 서 있는 흰 그림자//아직도/너를 찾고 있다 (「미로」 중에서)
이번 시집은 유년의 순수한 자아를 기억하면서도 한편에 새로운 길을 만들어간다. 이는 순수하고 진정한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하려는 노력과 결부되어 감상을 극복하고 자기애를 넘어 사물과 타자로의 인식으로 확장된다. 시인에게 어린 시절은 추억과 향수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자기와 타자에 대한 바른 인식의 계기이다.
▶ 상실과 비극에서 찾아낸 짙고 푸른 빛
시인은 “도시의 밤”에서 “상처의 안쪽/뱉어내는/불길한 암호들”(「불꽃」)을 찾으며 불안정한 상황을 그리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 매몰되지 않고 “결핍과 결핍으로 살아내는/행운목의 균열”(「결속」)이라는 역설을 통해 슬픔과 불안의 균열의 실존을 경유하면서 자기를 찾아가는 존재론적 수행을 보여준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생존의 현실은 슬픔과 우울을 수반한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손톱 밑에 쌓인 가시”(「울음연못」)를 외면하지 않고 그 속에서 “외로울수록 눈부신 바다”(「파도의 말」)라는 답을 찾는다.
각 시편에는 이러한 존재의 답을 찾는 과정이 길로 표현된다. 시인은 길을 걷고, 사물과 풍경을 통해 감각을 확인하며 낡고 훼손된 자아를 걷어낸다. 그리고 진정한 자신과 마주한다. 『입술이 입술에게는』 시인이 걷는 도(道)의 길이며 마음 수행의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