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

닉 수재니스
2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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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이미지를 중첩시키며 완전히 새로운 '시각적 사고' 실험을 선보이는 책이다. 오랫동안 언어는 사유의 주요 수단으로 특권적 지위를 누려온 반면, 이미지는 언어의 보조 수단 정도로 인식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사유의 수단으로서 텍스트에 의존하게 되면서 언어 바깥에 있는 것들이 얼마나 무시되어왔는지를 추적한다. 그리고 언어가 만들어낸 '인위적 한계' 너머의 가능성을 드러내기 위해 문자와 이미지를 '만화'라는 형식 안에서 '동등하게' 활용하면서 두 요소가 '동시에'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생각과 경험, 삶에 견고한 형식을 부여해주기 위해 인간이 고안한 온갖 도구와 개념, 제도 등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일차원적으로 만드는 메커니즘'으로 변모해 거꾸로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다. 이처럼 경직되고 협소한 일차원적인 것을 총칭해 '단조로움'이라 하고, 인간의 잠재적 에너지와 생기, 인간성 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을 동원해 새로운 방식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즉 하나의 관점에 매몰되지 않는 입체적 관점, '언플래트닝'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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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단조로움 … 9 다양한 관점의 중요성 … 37 플랫랜드 … 27 5차원 … 93 생각의 형태 … 57 생동하는 인간 신체 … 77 판에 박힌 길 … 107 묶인 줄 … 123 벡터의 세계 … 133 자각 … 149

Description

천재적 사유와 독보적 드로잉의 만남 경계를 허무는 다양한 관점의 교차 ‘비주얼 싱킹’의 완벽한 모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인터스텔라〉가 남긴 여운은 아직도 선명하다. 놀랍도록 세심하게 표현된 블랙홀, 고대 세계를 상상하게 하는 만 행성과 밀러 행성, 웜홀을 통한 행성 간 이동, 그리고 이에 따라 발생하는 시간차 등은 과학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동시에 영화적 상상력의 극대치를 보여준다. 그중 백미는 이 영화의 기술자문을 맡은 천재 과학자 킵 손도 경탄해 마지않았던 5차원 공간. 지금까지 누가 영화에서 5차원의 공간을 표현하려고 했던가. 머릿속으로 떠올리기조차 쉽지 않았던 5차원의 세상을 시각화함으로써 영화는 우리의 시야를 기존의 시공간 너머 세계로 확장한다. 이처럼〈인터스텔라〉가 과학과 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풍부한 상상력으로 고차원 세계를 보여준 영화라면, 닉 수재니스Nick Sousanis의《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원제 Unflattening)는 언어와 이미지를 중첩시키며 완전히 새로운 ‘시각적 사고Visual Thinking’ 실험을 선보이는 책이다. 오랫동안 언어는 사유의 주요 수단으로 특권적 지위를 누려온 반면, 이미지는 언어의 보조 수단 정도로 인식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유의 수단이 우리의 시야를 규정한다”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이 책은 사유의 수단으로서 텍스트에 의존하게 되면서 언어 바깥에 있는 것들이 얼마나 무시되어왔는지를 추적한다. 그리고 언어가 만들어낸 ‘인위적 한계’ 너머의 가능성을 드러내기 위해 문자와 이미지를 ‘만화’라는 형식 안에서 ‘동등하게’ 활용하면서 두 요소가 ‘동시에’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생각과 경험, 삶에 견고한 형식을 부여해주기 위해 인간이 고안한 온갖 도구와 개념, 제도 등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일차원적으로 만드는 메커니즘”으로 변모해 거꾸로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다. 이 책은 이처럼 경직되고 협소한 일차원적인 것을 총칭해 ‘단조로움flatness’이라 하고, 인간의 잠재적 에너지와 생기, 인간성 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을 동원해 새로운 방식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즉 하나의 관점에 매몰되지 않는 입체적 관점, ‘언플래트닝unflattening’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현재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인문학부 교수이자 만화가인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한다. 발표 즉시 ‘통념과 상식을 뛰어넘는 실험적 시도’라는 평가를 받으며 ‘컬럼비아 대학 최초로 논문 심사를 통과한 만화’ 형식의 이 책은 이후 ‘하버드 대학이 출간한 최초의 만화 철학책’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학계와 만화계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와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철학, 과학, 문학, 예술, 신화 등 다양한 지식 분야를 아우르는 융합의 시선은 강렬하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만나 깊고 넓은 풍경을 만들어내면서 독자로 하여금 이 책을 읽는 행위 자체만으로 새로운 인식 차원과 지식 형태를 경험하게 한다.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본 듯한 강한 여운을 남기는 이 책은 발상의 전환을 꾀하려는 사람들에게 각별한 재미와 유익함을 안겨줄 것이다. 특히 고정관념의 틀을 과감하게 깨부수고 전혀 다른 차원에서 생각함으로써 창의성을 북돋으려는 사람들에게는 깊은 영감과 자극을 줄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위치를 위협하는 듯 보이는 이 시대, 인간의 사유가 얼마나 자유롭고 풍부할 수 있는지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단일한 관점을 넘어 다양한 관점으로 기존의 세계를 넘어 새로운 차원으로 3차원 입체 공간에서 사각형으로 보이는 도형이 2차원의 평면 공간에서는 어떻게 보일까? 직선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평면인 2차원의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도대체 어떤 세계일까? 이러한 공상으로부터 시작되는 에드윈 애벗Edwin Abbott의 소설《플랫랜드Flatland》는 세계 인식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에 기학학적 지식을 담아 생각의 틀을 넘나드는 ‘차원적 사고’를 보여준다.《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이 소설 속 ‘플랫랜드’ 사람들을 인용하며 저자는 그들처럼 우리도 관점의 한계라는 틀 속에 갇혀 있음을 지적한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무수한 선택의 가능성과 자유,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허약한 상상력에 시달리면서 개인의 창의성만을 강요당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너무 많은 생각과 형식과 제도에 얽혀, 특히 이성과 과학이라는 문명의 틀에 매여 인간 본연의 모습과 상상력, 감성, 삶의 진정성을 잃어가고 있다. “단조로움flatness으로 가득 찬” 현실에서 우리는 개별성과 비판 능력을 상실한 채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언제든 대체 가능한, 생각과 행동을 반복하는 ‘일차원적one-dimentional’ 인간으로 살아간다. “걸음마를 떼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런 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스템의 기준대로 분류되고, 이미 방향이 정해진 트랙 위에 놓여 지정된 경로를 따라 앞으로 이동해 지시를 받는다. 정교하게 구성된 수많은 과정을 통과하며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정보를 주입받는다.… 이런 식으로 머릿속에 새겨진 수많은 틀은 내재화된다. 외부에서 주입된 내용이 내면에 그대로 흡수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속한 세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누구나 자기에게 익숙한 세계만이 유일하게 현실적인 가능성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차원을 이동하는 것은 우리가 사물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혁신을 일으킨다. 즉 관점을 달리하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이 모습을 드러내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구조가 분명하게 파악된다. 이를테면 2차원의 평면 세계에서 사각형은 직선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3차원의 입체공간에서 보면 사각형은 온전한 모습이 그 속까지 정확하게 보인다. 이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이해의 폭을 넓힌다. 3차원의 구가 2차원의 정사각형을 플랫랜드에서 탈출시킨 후 3차원의 공간을 직접 몸으로 보여 주기 전까지 정사각형은 어떤 다른 가능성도 생각하지 못했다. 관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확 트인 공간’으로 나가 하나의 관점에 매몰되지 않는 입체적 관점unflattening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발견하고, 수많은 가능성의 문을 열어 두어야 한다. 고정된 시각에 대한 철저한 전복 만화, 철학을 사유하다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진 세계, 우리가 경험하는 이 세상을 하나의 방식으로만 표현하면 필연적으로 평면에 머물 수밖에 없다. 왜곡이 일어나고 연결은 끊어지며 정보는 상실된다. 하나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다가,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눈으로 동시에 사물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과거에는 한 방향, 즉 정면에서만 바라본 평명적인 모습만 인지했다면 이후에는 사물의 다차원적 구조를 인식하게 된다. 다차원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은 사물의 주변을 다양한 각도로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관찰할 수 있고, 바로 놓을 수도, 뒤집어놓을 수도 있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사유와 불가분의 관계로 의미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 서로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로서 ‘시지각’을 소환한다. 인간은 다양한 시각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지각을 얻는다. 이처럼 사유와 관찰을 통합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는 사유와 그 정의에 관한 개념을 확장한다. 독일의 예술심리학자 루돌프 아른하임Rudolf Arnheim에 따르면 “본다는 것은 관계 속에서 사물을 본다”는 의미로, 서로 떨어진 두 눈이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또 머리와 신체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우리와 외부 환경의 관계는 시시각각 변한다. 여기에는 단 하나의, 객관적인 관점이란 없다.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관계 안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행위”를 “분리된 대상을 연결하는 행위”, 즉 그리기drawing로 비유하며, “시각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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