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가 만든 세계

조규희 · History
27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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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의 효과에 주목해 동아시아의 회화 중 자연을 대상으로 한, 가장 ‘순수해’ 보이는 산수화가 실제로는 ‘사심으로’ 빚어진 예술 장르일 수 있음을 탐구한 글이다. 산과 물, 땅과 나무는 그대로의 자연이지만, 그려진 산수에는 ‘의도’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산수화를 다룬 기존 연구는 산수화를 실재하는 경관을 모방한 그림이거나, 높은 안목을 지닌 이들의 순수한 미적 만족을 위한 예술 장르로서 이해해왔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가치중립적 이해는 산수화를 사회와 문화, 정치와 역사에서 유리해온 한계가 있다. 산수화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점과 인식의 형성에 얼마나 흥미롭게 관여해왔는지를 간과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특별한 위상을 지녀온 산수화가 만든 동아시아 사회에 대한 문화사적 탐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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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prologue 1. 산수미의 강렬함 산수를 사랑한다|산수 사랑과 아름다운 인간|산수화는 아름다운 자연을 그대로 재현한 것인가 2. 산수를 사랑하는 것인가, 산수화를 사랑하는 것인가 산수화 사랑의 조건|산수화 걸작의 효과 3. 산수미에 이론이? 산수화와 산수미|산수화와 산수미 이론 4. 그려진 산수미의 효과 국가 이데올로기의 상징: 곽희와 거비파 산수화|소외된 벗들과의 소통의 매체: 송적과 평원산수화|나를 표현하는 길들인 산수: 이공린과 소유지 산수화 5. 가장 아름다운 산수의 정치학: 조선의 팔경도 가장 아름다운 산수, 팔경(八景)의 의미|왕경(王京)과 팔경도|사시팔경도와 통치 이데올로기|경화거족의 산수, 한강 변 별장과 산수화|사림파의 향촌원림과 팔경도 6. 산수미의 구성: 청량산에서 금강산으로 불교의 성지 금강산, 성리학의 성지 청량산|숭불과 숭유의 충돌, 그리고 영남의 산수|영남 사림의 청량산과 〈도산도〉|장동 김씨의 외포(外圃) 조성과 금강산 유람|시의 오묘함은 산수와 상통한다: 청량산에서 금강산으로 7. 산수화가 만든 세계 금강산 그림과 ‘속되고 악한’ 금강산 유람|청풍계 그림과 장동 김씨|장동팔경과 새로운 한양의 산수미|한도십영에서 국도팔영으로: 남산에서 인왕산으로|〈인왕제색도〉와 인왕산 epilogue 감사의 글 주 참고 문헌 그림 목록

Description

자연을 그린 산수화, 새로운 세상을 만들다! 조선 후기 학자 정약용은 화사한 진분홍빛으로 붉은 매화를 바라보며 ‘절속(絕俗)’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꼿꼿하게 눈서리 견디어내고, 담담하게 티끌 먼지 벗어난” 홍매의 향기에는 진정 속기가 없다고도 했다. 정약용이 홍매에 투영한 이미지는 ‘세한삼우(歲寒三友)’였다. 이는 송나라 때 '세한삼우도'가 등장하면서 절개를 상징하는 그림 속 매화 이미지가 실제 매화의 본질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의 매화는 대개 하얀 매화(백매)였다. 조희룡의 홍매 그림들에 나타난 것처럼, 홍매는 강렬하고 화려함의 상징이었고, 탈속적이기보다 세속적이었다. 그렇다면 정약용은 왜 홍매를 보면서 백매 이미지를 떠올렸을까? 그것은 정약용이 시를 지은 때까지 홍매 그림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실제 매화의 색깔과는 상관없이 그때까지 지식인들에게는 오로지 세한삼우도 속 매화 이미지만이 있었다. 예술을 통해 드러난 세계가 실제 세상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그림이 세상에 관여함으로써 세계가 다시 만들어진 것이다. 화사하고 강렬한 홍매 이미지가 정약용이 시를 지었을 때까지는 세상에 관여하지 못한 셈이다. 아무나 그릴 수 없는, 마음으로 창조해내는 그림 산수화의 사전적 정의는 ‘산과 물이 어우러진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린 그림’이다. 서양화에서는 풍경화가 역사화나 초상화, 종교화의 배경으로 주로 그려졌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산수화의 위상은 독보적이었다. 또한 산수화는 아무나 그리는 그림이 아니었다. “산수화로 명성을 얻는 자는 대개 사대부”라는 기록처럼 산수화는 그 규모가 방대해서 주로 지식인들이 그렸고, 동아시아 역사 속 산수화는 인물화, 동물화 등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장르의 그림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었기에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표상이 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그림의 표현 영역도 풍부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에서는 화원을 뽑을 때 산수화를 그리면 가산점을 주기도 했다. 산수화를 보고 즐기는 계층 역시 지식인들이었는데, 이들은 심오한 예술인 산수화를 이해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자신들은 그림보다 실제 산수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여기서 산수화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뛰어난 산수화는 시각적 즐거움뿐 아니라, 마치 물소리가 들리고 청량한 산의 기운이 느껴지는 공감각을 감상자에게 부여했기 때문이다. 즉 작은 화폭에 그려진 산수를 통해서 대자연이 주는 웅장하고 기이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그려진 이미지가 실제 세상에 존재하는 그대로인 것처럼 만드는 힘, 그것이 산수화의 묘미였다. 그림 속 산수가 실제 산수 자연, 곧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산수화를 통해 들여다본 동아시아 사회와 문화 이 책은 이러한 산수화의 효과에 주목해 동아시아의 회화 중 자연을 대상으로 한, 가장 ‘순수해’ 보이는 산수화가 실제로는 ‘사심으로’ 빚어진 예술 장르일 수 있음을 탐구한 글이다. 산과 물, 땅과 나무는 그대로의 자연이지만, 그려진 산수에는 ‘의도’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산수화를 다룬 기존 연구는 산수화를 실재하는 경관을 모방한 그림이거나, 높은 안목을 지닌 이들의 순수한 미적 만족을 위한 예술 장르로서 이해해왔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가치중립적 이해는 산수화를 사회와 문화, 정치와 역사에서 유리해온 한계가 있다. 산수화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점과 인식의 형성에 얼마나 흥미롭게 관여해왔는지를 간과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특별한 위상을 지녀온 산수화가 만든 동아시아 사회에 대한 문화사적 탐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