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사회는 프롤레타리아(노동계급)가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이타주의자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세계적 석학 자크 아탈리는 네트워크 경제와 정보 사회가 도래하면서 일어날 가장 큰 변화를 이 한 마디로 정리했다. 희소성(scarcity)을 중시하던 과거의 경제와 달리 오늘날은 다수의 풍요로움(abundance)이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지식을 많은 사람이 공유할수록 이익이듯 많은 사람이 지식을 소유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즉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미래 사회에서는 타인의 성공이 나에게도 도움이 되고, 타인의 불행이 나에게도 재앙이 된다는 뜻이다.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술칼럼니스트이자 《행복의 공식》, 《시간의 놀라운 발견》 등 베스트셀러 저자인 슈테판 클라인의 신작 《이타주의자가 지배한다(Der sinn Des Gebens)》를 읽고 나면 자크 아탈리의 이런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이타주의에 대한 정의부터 왜 인간은 남을 돕는 일에 서툰지, 어떤 경우에 남을 돕게 되는지, 무엇보다 왜 이타주의자가 되어야 하는지 등의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을 제시한다.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 뇌과학, 경제학 등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다양한 학문과 이기심과 이타심에 관한 유명한 실험들이 총망라되어 이타주의자가 세상을 지배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기적으로 살지 않으면 손해 보고 뒤처질 거라며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남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으로 돌아온다는 태고의 진리를 과학적 논리와 경험적 사실로 확인시켜준다.
그들은 왜 남을 돕는가
2007년, 웨슬리 오트리는 뉴욕의 한 지하철역에서 두 딸과 함께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철이 승강장으로 진입하는 순간, 오트리 앞에 서 있던 젊은 남자가 비틀거리며 선로로 떨어졌다. 오트리는 순식간에 선로로 뛰어내려 남자를 선로 사이에 누이고 그 위로 자신의 몸을 던졌다. 열차는 그의 몸 위에서 멈췄다. 두 사람은 별다른 부상 없이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트리의 영웅적 행위를 칭송했지만, 그의 행동이 학자들에게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인지는 알지 못했다. 경제학과 생물학, 진화심리학 등 인간 행동을 연구한 대부분의 학문들은 인간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라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이타주의를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은 남을 돕는 행위조차도 철저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남을 돕는 행동이 내 기분을 좋게 해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과 칭찬을 받게 해주기 때문에 자선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더 교묘한 방법으로 자기만족을 누리는 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웨슬리 오트리의 경우처럼 눈 깜짝 할 순간에,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분이나 명예를 인식하고 이타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단순히 남을 돕는 행동을 한다는 것만으로 이타주의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각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관찰하는 편이 더 옳다. 이기주의자는 타인이 지불한 수익을 취한다. 반대로 이타주의자는 타인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일에 자신이 비용을 지불한다. 여기서 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은 타인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까지도 포함한다. 그것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쳐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타인을 위해 아주 사소한 이익을 포기하는 것도 이타적 행동이다.
함께 키운 아이가 더 이타적이다 : 인간의 협력과 동물의 협력
인간만 남을 돕는 것은 아니다. 동물들도 다른 동물을 돕거나 협력할 때가 있다. ‘생존’에 필요한 경우다. 새끼를 번식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될 때, 먹이를 구해야 할 때, 천적에게 공격을 받을 위험이 높을 때 등등이 그러한 경우다. 인간도 과거에는 종 번식을 위해, 불가항력적인 자연의 변화나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연대했다. 하지만 인간의 이타적 행동에는 동물의 협력과 차별화되는 이유가 더 있다.
세 살짜리 어린아이와 다 자란 침팬지, 오랑우탄에게 지능검사를 실시했더니 대부분의 항목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숫자, 크기, 원인 결과, 공간 내 사물의 배열 같은 이해력 문제는 양쪽 다 잘 해결했다. 일부 기억력 테스트에서는 침팬지가 인간을 능가하기도 했다. 단 하나, 사회지능만큼은 어린아이가 침팬지와 오랑우탄을 능가했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침팬지보다 높은 사회지능을 갖게 되었을까? 미국의 인류학자 세라 블래퍼 허디의 가설에 따르면 인간의 사회지능은 공동 육아를 통해 형성된 것이다. 몇 년 동안 야생 원숭이와 함께 생활하던 허디는 거의 모든 원숭이가 어미 혼자 육아를 책임지는 데 반해 인간은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평균적으로 엄마가 아이와 관련된 일의 절반만 떠맡는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다른 가족이나 친척, 친구, 이웃, 전문 교육가 같은 외부인이 나누어 맡는다.
허디는 이런 식의 공동 노력을 인간의 협동심의 원천으로 본다. 공동 육아는 엄마가 자신과 아기의 먹을 것을 구하고 휴식을 취해 재임신이 가능한 몸으로 만들어주므로 번식력이 높아진다. 반면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지내는 인간 어른과 아기의 관계는 하루 종일 붙어 있는 어미와 새끼 원숭이의 결속에 비해 훨씬 허약하다는 딜레마를 가져다준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기가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타인의 기분과 욕망을 파악하고 그에 적응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러다 보니 사회지능이 뛰어난 아기가 더 잘 살아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끼리만 친절하자 : 이타주의의 어두운 면
1954년, 미국의 심리학자 무자퍼 세리프는 22명의 소년들을 모집해 두 팀으로 나누고 각각 ‘방울뱀’과 ‘독수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며칠간 강변에서 야영을 하게 했다. 처음 만난 아이들은 스스로 리더를 뽑았으며 나름의 관습과 의례까지 만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 팀은 다른 집단의 소리만 들려도 서로 욕을 해댔다. 그리고 상대 팀이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서로 챙겨주고 나누었다. 수영 못 하는 같은 팀 친구를 비웃던 아이들이 갑자기 수영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갈수록 양 팀 간의 혐오감과 적의는 심해졌고, 그럴수록 집단 내 이타심은 커져갔다.
인간의 이타심은 공정함이라는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기적인 사람, ‘무임승차’로 정의와 공공성을 해치는 사람을 처벌한다. 처벌을 위해 자신이 비용이 드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때로는 공정함을 향한 갈망이 복수심과 질투심을 낳기도 한다. 나의 선의가 이기적인 사람에게 가지 않도록 올바른 수혜자를 찾고자 하는 욕구는 집단 내 인맥을 형성하고, 집단 내 구성원은 무조건 돕는다. 집단 내의 경쟁을 막기 위해 모든 구성원을 평등하게 만들고, 누군가가 우위를 차지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심한 경우 집단에 대한 과도한 충성을 요구하거나, 다른 집단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극단적 테러리스트들은 집단 내에 대한 지나친 이타심의 어두운 본보기다.
무자퍼 세리프는 방울뱀 팀과 독수리 팀을 화해시킬 해법을 찾아냈다. 공격적 충동을 새로운 공동의 목표로 돌린 것이다. 그는 야영지에 마실 물을 공급하는 수도관을 막고, 아이들이 협력해야만 물이 나올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처럼 경쟁 관계의 집단에게 상위의 목표를 부여하면 라이벌 의식을 극복할 수 있다.
미래는 이타주의자의 것이다
공동 사냥은 집단 구성원의 상호 의존도를 높이고 새로운 경제 기반을 마련했다. 그리고 오늘날도 그때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제는 손으로 일하는 사람보다 머리로 일하는 사람이 더 많고, 더 큰 가치를 창출해낸다. 구글이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으로 부상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정보 거래엔 상품이나 서비스 판매와는 다른 규칙이 적용된다. 눈에 보이는 자산은 아무 문제없이 돈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