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코르뷔지에! 미워 죽겠어. 증~말!”
‘현대건축에 이론적 연구의 숨결을 불어 넣은 선구자이자 도시 거주자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스위스 출생 프랑스 건축가. 근대 건축의 3대 거장으로 꼽힌다.’
온라인 사전에 있는 건축가 르코르뷔지에 설명을 추렸다. 2016년 르코르뷔지에의 건축물 17곳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한 건축가의 작업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첫 번째 경우여서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같은 해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코르뷔지에”라는 제목으로 대규모 전시회가 열려 많은 사람이 르코르뷔지에의 건축물을 간접 경험했다.
사후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건축가의 스승이자 건축 작업의 교과서처럼 꼽히는 르코르뷔지에가 ‘싫다’고 이야기하는 한 일본 건축가가 있다. 바로 요시다 켄스케이다. 일본에서 르코르뷔지에는 ‘신성불가침한 존재’처럼 여겨진다고 하는데 그런 분의 뒷담화를 하고 있으니 요시다 켄스케 역시 보통 건축가는 아닌 듯하다. 요시다 켄스케는 건축 실무를 하면서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쳤으며 건축 교과서, 건축평론 등 다방면에서 책을 출간하고 건축 실무자이자 연구자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나이 80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을 르코르뷔지에 건축론에 빗대 미주알 고주알 씹어댄다. 특히 르코르뷔지에의 오만한 자세와 태도에 혀를 내두르며 ‘똥배짱’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또한 건축가, 건축 연구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맹목적으로 르코르뷔지에를 예찬하는 것에 대해 ‘르코르뷔지에 브랜드를 날조해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건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책을 번역한 강영조(동아대) 교수는 “쉬운 글로 저명한 건축을 소개하는 책이 많지만 이 책처럼 건축가의 이면을 경쾌하게 서술한 것은 보기 어려웠다. 특히 르코르뷔지에 전문 연구자가 아니면 쉽게 접하기 힘든 내용으로 가득 차 있어서 르코르뷔지에의 건축 이론이나 르코르뷔지에를 이해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될 것”(7쪽)이라고 책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내 흥미를 끄는 것은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에 성능적으로 결함이 있나 없나가 아니라 르코르뷔지에의 오만한 자세와 똥배짱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부끄러워하지 않는 오만한 태도”가 흥미를 끈다.
_14쪽에서
불순한 ‘책략’이 탄로 나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쓰고 자기 안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를 걱정한다. 그리고 낙선한 것에 격노해 세계의 전위건축가들을 불러들여 국제회의를 개최한다. 더구나 그 회의의 의장에게 사전에 자기 작품을 보이는 부적절한 행위를 한 상대, 심사위원 모저를 앉힌다. 그 똥배짱은 혹은 ‘악당’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지만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다.
_93쪽에서
여담이지만 여기서 얘기하는 ‘근대 건축의 5원칙’은 프랑스어 원문에서는 ‘새로운 건축의 다섯 가지 요소’라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누군가가 거창하게 ‘근대 건축의 5원칙’이라고 했다. 차라리 ‘근대 건축의 5원칙’이라고 하지 않고 ‘새로운 건축에 쓰일 만한 다섯 가지의 아이디어’ 정도로 해두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콘크리트와 구조의 원리를 너무 생각하니 무리와 모순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_130쪽에서
“건축주가 격노해 내팽개친 주택이라고 해도 건축계에서 ‘좋은 건축’이라고 인정하면 문화재로도 지정된다.”
르코르뷔지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17곳의 건축물뿐만 아니라 새로운 건축의 다섯 가지 요소, 현대인의 몸에 맞춰 개발한 치수 체계인 모듈러와 같은 현대건축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16년 도쿄의 국립서양미술관이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을 때 일본에서는 다양한 르코르뷔지에 관련 행사가 개최되었다. 일본의 건축 전문지는 물론 여러 신문과 잡지들은 국립서양미술관을 포함해 르코르뷔지에의 대표작을 앞다투어 소개했다. 특히 도쿄에 있는 국립서양미술관은 필로티, 자유로운 입면, 옥상정원 등 소위 말하는 ‘근대건축의 5원칙’이 잘 담긴 최고의 건축으로 무한 성장하는 미술관이라는 르코르뷔지에의 미술관 설계 개념이 잘 드러나는 건축이라는 점을 들며 칭송했다.
《르코르뷔지에 미워》를 쓴 요시다 켄스케는 당시 일본의 분위기를 전하며 르코르뷔지에의 건축과 건축이론이 어떻게 어긋나 있는지 조목조목 이야기한다. 도면을 분석하면 계획 당시부터 옥상정원은 크게 염두하지 않았으며 돌이 매립된 프리캐스트 판이 고정되어 있어 자유로운 입면 역시 실현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르코르뷔지에의 주요 건축 요소로 일본의 대표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필로티 부분은 ‘필로티의 원조는 이것이다’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르코르뷔지에의 작품집을 보면 달팽이 그림을 그려놓고 무한 성장하는 미술관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는데 실제 완공된 미술관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만卍’자 모양으로 무한 성장할 수 없는 형태라는 점을 지적한다. 게다가 미술관이 무한 성장한다는 개념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닌지 의문도 제기한다. 그러면서 국립서양미술관 일대의 상인들이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을 환영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는데 전문가들조차 무조건 동참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일침을 놓는다.
한 변이 20미터밖에 되지 않는 작은 흰 상자이지만 르코르뷔지에의 새로운 건축을 위한 다섯 가지 요소가 잘 드러난 주택인 빌라 사보아. 이 작은 집에서는 “뭘 해도 뭐가 있어도 결과가 제일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건축주인 사보아 부부는 지내기에 불편해 집을 사용하지 않고 비워 둔 채 방치하고 마을 사람들의 창고처럼 사용되었다. 이 집을 허물겠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르코르뷔지에는 부랴부랴 건축 이론가와 함께 허물면 안 된다는 당위성을 이야기하며 여론을 형성해 정부에서 집을 구입하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복원, 문화재 지정까지 받게 한 것을 두고 한 이야기이다. 르코르뷔지에의 주요 건축 이론이 모두 담겨 있다는 이 작은 집을 보기 위해 프랑스의 정반대 편에 있는 나라에서조차 수많은 사람이 찾아오는데 작품집에서 보던 필로티로 우뚝 서 있는 흰 상자는 볼 수 없다고 한다. 정면에서 보면 필로티가 아닌 1층에 방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건강에 좋지 않아” 필로티로 들어올렸다는 르코르뷔지에의 말과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저자는 마르세유의 위니테 다비타시옹을 방문하면서 복층거실을 볼 수 있다는 기대를 잔뜩 안고 갔지만 전 세대가 이미 복층을 메워 보지 못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위니테 다비타시옹의 주요 개념인 복층거실이 사라졌음에도 가치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처럼 책은 르코르뷔지에 관련 자료를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요모조모 살피며 이미 너무 잘 알려져 있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부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끄집어내 분석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재치 있고 코믹한 그림은 저자가 어느 부분에서 의문점을 던지는지 한눈에 보여준다.
‘여담: 건축주·작품·건축가’라는 제목으로 구성한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자신의 건축 철학을 이야기하며 건축은 그 집에 사는 사람의 행복을 위한 행위라고 말한다. 이 말은 이론과 사상이 앞선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이 싫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한다.
옥상으로 오르는 계단은 일단 있기는 하지만 가장자리로 밀려나가 좁은 계단실이 천창 사이에 있다. 이 계단은 도중에 관장실과 비서실이 있는 공간을 지나서 오르는 것으로 아무리 봐도 손님을 정성껏 옥상으로 오르게 하려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하게 된다. 더구나 그 후의 옥상 사진에는 화단은 사라져 있다. 철거한 것이다.
_37쪽에서
종전 후에도 사는 사람이 없는 이 별장은 이웃 사람들이 맘대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방 하나 가득 풀 말리는 곳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창에는 판자가 못질되어 붙어 있었고 여기저기 금이 간 회색의 콘크리트 상자가 되어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