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편향적인 반쪽짜리 철학사들을 넘어서는 선구적 시도
근대성이 형성되고 전개된 17~20세기의 유라시아 대륙
서구와 비서구에서 무엇이 근대성을 추동했고
근대성은 어떻게 역사를 바꾸어왔는가
오늘을 만든 사상들의 세계지도
국내 철학계에서 보기 드문 학문적 깊이와 폭을 겸비한 동시에 교양 독자들을 위한 저술 작업에 꾸준히 매진해온 철학자 이정우가 많은 이들이 기다리던 『세계철학사 3』을 내놓았다. 지난 2011년, 철학사가 서양 철학사의 동의어와 다름없던 때에 그는, 우리 학자가 쓴 “철학의 진짜 역사, 진정한 세계철학사”를 써내 주목을 받았다. 『세계철학사 1: 지중해세계의 철학』으로 시작한 장대한 여정은 많은 독자들을 그 길로 이끌었고, 이후 7년 만에 펴낸 둘째 권 『세계철학사 2: 아시아세계의 철학』(2018)을 거쳐, 다시 거의 3년 만에 세 번째 기착지에 당도했다. 당초 이 세 번째 책은 여정의 끝이 될 예정이었으나, 목적지가 아닌 기착지로 수정되었다. 3부작으로 완간하려던 처음 계획이 4부작 완간으로 바뀐 것이다. 이번에 펴내는 『세계철학사 3』은 “근대성의 카르토그라피”, 즉 ‘근대성의 전체 지도를 그리는 작업’의 결과를 서구와 비서구를 가로지르는 보편적인 관점에서 더욱 풍성하게 담는 데 집중했다.(마지막 네 번째 책에서는 현대, 즉 탈근대 사유의 지평들을 다룰 예정이다.)
철학사의 긴 여정을 지나서 이제 현대로 직접 이어지는 시대에까지 도달했다. 서양의 전통과 동양의 전통을 논한 후, 이제 우리에게 가까운 시대〔近代〕까지 온 것이다. 이 ‘가깝다’라는 말은 양적 의미로서가 아니라 질적 의미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은 시간의 외연〔代〕이 지금과 가깝다는 뜻이 아니라, 삶의 양식에서의 유사성을 뜻한다.
이 저작에서는 대략 17세기에서 19세기 중엽까지를 근대성이 형성된 시대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근대성이 전개되는 동시에 탈근대성이 도래하는 시대로, 그리고 20세기 중엽 이후를 현대성의 시대로 이해했다. 이에 입각해 『세계철학사』의 이 3권은 17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근대성의 형성과 변화를 다루었다.(「여는 말」)
『세계철학사』 전체의 구도는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두고 인류 문명의 사유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첫 번째 권은 부제 “지중해세계의 철학”이 말하듯,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이슬람세계까지 포함)에서 고대와 중세에 전개된 철학의 역사를, 두 번째 권(“아시아세계의 철학”)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동북아와 인도)에서 고중세에 전개된 철학의 역사를 다루었다. 적어도 근대 이전에는 두 세계의 철학이 따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이제 완성한 3권에서는 동과 서를 구분하지 않고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두고 함께 다루며 근대의 사상지도를 그린다. 근대에 들어와 두 세계의 철학이 만났고, 함께 나아갔기 때문이다.
애초 『세계철학사 3』은 근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철학을 다루기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원고를 집필할 때마다 늘 그랬듯 수차례 강의를 거치고 퇴고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740쪽에 이르는 책 한 권이 근대 사유에 관한 내용만으로 이미 꽉 차버렸다. 이 책은, 지금 여기 우리의 삶에 가장 심대한 영향을 끼친 “근대” 300년간의 여러 사유들의 알짜를, 서구와 비서구, 자연철학(자연과학)과 형이상학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일이관지하게 엮어낸다.
16~17세기의 유럽은 이미 근대성이 발아하기 시작한 시대로 간주되지만, 명·조선·에도막부 등 동북아 왕조들의 경우 이 시대는 여전히 전통 문화가 전개되던 시대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 또한 문화의 어떤 면에 초점을 맞추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역사를 구성하는 여러 갈래들에 있어 이 왕조들에서도 이미 근대성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 근대성이 서구에서 급속도로 개화하면서 그 속도 차이가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휘감았다. 우리는 근대성을 이런 유라시아 대륙의 보편적 지평과 서구와 비-서구 사이의 속도차를 동시에 감안하면서 논해야 한다.(「여는 말」)
이러한 “가로지르기”는 지은이가 평생을 고수해온 “철학하기”의 기본 관점이다. 이미 다수의 저작들과 대안공간(철학아카데미, 소운서원)에서의 강의를 통해 전통과 현대, 서구와 비서구, 과학과 철학을 회통하는 철학을 모색해왔고, 또한 공대를 나와 서양 고대철학(아리스토텔레스) 연구로 석사, 서양 현대철학(미셸 푸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땄으며, 한학자인 부친의 영향으로 한문에 능하고 일본 학자들과의 교류까지 활발히 해온 보기 드문 학문적 편력이 쌓여 이 역작이 나올 수 있었다. 덧붙여 현대 수학과 과학, 기술의 영역까지 섭렵함으로써 경계를 허무는 자유로움과 편견을 타파한 보편적인 관점을 장착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내공을 갖추었다.
이 철학사는 동·서양의 사상들을 하나의 구도에 담아 논했으나, 양 전통을 하나로 통합하려 하기보다는 다만 일정한 방식으로 접합하려 했다. 무리한 통합이 양 전통의 이질성과 간극을 외면하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상 처음으로 시도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모험’도 포함되어 있다. 나는 다만 이 시도가 신중한 균형감각을 통해 이루어졌기를 소망한다.(같은 곳)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이해
서구의 자연과학/자연철학과 비서구의 기학
서구에서, 근대가 태동한 17세기는 천재들의 세기, 과학혁명의 세기였다. 케플러·갈릴레오·뉴턴으로 대표되는 과학과 데카르트·라이프니츠 등이 비조가 된 새로운 철학은 자연 이해에 혁명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이 새로운 자연관은 근대성을 형성한 강력한 추동력 중 하나였다. 철학의 한 부분이었던 자연철학이 ‘자연과학’이라는 별도의 분야로 분화하고 나아가 ‘과학기술’이 된 것은 근대 문명의 전개 전반을 압축한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인류 문명의 성격과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같은 시기 아시아에서도 내면으로부터 외물(外物)로 관심의 방향이 바뀌었다. 기학(氣學)이 주자학과 양명학을 극복하며 기(氣)에 대한 객관적인 탐구를 펼쳤는데, 이 객관의 사유가 바로 근대성의 중요한 특징을 이룬다. 다만 과학과 형이상학의 거리가 멀어져버린 서구의 경우와 달리, 여기서 둘 사이의 거리는 최소화된다. 기학적 세계관은 구체적 현상으로부터 자연철학적 이치 그리고 형이상학적 원리의 차원까지를 연속적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이정우는 서구와 비서구에서 공히 외물, 즉 객관세계에 대한 탐구가 근대성을 견인했으나 서구에서만 과학혁명이 일어났던 이유를 바로 여기서 찾는다. 즉 아시아에서는 자연철학이 형이상학에 너무 가까이 붙어 있었기에 사물의 차원으로 내려와 자연과학과 기술로 구체화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의 의미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다른 각도에서 볼 경우, 동북아 철학자들은 그런 종류의 인식을 추구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 아니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경계했다고 해야 한다. 동북아 지식인들은 사물들을 설명하고 조작하면 결국 자연과 인간이 갈라서고 소외가 발생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외물’에 사로잡혀 ‘존심(存心)’을 잃어버리는 것을 경계했던 것이다. 동북아 지식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인격의 완성과 문화세계/이화세계의 구축이지 외물들을 그것들 자체로서 탐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천인합일’로부터 멀어져가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1장)
데카르트가 낳은 환원주의적·기계론적 자연관
자본·국가·과학기술의 삼위일체
철학으로부터 독립한 자연과학은 필연적으로 인식론적 질문을 던졌고, 이에 대한 서구 사유의 최초 대답은 데카르트의 철학이었다. 데카르트의 철학(합리주의, 기계론, 이원론)과 고전 역학의 체계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자연관을 도래시켰다. 이것이 서구에서 발원한 근대성=‘모더니티’의 한 축을 형성한다. 그런데 앞의 인용문에서 짐작할 수 있듯, 책의 곳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