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없도록 하자

염승숙
3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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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소설집 , <노웨어맨>, <그리고 남겨진 것들>, 장편소설 <어떤 나라는 너무 크다>를 통해 지극히 평범하고도 소외된 인간을 정교하게 축조된 환상의 세계로 데려와 이야기를 펼쳐 보인 작가 염승숙. 지난해에는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평론으로도 등단하면서 텍스트와 세계를 읽어내는 촘촘한 겹눈을 가졌음을 인정받은 바 있다. "늘 어제보다 나은 인간이 되고 싶고, 쓰면서 어제보다 나아진 인간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세계를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밝힌 수상 소감은, 소설을 쓰는 일과 문학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세계를 조망하는 일이 전혀 다르지 않음을, 진지한 작가이자 성실한 연구자의 시선을 가진 염승숙의 읽고 쓰는 삶의 순환을 엿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의 두번째 장편소설 <여기에 없도록 하자>는 노동하지 않는 어른은 말 그대로 '햄ham'이 되어버리는 기발한 착상으로 시작하여 무력감이 도저한 이 시대의 청춘들을 핍진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장편'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충실함과 풍성함, '소설'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서사적 재미와 특유의 리듬으로 충만한 이 작품은, 작가가 가진 그 고유한 겹눈으로 읽어내고 써낸 세계를 만나는 일은, 이제 하나의 '사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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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없도록 하자 작가의 말

Description

“여기가 아닌 곳으로.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든.” ­환상과 실재, 소설과 현실을 잇고 엮는 독보적인 감각 200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소설집 『채플린, 채플린』 『노웨어맨』 『그리고 남겨진 것들』, 장편소설 『어떤 나라는 너무 크다』를 통해 지극히 평범하고도 소외된 인간을 정교하게 축조된 환상의 세계로 데려와 이야기를 펼쳐 보인 작가 염승숙. 지난해에는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평론(「없는 미래와 굴착기의 속도-박솔뫼 『도시의 시간』론」)으로도 등단하면서 텍스트와 세계를 읽어내는 촘촘한 겹눈을 가졌음을 인정받은 바 있다. “늘 어제보다 나은 인간이 되고 싶고, 쓰면서 어제보다 나아진 인간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세계를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밝힌 수상 소감은, 소설을 쓰는 일과 문학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세계를 조망하는 일이 전혀 다르지 않음을, 진지한 작가이자 성실한 연구자의 시선을 가진 염승숙의 읽고 쓰는 삶의 순환을 엿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의 두번째 장편소설 『여기에 없도록 하자』는 노동하지 않는 어른은 말 그대로 ‘햄ham’이 되어버리는 기발한 착상으로 시작하여 무력감이 도저한 이 시대의 청춘들을 핍진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장편’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충실함과 풍성함, ‘소설’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서사적 재미와 특유의 리듬으로 충만한 이 작품은, 작가가 가진 그 고유한 겹눈으로 읽어내고 써낸 세계를 만나는 일은, 이제 하나의 ‘사건’이 될 것이다. 고통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몰라야만’ 하는 세대 노동하지 않으면 햄이 되어버리는 질문도 해답도 없는 세계 살아남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안간힘 쓰는 인간, 억지로 숨을 참으면서 참혹을 견디는 자의 생이 이 책에 담겨 있다. _정이현(소설가) 『여기에 없도록 하자』는 노동하지 않는 어른은 모두 햄이 되어버리는 세계의 이야기다. 마치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속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갑충으로 변해버리듯, 불그스름한 가공식품 햄이 되어버리는 것. 반대로 다시 일하기 시작하면 햄은 사람으로 변한다. 뉴스에서는 매일 ‘오늘의 안개’ ‘오늘의 사고’ ‘오늘의 햄’이 보도되고, 신원 미상의 햄들에 관한 정보가 느릿느릿 자막으로 지나가는 이 안개로 가득하고 장벽으로 가로막힌 공간 속, 주인공 ‘추’는 제빙 공장, 이삿짐센터,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전전하며 일하던 어느 날 ‘홀맨’을 구한다며 나타난 선배 ‘약’과 조우한다. 숙식 제공에 채용 증명서를 써준다는 약의 말에 추는 “여기가 아닌 곳으로. 여기만 아니라면 어디든” 하는 마음이 되어 홀맨의 업무가 무엇인지 따져 묻지도 않은 채 그가 이끄는 곳으로 몸을 옮긴다. 햄이 되지 않는 것. 그것만이 다행스러운 현재다. 이 세계에 대항하는 단 하나의 방어태세로서 나는 노동한다. (131쪽) 추는 베어지고, 뭉개지고, 닳아버린 햄이 나뒹구는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는 허허벌판의 게임장 앞에 당도해 그저 대기하라는 명령만을 받는다. 새벽 두시, 마감 시간이 되어 “시간 다 돼갑니다” 라고 손나팔을 하고 외치던 다음 순간, 누군가가 거칠게 달려들어 추의 뺨을 갈기며 욕하기 시작한다. “이 개새끼, 이 햄 같은 새끼, 이 햄보다 못한 찢어 죽일 개새끼가 재수없게!” 화난 손님을 말리지 않는 것이 이곳의 룰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추는 자신의 일이 ‘인간 샌드백’이 되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는 하염없이 버티어 선 채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때리면 맞고, 맞으면 신음했다. 통증과 지루함은 동시에 왔다. 아픈데 지루하고, 지루한데 아팠다. 몸이 괴로운 것도 끝내는 따분해졌고, 그 따분함에도 싫증을 느끼는 때가 잦았다. (218쪽) 하지만 추는 하루하루의 삶을, 상처를 서둘러 봉합해버리며 그 일을 계속해나간다. 그러니까 추의 지속, 성실은 학습된 무기력일까? 아니면 가감이 없이,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수동적 능동의 다른 모습일까? “누구나 ‘무엇’이 되어야” 하기에 “되지 않으면 햄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의 세계 속에, 비정하고 비참한 하루하루 속에 추는 그렇게, 그토록 ‘있는다.’ 폐허에도 아름다움이 있다면 절망에도 리듬감이 있다면 비참에도 사랑이 있다면 “청춘인데 청춘이 아니고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가난한 무력이 이 도저한 세계에서 꿈꿀 수 없음에까지 이르”게 된 디스토피아.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이 낯선 공간이, 질문도 해답도 없는 세계에 놓인 인물들이 보여주는 선택과 행동과 마음이, 지금 바로 이곳의 현실이기도 하다는 것을 독자는 소설을 읽는 한순간 깨닫게 될 것이다. 짙어졌다 옅어지기를 반복하는 안개 속 끊어질 듯 이어지는 대화, 조금씩 뒤틀리고 허물어지는 단어, 돌연 피어오르는 사랑의 기억. 끝끝내 이어지고야 마는 일상 속의 크고 작은 비참 속에 놓인 그들을 조금은 뜨거워진 눈으로, 조금은 시린 마음을 부여잡으며 우리 역시 끝끝내 목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초승달’만큼만 보여요. 햄이 말했다. 사람도, 세상도, 모두 초승달 정도로만 보인다니까요. 가늘고, 얄브스름하게…… 나도 모르게 고개가 갸우뚱 비뚤게 틀어져버려요. 그런다고 더 잘 보이지도 않지만. (207쪽) 2011년, 월가 점령 시위에 울려퍼진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던 그 유명한 바틀비의 전언을 기억하는가? 그리고 지금 2018년, 더욱 나빠지기만 할 뿐인 지금의 시대에는 더 나아간 새로운 말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혹은 그 거리의 함성에 대한 화답이 바로 이것이지 않을까, 하고도 생각해본다. 그러니까 바로 “여기에 없도록 하자”는 말. 단호한 절망의 말로도 간곡한 청유의 말로도 보이는 이 문장이, 소설가 염승숙이 지금껏 보여주었던 환상과 실재의 직조의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다정과 비정이 겹쳐 보이는 한 문장이 아닐까, 곰곰 곱씹어본다. 그 질문을 품은 채 이제 우리가 안개 속으로 걸어가 흠뻑 젖어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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