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의 ‘나’는 현실의 나보다 더 섬세하고 더 진지하고 더 치열하다. 글을 쓸 때 나는 타인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고 더 자세히 보려고 애쓰고 작은 것이라도 깨닫기 위해 노력한다. 글을 쓸 때처럼 열심히 감동하고 반성할 때가 없고, 타인에게 힘이 되는 말 한마디를 고심할 때가 없다. 글쓰기는 언제나 두려운 일이지만 내가 쓴 글이 나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거라는 기대 때문에 게속 쓸 수 있었다.
― 홍은전(<나는 왜 쓰는가>)
이 책 《그냥, 사람》은 홍은전이 노들야학을 그만두고 보낸 5년의 사적이고도 공적인 기록이다, 라고 아주 평범하게 요약할 수 있다. 어쩌면 노들야학의 20년을 기록한 책 《노란 들판의 꿈》에 이어 나온 그의 두 번째 책이자 첫 번째 칼럼집이라고도 쉽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저자 홍은전의 극적인(!) 변화, 반면 거의 변하지 않은(어쩌면 오히려 퇴보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고려한다면, 이 책은 우리 사회의 가장 연약하기 짝이 없는 힘없는 사람들, 힘없는 존재들의 삶(특히 ‘고통’과 ‘저항’)을 가장 정직하고, 가장 격렬하고, 가장 서정적으로 옮겨 적은 기록이다, 고 부를 수도 있다. 거기에 담긴 홍은전의 마음은 아주 작은 존재들에, 그래서 더 소중한 존재들에 뜨겁게 온몸으로 반응하는 다정한 작가의 마음에 다름 아니다. 하여, 나는 이 책을 홍은전 ‘칼럼집’이라는 규범화된 표현 대신, 홍은전 ‘산문집’이라고 부르고 싶고, 독자들 역시 그렇게 불러주고 또 그렇게 읽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로 이 글을 시작하고 싶다.
글 속에는 우리가 함께 기억하는 공통의 사건, 사고도 많지만, 평생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사람들, 존재들이 곳곳에서 ‘출몰’한다. 그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살아 있다고 알았는데 ‘갑자기’ 사고로 죽은 사람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고통 속에 놓인 사람들, 그래서 저항하는 사람들, 그리고 무수한 동물들이다. 그 글들 앞에서 나는 수시로, 거의 매번, 뭉클하고 울컥한다. 어디를 펼쳐도, 홍은전의 기쁨과 슬픔, 분노와 절망,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박혀 있어서다. 대개는 담담하되, 가끔은 격렬하게. 지난해 6월 고양이 카라와 홍시를 만나면서 그전까지의 ‘가슴이(심장이) 아팠다’는 표현 대신, ‘가슴이 쿵쿵 뛰었다’ ‘충격적으로 좋았다’ 같은 표현들이 자주 등장해, 마음이 좋았다. 그들을 만나고부터 홍은전의 겪은 혁명적인 변화, 즉 채식, 동물권에 대한 관심과 활동은 글 쓰는 존재가 애정하는 대상을 만나 스스로의 삶이 얼마나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는지, 동시에 그의 글이 얼마나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는지를 참 잘 보여준다.
지난 5년 동안 저자 홍은전의 삶, 홍은전의 마음을 따라 차례대로 읽는 것이 가장 좋은데(아마 그 과정에서 글을 읽는 ‘나’의 위치, 나란 존재를 수시로 돌아보게 될 것이다), 그중 특히 마음에 남는 글을 몇 꼽으라면 <당신들의 평화>, <앎은 앓음이다>, <어떤 졸업식>, <꽃동네 없는 세상>, <어떤 발달장애인의 생존 기록>, <동물적인 너무나 동물적인>, <고통을 기록하는 마음>, <꽃님 씨의 복수>, <재난 속 인권활동가들>을 들고 싶다. 아, 만일 당신이 이 책을 읽고 홍은전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면, 동료 활동가 미류가 쓴 (애정 넘치는) ‘추천의 글’(<사랑하고 싶어질 때>)도 꼭 읽어보시라 권한다.
또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은, 여러 편의 글 끝에 적혀 있는, 연대와 후원의 손짓(계좌번호)에도 귀 기울여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