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음식’ 하면
피자와 파스타밖에 모르는 당신에게
“그런데 나는 왜 많은 나라 가운데 이탈리아를 선택했을까? ‘스시 천국’ 일본과 무궁무진한 요리의 나라 중국, 서양 요리의 대명사인 프랑스, 인종만큼이나 ‘요리의 용광로’라 하는 미국에도 요리학교가 있는데 말이다. 내가 많은 나라 가운데 고민하지 않고 이탈리아행을 결정한 것은 ‘스토리아(storia)’ 때문이다. 스토리아는 이탈리아어 여성 명사로 ‘역사’라는 뜻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이탈리아 요리’ 하면 머릿속에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 대부분이 피자나 파스타를 떠올릴 것이다. 이탈리아 요리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나라의 음식 1위로 꾸준히 꼽힐 정도로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탈리아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은 피자나 파스타가 아니다. 그것이 전부라고 하기엔 이탈리아 요리의 세계가 너무나 넓고 깊기 때문이다. 저자의 남다른 기록을 읽다 보면 ‘이탈리아 음식’ 하면 피자와 파스타밖에 모르는 우리의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을 만날 것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속담이 있는데, 요리만큼 이 말이 들어맞는 분야도 없다. 서양의 주식인 빵은 이집트에서 시작됐지만 진흙 화덕에서 굽던 납작한 빵에 입체감을 불어넣은 것은 고대 로마가 개발한 벽돌 오븐이다. 와인 역시 로마를 빼놓고서는 말할 수 없다. 예수의 피로 맺은 성스러운 계약을 상징하는 와인은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화하면서 유럽에 본격적으로 퍼졌다. 로마가 없었다면 서양 요리에 와인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포크와 후추도 이탈리아를 통해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파스타, 커피, 옥수수 등 이탈리아와 관련된 음식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다. 이처럼 서양 부엌의 거의 모든 것이 이탈리아에서 시작되거나 이탈리아를 거쳐 유럽에 전파됐다.
저자가 이탈리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이처럼 이탈리아 요리가 전 유럽의 요리, 더 나아가 문화 전반을 이끈 나라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요리법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탈리아 요리가 어떻게 서양 요리의 뼈대가 되었는지, 음식 뒤에 숨겨진 이탈리아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저자는 이탈리아 요리의 ‘스토리아’를 찾고자 했다. 그리고 그 스토리아는 저자에겐 새롭게 만들어나갈 ‘인생의 스토리아’이기도 했다.
요리의 ‘요’자도 모르던 남자가
전쟁터 같은 주방에 뛰어든 사연
이 책의 저자는 20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게다가 기자 경력의 절반을 이른바 3D 부서로 불리는 사회부에서 보냈다. 그런 그가 오랜 방황 끝에 쉰 살을 맞아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떠났다. 여러 출입처를 전전하느라 봉지 커피와 컵라면을 달고 살았던 그가 도대체 어떤 연유로 이탈리아 요리 유학길에 오른 것일까?
나이 쉰에 이탈리아 요리 유학을 떠났다고 하면 어딘가 특별한 구석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저자는 캐리어가 잠기지 않는데도 짐 꾸러미에서 전기밥솥과 전기장판만은 빠트릴 수 없었던 평범한 ‘아재’였다. 다만 바쁘고 팍팍한 기자 생활 중에 ‘어떻게든 한 끼를 해결해볼 요량’으로 만들기 시작한 파스타가 자신을 이탈리아에까지 이끌어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뿐이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스승에게 꾸지람과 불호령을 들어가며 하루에 15시간 이상 (그것도 무급으로!) 사실상 ‘노예’와 다를 바 없이 중노동을 하면서 밑바닥부터 이탈리아 요리를 배운 저자의 유학은 그야말로 좌충우돌의 연속이다. ‘요리 유학’ 하면 동기들과 친분도 좀 쌓고 주변 도시도 돌아볼 수 있는 ‘요리 유랑’이 아니었을까 하고 기대할 법하지만, 저자는 서툰 이탈리아어로 학교에서 배운 수많은 레시피를 익히느라 이럴 여유를 부릴 새도 없었다.
밤늦게까지 연회가 이어지는 이탈리아에서 하루에 백 명 가까이 손님을 받는 것은 물론, 주방에서 계속 서서 일하랴 다리에서 쥐가 나는 건 일상이었다. 심지어 지금까지 이 ‘슬픈 노동’의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정도다. 그런가 하면 이탈리아 음식이 너무 좋아 유학까지 떠났지만 물냉면이 그리워 향수병에 시달리는 등 타지에서 여러 말 못 할 고충을 견뎌야 했다. 유학 가기 전에 ‘돌아오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결심했던 그만의 모토가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매일 기숙사 뒷산에 오르고 스쿼트로 하체를 단련했음에도 결국 저자는 20~30대에게 밀리는 체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레스토랑을 개업하겠다는 꿈을 접고 만다. 그런데도 전 재산인 퇴직금을 탈탈 털어 감행한 그의 일탈이 무익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인턴 실습은 고됐지만 즐거웠고, 서양 요리의 기초인 소스와 와인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면서 이탈리아 요리에 대한 열정의 불씨가 활활 타올랐기 때문이다. 이 정도 고생을 했으면 그만둘 법도 한데, 저자의 머릿속이 두 번째 이탈리아 여행 계획으로 가득 차 있는 이유다.
이탈리아에는
20개 지역의 음식이 있을 뿐이다
9개월 가까이 이탈리아에 머물며 저자는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ICIF 요리학교에서 요리를 배우고 난 후 레스토랑에서 인턴 생활을 이어간다. 실습을 마친 후엔 이탈리아 요리의 출발점이라고 알려진 남부의 시칠리아로 떠난다. 그야말로 남과 북을 가로지르며 이탈리아의 요리를 몸소 겪은 셈이다.
지금도 이탈리아 사람들은 “우리에게 이탈리아는 축구(특히 월드컵)할 때만 존재하는 나라고, 우리에겐 20개 지역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또 이탈리아 소설가이자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는 “이탈리아 음식을 만나는 것은 맛, 정신, 영감,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 등 다른 지역과는 차별되는 그 지역만의 특징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영국이나 프랑스와 달리, 절대왕정이 아니라 지역주의를 택한 것은 이탈리아의 역사적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이탈리아는 오랫동안 20개 도시국가로 독립돼 있었을 뿐 아니라 국토의 길이가 남북으로 1,300킬로미터에 이르고 해안선이 7,000킬로미터가 넘어 식재료가 다양하고, 지역마다 조리법이 천차만별이다. 저자가 머무른 피에몬테와 시칠리아만 해도 북부인 전자엔 목초지가 많아 기름지고 맛이 진한 고기 요리와 치즈가 발달한 한편, 남부인 후자에서는 바다가 가까워 신선하고 산뜻한 해산물과 올리브오일을 곁들인 채소 요리를 쉽게 맛볼 수 있다.
다른 서양 요리에 비해 이탈리아 요리는 우리에게 친숙한 편이지만, 심지어 이탈리아 요리 전문가인 저자도 현지에서 매번 마주하는 새로운 면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요리는 어지간하게 소금 간을 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성의 없이 만든 요리’라고 평가받고, 피가 뚝뚝 떨어져야 제대로 된 고기 요리로 취급받는다는 점이 그랬다. 그런가 하면 맛있기로 손꼽히는 이탈리아 커피는 호텔에서든 바에서든 단 1유로면 마실 수 있고 와인과 치즈, 오렌지와 피스타치오 등 다른 나라가 종주국이라고 생각해온 많은 식재료의 본고장이라는 점에서 미식가들의 천국이기도 했다.
이탈리아 요리엔 어느 한구석에도 이탈리아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와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다. 저자는 오랜 기간 쌓아온 관련 지식에 현지에서의 경험을 더해 이탈리아 음식에 숨겨진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술술 풀어놓는다. 이 모든 것이 집약된, 각 꼭지 사이사이에 수록된 ‘9가지 이탈리아의 맛’이 이탈리아 요리를 한눈에 살펴보는 데 전혀 손색이 없는 이유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요리와 인생에 대한 태도를 배웠다
저자는 이탈리아 요리의 고유한 지역성을 지키는 데 가장 든든한 뒷받침이 된, 전통 식문화에 대한 애정과 세심한 노력에 감탄한다. 그들에 비해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부끄러워하며 부러움과 동시에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셰프들이 지역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구심점 역할을 하는 명망가들일 뿐 아니라, 이탈리아 음식의 전통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사람들로서 오래전부터 지역 사회의 존경을 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