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훈남5.0가족들에게 편지를 쓸 때의 심정, 미지의 타지에서 숨어 있을 때의 심정, 함께 있어온 동지를 의심해야 할 때의 심정, 끝이 보이지 않은 길을 걸을 때의 심정... 결국 그 심정들을 헤아려주는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이 영화는 카메라는 가만히 서있고 인물들의 움직임에 의존하는 연극적인 장치를 심어놓고 있다. 덕분에 이것이 스크린 너머의 허구 이야기가 아닌,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작용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극강의 사실감을 부여하고 있다. 화려한 카메라무빙이나 짧은 쇼트로 구성된 편집이 아니라, 가감이 없는 연출로 마치 관객들이 그 자리에 서있는 것 같은 생생한 생동감으로 밀어붙인다. 관객은 숨이 막히고, 이제 선택해야 한다.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할지. “살아 돌아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팔다리가 떨어진 처참한 시신의 형상이 눈앞을 떠돌았습니다. 나의 믿음으로 인해 많은 동지들을 잃은 순간에 깨달았습니다. 내 목숨은 죽은 동지의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들 대신 살고 있다는 것을. 내가 해야 할 일을 알았습니다.” 우민호 감독의 실패작으로 평가받는 <마약왕>은 한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데 있어서 도움닫이가 된 작품이다. 이 영화의 중심인물인 ’안중근‘의 섬세한 캐릭터를 구축시켜내는 데 성공했고 <마약왕> 때와 마찬가지로 ‘주인공’에게 결코 이입되지 않는 흐름이 놀라웠다. 따지고 보면 그렇다. 그가 울음을 터뜨릴 때, 겁에 질릴 때, 뚜벅뚜벅 얼어붙은 강을 걸어갈 때, 카메라는 그를 확대하지 않는다. 먼발치에서 촬영할 뿐이다. 관객들의 시선처럼 말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을 빌미로 이입을 강요하고 있지 않다. “혀는 짧아도 침은 길게 뱉으라고. 죽기 전에 이름 석 자는 남겨야지.” “내 소싯적에 양반들 멸시가 심해서 이 나라 망하게 해달라고 공염불을 외었소. 그런데 누가 알았겠어, 진짜 망할지. 젠장, 내가 그놈의 공염불만 안 했어도.” 작중 정출(정우성)이 등장하는데, 그는 누구보다 독립운동 정신이 투철하였지만 소중한 사람을 잃고 후회에 빠져사는 현실적인 인물이었다. 영화의 높은 템포를 감안했을 때 만주에서의 여정이 비교적 잔잔해서 지루할 수 있었지만 이 인물을 만나고 나서부터 분위기가 제대로 환기되는 걸 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이라는 거창해 보이는 행위를 하는 그들이 ‘서서히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시점’이라 보여진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하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상처를 받게 되는 정출처럼, 무언가를 열심히 하다가 포기하고 방황하고 있는 현실세대들을 비추고 있는 , 그런 입체적인 인물이었다. “그래, 얼마나 더 죽어야 독립이 되겠는가? 좀더 있으면 내 한쪽 눈까지 잃어 이 빌어먹을 세상 볼 일도 없겠지.” “먼저 간 동지들의 통곡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까.” 이 영화는 ‘영화적으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담아내고 있는 영화가 아니다. 독립운동가를 찬양하고 있는 영화도 아니다. 영화에서 독립운동가들은 철저히 실수를 저지르고 죽음을 맞이하며 두려움에 떨어 동료를 밀고하기도 하고 그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다시 나아가기도 한다. 이것은 순전히 ‘독립운동은 허울일 뿐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난세에 처했을 때 우리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만 하는가. 실수를 저질렀을 때 우린 그저 도망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한 번 용기를 내볼 것인가. “그렇다고 멈출 순 없습니다. 끝까지 싸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많은 동지들이 죽었습니다. 또 동지를 잃을까 봐 두렵습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그만두게. 아무도 자네를 욕할 사람 없어.” “그럼 먼저 간 동지들은 어쩝니까?” 역시 내가 가장 이입할 수 있었던 인물은 박정민의 우덕순(원박)이었다. 덕순은 초반부만 해도 일본군을 몰살시키려고 하는 인물이지만 안중근에게 의존하면서 서서히 그 폭력성을 잠재워간다. 또 변절자를 처단해야 하는 시점에서도 그는 눈물을 흘리며 상대와 했던 약조를 끝까지 지켜낸다. 우리는 가끔 일본군의 머리통을 날려버리는 허구적 영화를 보고 대리만족을 하며 착각하곤 한다. 다 죽이면 끝나는 것이라고. 하지만 안중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덕순이 그에게 정신적으로 의존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자네는 4천만 일본인을 모두 죽일 계획인가. 다 죽이려 들면 우리도 죽는다는 것을 진정 모르는 것인가.” 보통 이런 장르에서 밀정(배신)의 캐릭터는 끊임없이 나오는데, 이 작품이 좀 다른 것은 배신자인 그를 보며 일종의 모멸감이 들었다보다는, ’누구였어도 저렇게 했을 것‘이라는 공감이 들었다. 몸이 지치면 쉽게 겁에 질리고 겁에 질리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렇게 되는 것이다. 보통 영화였으면 밀정을 척결하며 끝났겠지만 그는 본인의 실수를 스스로 부여잡는다. 더 나아가 이러한 디테일을 살리는 것이 마치 후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좋았다. [이 영화의 명장면] 1. 매복 “매복이네.” “매복이다.” “매복입니다.” 상대의 매복을 단번에 눈치챈 의군들의 예리함이 인상적. 이내 펼쳐지는 총격전의 박진감은 그렇게 크진 않았으나 이창섭이 까탈스럽게 대하던 안중근을 평소 어떻게 생각하는지 드러나는 대목. 안중근은 동료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적장을 살려서 보냈다. 죄가 없는 조선인을 수도 없이 죽인 일본군 앞에서 소신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걸 이창섭은 이미 알고 있었던 듯 하다. 겉으로는 안중근의 죄를 강조하면서도 속으로는 동경하고 있었던 듯 하다. “안중근이 네놈 입에서 떠나질 않는구나. 하긴, 저보다도 못난 놈한테 목숨을 구걸한 꼴이니, 그거 아나? 안중근은 네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고결한 인간이라는 거... 네놈도 알고 있었구나.” 2. 밀정 색출 <밀정>과 일맥상통하면서도 느낌은 아예 다른 장면. 특히 열차 칸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밀정이 누군지 비춰줄 때의 서스펜스는 압권. 또, 장면이 전환되고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설명이 흑백으로 나오는데 굉장히 드라마틱했다. 특히 스테이크 덩어리를 맛있게 씹으며 울음을 터뜨리는, 동료를 밀고해서 그 죄책감에 울음을 터뜨린 게 아니라, 초라하게 넘겨받은 이 고깃덩어리 하나가 이렇게나 맛있다는 게. 이 열악한 상황에서 이토록 본능적이라는 게 개탄스러워서 울었을 것. “먹어라.” 이 영화의 겨울은 미친 듯이 차갑다. 따뜻하게 연말을 보내는 가족들이 있는가 하면 혹독한 겨울 앞에 평생을 바친 사람들이 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직접 보지 못 한 이 나라의 광복이 그에겐 영원한 행복이 아닐까 하는. “지금은 두려움에 떨겠지만 반드시 극복할 거라고 믿소.” 안중근 의사는 아무도 없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며 몇 번을 포기하고 싶었고 몇 번을 주저앉아 잠자고 싶었을까 관객들은 영화 내내 그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 한다 우리들은 그의 삶을 대신 살고 있고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해줄 뿐이다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세차게 불어온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린 함께 불을 켜고 어둠 속으로 걸어갈 것이다. 우리 앞에 어떤 역경이 닥치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근년에 못 이루면 내년을 도모하고 내후년, 또 그 다음... 기어이 앞에 나가고 급히 나가고 더디어 나가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 불을 들고 어둠 속으로 걸어갈 것이다.”Like499Comment9
재원3.0전장에서 적장에게 아량을 베푸는 건 아무리 안중근이라도 용납이 안됐다.. 여튼 웃음끼 하나 없이 진중한 와중에 들려온 외침 "까레아 우라!!" 이 한 마디에 극장을 나서며 덩달아 비장해진다.Like463Comment4
sseBa5.0이런 미장셴을 가진 시대극이라니. 느릿한 속도와 함축된 대사들 사이의 공백은 몰입감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배우 한사람 한사람의 연기 또한 충만했다 나는 누구의 희생을 딛고 살아있는 것일까,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Like252Comment0
이진수/(Binary)
4.0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단 말이지
신상훈남
5.0
가족들에게 편지를 쓸 때의 심정, 미지의 타지에서 숨어 있을 때의 심정, 함께 있어온 동지를 의심해야 할 때의 심정, 끝이 보이지 않은 길을 걸을 때의 심정... 결국 그 심정들을 헤아려주는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이 영화는 카메라는 가만히 서있고 인물들의 움직임에 의존하는 연극적인 장치를 심어놓고 있다. 덕분에 이것이 스크린 너머의 허구 이야기가 아닌,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작용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극강의 사실감을 부여하고 있다. 화려한 카메라무빙이나 짧은 쇼트로 구성된 편집이 아니라, 가감이 없는 연출로 마치 관객들이 그 자리에 서있는 것 같은 생생한 생동감으로 밀어붙인다. 관객은 숨이 막히고, 이제 선택해야 한다.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할지. “살아 돌아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팔다리가 떨어진 처참한 시신의 형상이 눈앞을 떠돌았습니다. 나의 믿음으로 인해 많은 동지들을 잃은 순간에 깨달았습니다. 내 목숨은 죽은 동지의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들 대신 살고 있다는 것을. 내가 해야 할 일을 알았습니다.” 우민호 감독의 실패작으로 평가받는 <마약왕>은 한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데 있어서 도움닫이가 된 작품이다. 이 영화의 중심인물인 ’안중근‘의 섬세한 캐릭터를 구축시켜내는 데 성공했고 <마약왕> 때와 마찬가지로 ‘주인공’에게 결코 이입되지 않는 흐름이 놀라웠다. 따지고 보면 그렇다. 그가 울음을 터뜨릴 때, 겁에 질릴 때, 뚜벅뚜벅 얼어붙은 강을 걸어갈 때, 카메라는 그를 확대하지 않는다. 먼발치에서 촬영할 뿐이다. 관객들의 시선처럼 말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을 빌미로 이입을 강요하고 있지 않다. “혀는 짧아도 침은 길게 뱉으라고. 죽기 전에 이름 석 자는 남겨야지.” “내 소싯적에 양반들 멸시가 심해서 이 나라 망하게 해달라고 공염불을 외었소. 그런데 누가 알았겠어, 진짜 망할지. 젠장, 내가 그놈의 공염불만 안 했어도.” 작중 정출(정우성)이 등장하는데, 그는 누구보다 독립운동 정신이 투철하였지만 소중한 사람을 잃고 후회에 빠져사는 현실적인 인물이었다. 영화의 높은 템포를 감안했을 때 만주에서의 여정이 비교적 잔잔해서 지루할 수 있었지만 이 인물을 만나고 나서부터 분위기가 제대로 환기되는 걸 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이라는 거창해 보이는 행위를 하는 그들이 ‘서서히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시점’이라 보여진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하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상처를 받게 되는 정출처럼, 무언가를 열심히 하다가 포기하고 방황하고 있는 현실세대들을 비추고 있는 , 그런 입체적인 인물이었다. “그래, 얼마나 더 죽어야 독립이 되겠는가? 좀더 있으면 내 한쪽 눈까지 잃어 이 빌어먹을 세상 볼 일도 없겠지.” “먼저 간 동지들의 통곡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까.” 이 영화는 ‘영화적으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담아내고 있는 영화가 아니다. 독립운동가를 찬양하고 있는 영화도 아니다. 영화에서 독립운동가들은 철저히 실수를 저지르고 죽음을 맞이하며 두려움에 떨어 동료를 밀고하기도 하고 그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다시 나아가기도 한다. 이것은 순전히 ‘독립운동은 허울일 뿐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난세에 처했을 때 우리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만 하는가. 실수를 저질렀을 때 우린 그저 도망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한 번 용기를 내볼 것인가. “그렇다고 멈출 순 없습니다. 끝까지 싸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많은 동지들이 죽었습니다. 또 동지를 잃을까 봐 두렵습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그만두게. 아무도 자네를 욕할 사람 없어.” “그럼 먼저 간 동지들은 어쩝니까?” 역시 내가 가장 이입할 수 있었던 인물은 박정민의 우덕순(원박)이었다. 덕순은 초반부만 해도 일본군을 몰살시키려고 하는 인물이지만 안중근에게 의존하면서 서서히 그 폭력성을 잠재워간다. 또 변절자를 처단해야 하는 시점에서도 그는 눈물을 흘리며 상대와 했던 약조를 끝까지 지켜낸다. 우리는 가끔 일본군의 머리통을 날려버리는 허구적 영화를 보고 대리만족을 하며 착각하곤 한다. 다 죽이면 끝나는 것이라고. 하지만 안중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덕순이 그에게 정신적으로 의존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자네는 4천만 일본인을 모두 죽일 계획인가. 다 죽이려 들면 우리도 죽는다는 것을 진정 모르는 것인가.” 보통 이런 장르에서 밀정(배신)의 캐릭터는 끊임없이 나오는데, 이 작품이 좀 다른 것은 배신자인 그를 보며 일종의 모멸감이 들었다보다는, ’누구였어도 저렇게 했을 것‘이라는 공감이 들었다. 몸이 지치면 쉽게 겁에 질리고 겁에 질리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렇게 되는 것이다. 보통 영화였으면 밀정을 척결하며 끝났겠지만 그는 본인의 실수를 스스로 부여잡는다. 더 나아가 이러한 디테일을 살리는 것이 마치 후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좋았다. [이 영화의 명장면] 1. 매복 “매복이네.” “매복이다.” “매복입니다.” 상대의 매복을 단번에 눈치챈 의군들의 예리함이 인상적. 이내 펼쳐지는 총격전의 박진감은 그렇게 크진 않았으나 이창섭이 까탈스럽게 대하던 안중근을 평소 어떻게 생각하는지 드러나는 대목. 안중근은 동료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적장을 살려서 보냈다. 죄가 없는 조선인을 수도 없이 죽인 일본군 앞에서 소신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걸 이창섭은 이미 알고 있었던 듯 하다. 겉으로는 안중근의 죄를 강조하면서도 속으로는 동경하고 있었던 듯 하다. “안중근이 네놈 입에서 떠나질 않는구나. 하긴, 저보다도 못난 놈한테 목숨을 구걸한 꼴이니, 그거 아나? 안중근은 네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고결한 인간이라는 거... 네놈도 알고 있었구나.” 2. 밀정 색출 <밀정>과 일맥상통하면서도 느낌은 아예 다른 장면. 특히 열차 칸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밀정이 누군지 비춰줄 때의 서스펜스는 압권. 또, 장면이 전환되고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설명이 흑백으로 나오는데 굉장히 드라마틱했다. 특히 스테이크 덩어리를 맛있게 씹으며 울음을 터뜨리는, 동료를 밀고해서 그 죄책감에 울음을 터뜨린 게 아니라, 초라하게 넘겨받은 이 고깃덩어리 하나가 이렇게나 맛있다는 게. 이 열악한 상황에서 이토록 본능적이라는 게 개탄스러워서 울었을 것. “먹어라.” 이 영화의 겨울은 미친 듯이 차갑다. 따뜻하게 연말을 보내는 가족들이 있는가 하면 혹독한 겨울 앞에 평생을 바친 사람들이 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직접 보지 못 한 이 나라의 광복이 그에겐 영원한 행복이 아닐까 하는. “지금은 두려움에 떨겠지만 반드시 극복할 거라고 믿소.” 안중근 의사는 아무도 없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며 몇 번을 포기하고 싶었고 몇 번을 주저앉아 잠자고 싶었을까 관객들은 영화 내내 그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 한다 우리들은 그의 삶을 대신 살고 있고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해줄 뿐이다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세차게 불어온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린 함께 불을 켜고 어둠 속으로 걸어갈 것이다. 우리 앞에 어떤 역경이 닥치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근년에 못 이루면 내년을 도모하고 내후년, 또 그 다음... 기어이 앞에 나가고 급히 나가고 더디어 나가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 불을 들고 어둠 속으로 걸어갈 것이다.”
재원
3.0
전장에서 적장에게 아량을 베푸는 건 아무리 안중근이라도 용납이 안됐다.. 여튼 웃음끼 하나 없이 진중한 와중에 들려온 외침 "까레아 우라!!" 이 한 마디에 극장을 나서며 덩달아 비장해진다.
이동진 평론가
3.0
격정으로 웅변하지 않고 옷깃을 여민 채 쉰 목소리로 굳게 다짐한다.
콩까기의 종이씹기
2.5
This may contain spoiler!!
sseBa
5.0
이런 미장셴을 가진 시대극이라니. 느릿한 속도와 함축된 대사들 사이의 공백은 몰입감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배우 한사람 한사람의 연기 또한 충만했다 나는 누구의 희생을 딛고 살아있는 것일까,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
해왕성
3.0
이런 영화 보면서 졸리면 매국노 된 기분이니까 제발 제발
무비신
3.5
가감없이 역사적 인물을 다루는 미학과 진중함이라는 양날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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