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희 영화평론자3.5사형을 앞둔 사형수가 스스의 목을 송곳으로 찔러 사형을 유예하는 이유는 죽기 위해서인가 죽지 않기 위해서인가. 남편의 외도로 사형수를 찾아가서 일년간의 연애와 사랑을 연출하는 그 녀는 가족의 해체를 위한 것인가 재구성을 위한 것인가. 숨을 쉴 수 없는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이들의 서로의 숨이 되어 주는 방법. 그리고 다시 숨을 쉬게 되면 서로는 소모품이자 도구 였던 것을 확인하게된다.Like16Comment0
ygh_光顯4.0사랑과 환멸, 삶과 죽음, 그 사이를 오고 가는 숨(들숨/날숨) 이들은 결코 따로 놀지 않고 끊임없이 서로를 주고받는다. 그럴 때야 비로소 진실된 사랑이 만들어지는 것인가.. 그걸 몰랐던 자가 깨닫는 예견된 실연은 사랑의 쌍방향으로서 순순히 그 양가적 구원을 받아들이게 된다.Like12Comment0
케이크4.0김기덕식 "사랑에 빠진 것처럼" . 장첸의 강렬한 눈빛을 페르소나 삼아, 차가운 밑바닥의 고통을 자기기만적인 연극으로 소비해서 연명하는 중산층(여성)의 값싼 연민을 지긋이 바라본다. 김기덕스러운 분노와 혐오를 김기덕스럽지 않은 냉소와 유머로 풀어가는 독특한 작품. 계절과 단절된 공간 속에서 박제된 것처럼 살아가는 중산층 여성은 거짓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재현하여 자신의 실존성을 연출하고, 마치 사형수와 로맨틱한 '사랑에 빠진 것처럼' 스스로를 기만적으로 연기하지만 그녀가 연출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가짜이듯이 그녀의 사랑 또한 부르주아 남성에게 어필하기 위한 가짜이다. 그래서 그녀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봄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다시 겨울로 끝난다. 겨울과도 같은 '빈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녀의 연기를 위하여 대상화된 존재로써 소비되고 관음되는 사형수 장첸은 목에 구멍을 뚫어서라도 숨을 쉬고 '봄'으로 돌아가고 싶다. 사형수로써 타인을 위해 구경거리가 되는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선택한 결과로써의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존엄을 지키고 싶은 것이다. '새로운 죽음과 같은 삶'과 '새로운 삶과 같은 죽음'을 교차하여 비교하면서 어떤게 진정한 삶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실존적인 화두를 담은 영화로,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화하며 다큐멘터리의 동물들처럼 묘사하기 급급한 감독들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의 영상 예술이다. 삶의 연극성이라는 유사한 화두를 비슷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극찬하면서 이 작품은 깎아내리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가 없다. p.s. 술자리에서 징역형을 사는 남성 범죄자에게 자신의 비키니 사진을 정기적으로 보내왔던 일이 들통나 입방아에 오른 어느 40대 여성 변호사의 이야기를 건네 들었다. 바로 이 영화가 떠올랐다.Like10Comment0
선우
5.0
와 이런 시나리오를 어떻게 쓰냐 곳곳에 묻어있는 특유의 코믹함은 역시 압권
이동진 평론가
3.0
환부가 보이지 않는 통증.
조정희 영화평론자
3.5
사형을 앞둔 사형수가 스스의 목을 송곳으로 찔러 사형을 유예하는 이유는 죽기 위해서인가 죽지 않기 위해서인가. 남편의 외도로 사형수를 찾아가서 일년간의 연애와 사랑을 연출하는 그 녀는 가족의 해체를 위한 것인가 재구성을 위한 것인가. 숨을 쉴 수 없는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이들의 서로의 숨이 되어 주는 방법. 그리고 다시 숨을 쉬게 되면 서로는 소모품이자 도구 였던 것을 확인하게된다.
ygh_光顯
4.0
사랑과 환멸, 삶과 죽음, 그 사이를 오고 가는 숨(들숨/날숨) 이들은 결코 따로 놀지 않고 끊임없이 서로를 주고받는다. 그럴 때야 비로소 진실된 사랑이 만들어지는 것인가.. 그걸 몰랐던 자가 깨닫는 예견된 실연은 사랑의 쌍방향으로서 순순히 그 양가적 구원을 받아들이게 된다.
Hoon
3.5
터를 잃은 당신들의 숨은 비로소 바람이 된다.
케이크
4.0
김기덕식 "사랑에 빠진 것처럼" . 장첸의 강렬한 눈빛을 페르소나 삼아, 차가운 밑바닥의 고통을 자기기만적인 연극으로 소비해서 연명하는 중산층(여성)의 값싼 연민을 지긋이 바라본다. 김기덕스러운 분노와 혐오를 김기덕스럽지 않은 냉소와 유머로 풀어가는 독특한 작품. 계절과 단절된 공간 속에서 박제된 것처럼 살아가는 중산층 여성은 거짓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재현하여 자신의 실존성을 연출하고, 마치 사형수와 로맨틱한 '사랑에 빠진 것처럼' 스스로를 기만적으로 연기하지만 그녀가 연출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가짜이듯이 그녀의 사랑 또한 부르주아 남성에게 어필하기 위한 가짜이다. 그래서 그녀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봄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다시 겨울로 끝난다. 겨울과도 같은 '빈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녀의 연기를 위하여 대상화된 존재로써 소비되고 관음되는 사형수 장첸은 목에 구멍을 뚫어서라도 숨을 쉬고 '봄'으로 돌아가고 싶다. 사형수로써 타인을 위해 구경거리가 되는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선택한 결과로써의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존엄을 지키고 싶은 것이다. '새로운 죽음과 같은 삶'과 '새로운 삶과 같은 죽음'을 교차하여 비교하면서 어떤게 진정한 삶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실존적인 화두를 담은 영화로,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화하며 다큐멘터리의 동물들처럼 묘사하기 급급한 감독들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의 영상 예술이다. 삶의 연극성이라는 유사한 화두를 비슷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극찬하면서 이 작품은 깎아내리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가 없다. p.s. 술자리에서 징역형을 사는 남성 범죄자에게 자신의 비키니 사진을 정기적으로 보내왔던 일이 들통나 입방아에 오른 어느 40대 여성 변호사의 이야기를 건네 들었다. 바로 이 영화가 떠올랐다.
차지훈
4.0
김기덕 감독이 숨쉬는 자체가 좋다.
김참
4.0
장첸의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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