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5.0비포 미드나잇까지 보고나서 다시 비포선라이즈로 돌아오니 첫장면에서 기차안에서 싸우는 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 삶은 비포선라이즈와 비포미드나잇의 끊임없는 순환인것같다...Like1285Comment14
Joy5.0줄리 델피는 10대 후반 캐스팅 제의를 받을 때부터 종종 캐스팅 카우치, 성적 접대 강요를 계속 권유 받았다고 한다. 그걸 거절할 때마다 그녀는 까다롭고 함께 일하기 힘든 여자라는 허위 소문을 등에 업어야 했다고. (이하 내용 더 있음) . 이 영화는 셀린느와 제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영화와 함께 한 18년의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와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영화이며 그들의 삶과 가치관이 녹아있기에 우리는 이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느낀다. 호흡까지. 걸음까지. 눈을 마주침까지. . 언제나 강하고 성숙한 ‘여성’. 사랑 받으면서도 자신을 펼치고 싶어 했던 비포선라이즈의 셀린느에게서, 자신을 속이고 기만한 세월과 로맨티시즘에 분노하면서도 아직 사랑 받고 싶던-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한 삶을 정직하게 살고 싶던 비포선셋의 셀린느에게서, 그리고 이 사회의 불균형에 대해 얘기할수록 피해망상이다 쉽게 말하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화를 내면서도 그를 용서하는- 또한 일과 꿈 사랑 가족 친구 어디에서도 포기하고 싶지 않던 셀린느에게서 당신이 줄리 델피의 삶과 생각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녀가 간절하게 그리고 강인하게 영화계에서 버티며- 또한 그 인내 자체가 승리였던 매일을 살아남아- 일하고 있지 않았다면 없었을 이 영화에서 그저 로맨스만을 즐긴다면 당신은 이 영화를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 이 영화에 대한 나의 모든 감상과 사랑을 줄리 델피에게 바친다. 그녀가 더욱 화를 내기를, 그녀가 더욱 싸우기를,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그녀가 얼마나 삶을 사랑하고 애착을 가지며 변화하는 세상에 대해 믿음을 가지는 것에 대한 증명이 되기를 바란다. . 내가 이렇게나 좋아했던 한 사람이 그런 고통의 시간을 가졌음에 숙연해진다. 나의 남성권력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미안하다. 이제 나는 이 영화를 함부로 소비하며 내 기대를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 ‘셀린느처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얼마나 수없이 이상형의 레퍼런스가 되었는가. 하지만 난 이제 그녀를 ‘이상형’이라 함부로 말하지 않겠다. 심지어 94년의 셀린느 역시 인내해왔고, 분노해왔고, 참아가며 들어주고, 실망하면서도 꿈꾸는 것을 포기해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영화 속 한장면’만으로 자리 잡기에는 그 위와 안에 스며든 너무 많은 역사와 시간과 삶을 겪었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였기에. 그녀는 대상이 될 수 없다. 나는 다만 그녀를 존경하고 그녀에게 감사하다.Like770Comment15
정환5.0“영원한 것은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런 사랑에 대해 이미 끝을 체념하는 태도보다는, 영원한 것은 없다는 이 문장마저도 영원하지 않을 테니, 우리가 어쩌면 영원한 사랑을 할 수도 있지 않겠냐며 보다 낙관적인 태도로 임할 수 있기를. 젊은 날의 사랑을 추억하고, 함께 늙어가는 미래를 그려가며, 저무는 날의 기억과 시간 속에서.” 영원한 사랑이 없다는 것을 어느덧 알게 될 때가 온다면, 평생 낭만적인 상대를 찾아다닌 내가 이제서야 현실을 직시했다는 표현을 써야만 할까. 시간이 우리를 현자로 만드는 이유가 어린 날의 헛된 꿈일 뿐인 낭만을 잊게 만들고, 현실을 자각하게 만들어 줌에 있어서일까. 그럼에도, 우리가 이제는 현실적으로 바뀌어버린 어른이 되었을 때, 모두 다 부질없고 나중에는 사라질 거라며 모든 젊은이들의 바보 같은 낭만을 지적하겠지만, 가슴 한편으로는 그 낭만을 가장 뜨겁게 느꼈던 젊은 날의 순간들을 문득 사모하게 되겠지. 다들 철 지난 사랑을 안주 삼아 웃곤 하지만, 스스로는 낭만으로 가득 차있던 날들과 자꾸만 비교한다. 사실은 벌써 이렇게 늙어버린 내가 스스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아서인지, 어쩌면 스스로에 대한 동정을 애써 과거에 대한 비난으로 감싸려는 것인지. 노을과 함께 저버리는 낭만을 수도 없이 보냈었던 우리지만, 사라지는 순간에도 희미한 낭만을 보며 여전히 저기 있다며 마음을 토닥이고 싶다. 하지만, 우리가 상대방에 대한 갈구나 화답이 아니라 삶에 대해서 사랑을 해야 한다면, 다행히도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기에 깨달은 것은, 현실적이라는 단어는 내 삶 속에서 낭만의 부재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의한 인식의 변화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그저 영원한 사랑이 없다는 것으로만 깨달았다면 낭만이 죽은 사람의 현실이다. 반면, 늙어서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 진짜 사랑이란 싸우고 힘들며 오랜 시간을 함께 견뎌내는 순간들이다. 그저 현실과는 떨어졌던 젊은 날의 낭만의 뜻을 잃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과 시간의 영역으로 낭만의 뜻을 확장시킨 것이다. 낭만은 동떨어진 날의 꿈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변함없는 너를, 설사 변한 모습까지도 늙어가는 우리 모두가 해당이 된다면, 앞으로도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영원한 걸 없다는 쪽이 낭만을 제외한 현실을 대표하고, 변함없는 사랑이 낭만을 상징한다면, 완벽하지 않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본성적인 불만족이 우리를 현실을 인지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사랑하게 만드는 듯하다. 때때로, 삶과 사랑에 대해 투정 어린 불만을 삼지만, 그만큼 우리는 그것들을 찬양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에겐 영원한 사랑과 행복, 기쁨만이 가득한 에덴동산은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사랑의 최전선을 그곳만으로 여긴다. 매일을 싸우고 소리 지르는 것이 물론 우리가 사랑에 기대하는 것들은 아닐 테지만, 이것들을 사랑의 일부분이 아니라고 간과할 수도 없다. 나는 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이미 늙어버린 우리에게는 사랑에 대한 영역을 넓힌지 오래다. 그냥 헤어지자고 말을 내뱉고 끝나버리는 것이 바보 같은 낭만으로 가득 차있던 젊은 날의 사랑이었다면, 이제는 그 과정마저 온전한 사랑임을 슬프게도 체념해버린 지금의 사랑이다. 그래도 그렇게 싫은 것들, 낭만의 부재로부터 비롯된 현실에 대한 불만족을 수용하며 살아가는 것이 늙어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성장이라고 믿는다. 늙었다고 낭만을 잃었다지만, 이전에도 말했듯, 잃은 것이 아닌 변한 것이라고 믿는다. 낭만은 착각 이랬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런 사랑에 대해 함부로 끝을 단정 짓는 괘씸한 태도보다는, 영원한 것은 없다는 이 문장마저도 영원하지 않을 테니, 어쩌면 우리가 영원한 사랑을 할 수 있지 않겠냐며 보다 낙관적인 태도로 사랑하는 너와의 이 삶을 그렇게 임했으면 좋겠다. 낭만을 향한 끝없는 불만족과 현실에 대한 체념의 사랑을 찬양하며 나와 함께 저물어가는 시절을 마주 보면서 늙어가는 것만큼 로맨틱한(낭만적인) 사랑이 없다. 젊은 날의 사랑을 추억하고, 함께 늙어가는 미래를 그려가며, 저무는 날의 기억과 시간 속에서.Like221Comment4
김세영
5.0
비포 미드나잇까지 보고나서 다시 비포선라이즈로 돌아오니 첫장면에서 기차안에서 싸우는 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 삶은 비포선라이즈와 비포미드나잇의 끊임없는 순환인것같다...
Joy
5.0
줄리 델피는 10대 후반 캐스팅 제의를 받을 때부터 종종 캐스팅 카우치, 성적 접대 강요를 계속 권유 받았다고 한다. 그걸 거절할 때마다 그녀는 까다롭고 함께 일하기 힘든 여자라는 허위 소문을 등에 업어야 했다고. (이하 내용 더 있음) . 이 영화는 셀린느와 제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영화와 함께 한 18년의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와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영화이며 그들의 삶과 가치관이 녹아있기에 우리는 이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느낀다. 호흡까지. 걸음까지. 눈을 마주침까지. . 언제나 강하고 성숙한 ‘여성’. 사랑 받으면서도 자신을 펼치고 싶어 했던 비포선라이즈의 셀린느에게서, 자신을 속이고 기만한 세월과 로맨티시즘에 분노하면서도 아직 사랑 받고 싶던-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한 삶을 정직하게 살고 싶던 비포선셋의 셀린느에게서, 그리고 이 사회의 불균형에 대해 얘기할수록 피해망상이다 쉽게 말하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화를 내면서도 그를 용서하는- 또한 일과 꿈 사랑 가족 친구 어디에서도 포기하고 싶지 않던 셀린느에게서 당신이 줄리 델피의 삶과 생각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녀가 간절하게 그리고 강인하게 영화계에서 버티며- 또한 그 인내 자체가 승리였던 매일을 살아남아- 일하고 있지 않았다면 없었을 이 영화에서 그저 로맨스만을 즐긴다면 당신은 이 영화를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 이 영화에 대한 나의 모든 감상과 사랑을 줄리 델피에게 바친다. 그녀가 더욱 화를 내기를, 그녀가 더욱 싸우기를,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그녀가 얼마나 삶을 사랑하고 애착을 가지며 변화하는 세상에 대해 믿음을 가지는 것에 대한 증명이 되기를 바란다. . 내가 이렇게나 좋아했던 한 사람이 그런 고통의 시간을 가졌음에 숙연해진다. 나의 남성권력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미안하다. 이제 나는 이 영화를 함부로 소비하며 내 기대를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 ‘셀린느처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얼마나 수없이 이상형의 레퍼런스가 되었는가. 하지만 난 이제 그녀를 ‘이상형’이라 함부로 말하지 않겠다. 심지어 94년의 셀린느 역시 인내해왔고, 분노해왔고, 참아가며 들어주고, 실망하면서도 꿈꾸는 것을 포기해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영화 속 한장면’만으로 자리 잡기에는 그 위와 안에 스며든 너무 많은 역사와 시간과 삶을 겪었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였기에. 그녀는 대상이 될 수 없다. 나는 다만 그녀를 존경하고 그녀에게 감사하다.
Sloth K
5.0
선라이즈의 동화, 선셋의 낭만, 미드나잇의 시간.
이동진 평론가
4.5
사랑에 내려 앉은 시간의 더께.
머글탈출기
5.0
This may contain spoiler!!
정환
5.0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런 사랑에 대해 이미 끝을 체념하는 태도보다는, 영원한 것은 없다는 이 문장마저도 영원하지 않을 테니, 우리가 어쩌면 영원한 사랑을 할 수도 있지 않겠냐며 보다 낙관적인 태도로 임할 수 있기를. 젊은 날의 사랑을 추억하고, 함께 늙어가는 미래를 그려가며, 저무는 날의 기억과 시간 속에서.” 영원한 사랑이 없다는 것을 어느덧 알게 될 때가 온다면, 평생 낭만적인 상대를 찾아다닌 내가 이제서야 현실을 직시했다는 표현을 써야만 할까. 시간이 우리를 현자로 만드는 이유가 어린 날의 헛된 꿈일 뿐인 낭만을 잊게 만들고, 현실을 자각하게 만들어 줌에 있어서일까. 그럼에도, 우리가 이제는 현실적으로 바뀌어버린 어른이 되었을 때, 모두 다 부질없고 나중에는 사라질 거라며 모든 젊은이들의 바보 같은 낭만을 지적하겠지만, 가슴 한편으로는 그 낭만을 가장 뜨겁게 느꼈던 젊은 날의 순간들을 문득 사모하게 되겠지. 다들 철 지난 사랑을 안주 삼아 웃곤 하지만, 스스로는 낭만으로 가득 차있던 날들과 자꾸만 비교한다. 사실은 벌써 이렇게 늙어버린 내가 스스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아서인지, 어쩌면 스스로에 대한 동정을 애써 과거에 대한 비난으로 감싸려는 것인지. 노을과 함께 저버리는 낭만을 수도 없이 보냈었던 우리지만, 사라지는 순간에도 희미한 낭만을 보며 여전히 저기 있다며 마음을 토닥이고 싶다. 하지만, 우리가 상대방에 대한 갈구나 화답이 아니라 삶에 대해서 사랑을 해야 한다면, 다행히도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기에 깨달은 것은, 현실적이라는 단어는 내 삶 속에서 낭만의 부재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의한 인식의 변화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그저 영원한 사랑이 없다는 것으로만 깨달았다면 낭만이 죽은 사람의 현실이다. 반면, 늙어서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 진짜 사랑이란 싸우고 힘들며 오랜 시간을 함께 견뎌내는 순간들이다. 그저 현실과는 떨어졌던 젊은 날의 낭만의 뜻을 잃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과 시간의 영역으로 낭만의 뜻을 확장시킨 것이다. 낭만은 동떨어진 날의 꿈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변함없는 너를, 설사 변한 모습까지도 늙어가는 우리 모두가 해당이 된다면, 앞으로도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영원한 걸 없다는 쪽이 낭만을 제외한 현실을 대표하고, 변함없는 사랑이 낭만을 상징한다면, 완벽하지 않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본성적인 불만족이 우리를 현실을 인지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사랑하게 만드는 듯하다. 때때로, 삶과 사랑에 대해 투정 어린 불만을 삼지만, 그만큼 우리는 그것들을 찬양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에겐 영원한 사랑과 행복, 기쁨만이 가득한 에덴동산은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사랑의 최전선을 그곳만으로 여긴다. 매일을 싸우고 소리 지르는 것이 물론 우리가 사랑에 기대하는 것들은 아닐 테지만, 이것들을 사랑의 일부분이 아니라고 간과할 수도 없다. 나는 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이미 늙어버린 우리에게는 사랑에 대한 영역을 넓힌지 오래다. 그냥 헤어지자고 말을 내뱉고 끝나버리는 것이 바보 같은 낭만으로 가득 차있던 젊은 날의 사랑이었다면, 이제는 그 과정마저 온전한 사랑임을 슬프게도 체념해버린 지금의 사랑이다. 그래도 그렇게 싫은 것들, 낭만의 부재로부터 비롯된 현실에 대한 불만족을 수용하며 살아가는 것이 늙어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성장이라고 믿는다. 늙었다고 낭만을 잃었다지만, 이전에도 말했듯, 잃은 것이 아닌 변한 것이라고 믿는다. 낭만은 착각 이랬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런 사랑에 대해 함부로 끝을 단정 짓는 괘씸한 태도보다는, 영원한 것은 없다는 이 문장마저도 영원하지 않을 테니, 어쩌면 우리가 영원한 사랑을 할 수 있지 않겠냐며 보다 낙관적인 태도로 사랑하는 너와의 이 삶을 그렇게 임했으면 좋겠다. 낭만을 향한 끝없는 불만족과 현실에 대한 체념의 사랑을 찬양하며 나와 함께 저물어가는 시절을 마주 보면서 늙어가는 것만큼 로맨틱한(낭만적인) 사랑이 없다. 젊은 날의 사랑을 추억하고, 함께 늙어가는 미래를 그려가며, 저무는 날의 기억과 시간 속에서.
최플린
4.0
서로 눈도 잘 못 마주치던 그들의 사랑이 무르익기까지
탈지구 기원자
4.0
낭만에 덧입혀진 깊이, 그리고 그 바깥을 감싸는 성숙. 아름답지 않아 보이는 현실도 사실 아름답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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