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½
8½
1963 · Drama/Fantasy · Italy, France
2h 18m ·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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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do Anselmi, a film director, finds himself creatively barren at the peak of his career. Urged by his doctors to rest, Anselmi heads for a luxurious resort, but a sorry group gathers—his producer, staff, actors, wife, mistress, and relatives—each one begging him to get on with the show. In retreat from their dependency, he fantasizes about past women and dreams of his childh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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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치의맛
5.0
소재가 없다는 것을 소재로 영화사 최고걸작을 만드는 펠리니의 괴력.
STONE
5.0
보는 내내 넋을 놓게 만드는, 참 희한하면서 미친 경험
Cinephile
5.0
작가의 폐색에 빠진 영화는 정신분석을 모르는 무면허 관객에게 창작이라 불리는 심리 치료를 대범하게 맡긴다. 그의 삶에 머물었지만 잊혀졌던 이미지들에 대한 애정을 스스로 확인하는 환자를 보고 있자면, 어설픈 치료사 역시 자신의 삶을 위안받게 된다.
유해조
5.0
그는 진실을 말하고 싶지만 모든 철학적 명제는 진실임을 확언할 수 없다. 진실임을 확언할 수 있는 건 자신이 직접 경험한 세계일 뿐인데 자신의 삶은 거짓말 투성이이다.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들의 역할을 말할 수없고, 그들을 사랑할 줄 모르기에 그들과의 관계는 모래위의 건축과도 같다. 그렇기에 진실을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있는 진실은 상실되어 버린 상태이다. 보여주고 싶은 자신과 그 자체의 자신의 격리, 이 상태서 그는 그가 구축한 건축을 해체하고 주변인들과 군상을 이루며 유년의 회고와 탈피 , 그리고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구축한다.
조종인
5.0
니체의 미발표 글들을 모아 만든 책 <혼자 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에는 다음과 같은 서술이 있다. "예술은 삶을 가능케 하는 위대한 움직임이며, 평범한 삶에서 도피할 수 있게끔 사람들을 자극하는 위대한 유혹이다. 예술은 삶을 부정하려는 모든 의지를 짓누를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예술은 인식하는 자를 구제한다. 즉 비극적 인식에 사로잡힌 인간을 구제할 수 있다. 예술은 행동하는 자를 구원한다. 즉 비극적·전투적 인간인 영웅을 구원한다. 예술은 고뇌하는 자를 구원한다. 개인적인 고뇌를 정화시켜 한 개인의 극히 일상적인 고뇌마저 위대한 삶의 형식으로 바꿔버릴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본인의 부정적 감정과 고뇌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 좋은 해소 방법이라는 것이다. 니체 외에 다른 많은 사람들도 부정적인 감정의 해결 방법으로 '예술의 창조'를 꼽기도 하며, 실제로 많은 예술가들이 그 방법을 채택하기도 했다.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8과 1/2> 또한 그 예시에 들어갈 수 있겠으나, 앞서 말한 작품들과는 다른 성격을 띈다. <멜랑콜리아>와 <변신>과 같은 작품의 경우, 창작자의 부정적인 감정을 원류로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낸 경우에 속한다. 그런데 <8과 1/2>은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했다기 보다, 불안해하고 있는 감독 본인의 머릿속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은 전개 방식을 취한다. 작 중 영화 감독 '구이도'는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중이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다. 본인의 유년기부터 현 상황까지 모두 담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만, 영화 제작자들은 "영화가 너무 불친절하다.", "영화에 드는 비용이 너무 많다"며 구이도를 공격하기 바쁘다. 뿐만 아니라 구이도의 머릿 속도 혼란 그 자체이다. 세상을 떠난 본인의 부모님에 대한 생각, 점점 사이가 악화되어 이혼을 고려하고 있는 부인에 대한 생각, 그와는 별개로 계속 떠오르는 다른 여자에 대한 욕구 등등이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구이도의 주변인들은 구이도가 명확한 입장 혹은 의견을 밝혀주기를 바라지만 그럴 수록 구이도는 점점 혼란속으로 빠져들 뿐이다. <8과 1/2>은 이렇게 혼란스러운 구이도의 상황과 그의 머릿속을 그대로 드러낸다. 꿈과 현실이 혼재되어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제대로 구분하기 힘들다. 어느것도 명확하지 않고, 설명이 친절하지도 않으며, 보편적이지도 않은 영화의 플롯은 묘하게 보는 사람을 빠져들게 만든다. 구이도이자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이야기는 너무나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고뇌하는 창작자들을 대변해주고 있다. <8과 1/2>은 고뇌하는 창작자들에게 페데리고 펠리니가 제시하는 하나의 모범답안이자 이상향이다. 그는 굳이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지 않고, 본인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놓는 것만으로 걸작을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해보였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8과 1/2>이 들뢰즈의 그 말을 실현시킨 작품으로 보인다. (24. 06. 29 첫 감상) / (24. 10. 01 재감상)
Jay Oh
4.5
영화가 나의 종교요, 나의 믿음이니. 나의 생각 밖에서의 구원은 없다. 그런 나, 여기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Inspiration, liberation, salvation... film.
Pars Ignari
4.5
구질구질한 삶과, 거기에서 탄생한 영화는 과연 얼마나 별개의 것일까. 그 간극을 가장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예술가의 고뇌가 더없이 매혹적이다.
mekong1922
4.5
넌 뭘 하고 싶어. 모르겠어. 난 당연히 한 문장으로,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다. 나를 표현하는 내 기억은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내 기억을 표현하고 싶은 것뿐이다. 다가가기 힘든 그 기억들의 잔향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다. 그 추상이란 안갯속에서 하나의 기억만을 가져오는 것은 버거운 일이다. 계속해서 내 주위를 맴돌며 망향하는 듯한 기억들이 눈에 거슬린다. <8과 1/2> 후반부, 자신만의 세계에서 여자를 군림하는 고이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나는 이 장면이 영화 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함) 세상의 규칙을 따르고 잣대를 들이대며 하나로 귀결하고 정의하려는 세상에 환멸을 느끼는 그였다. 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나 보다. 몸에 스며든 의식은 그를 기어코 지배한다. 사회가 그에게 했던 것처럼 본인도 자신의 세계에서 어느새 하나의 규율을 만들려고 했다. 그도 어쩔 수 없는 사회인 중 한 명이었다. 그저 피조물이다. 오직 자신만의 세계인데도 특정 나이가 지나면 나의 아내가 될 수 없다는 규칙을 멋대로 정해버린 것이다. 그 규칙이 어질러질까 봐 채찍으로 나의 여인들과 소중한 기억들을 학대했다. 그리고 그 순간 특정 나이가 지난 그녀는 춤을 췄다. 여전히 아름다웠다. 고이도는 분명 좋아했다. 그는 학대하려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자신의 ‘사랑’을 부정하고, 정의하려 했던 그가 새삼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그는 생각한다. “내 기억과 내 감정을, 하나의 규칙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사탄과 만났던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오른다. 모든 사람들은 나에게 사탄을 만난 아이라고 욕했다. 난 침대 밑에서 벌벌 떨었다. 모두 손가락질을 하며 넌 오늘부터 부끄러워야 한다고 했다. 부끄러워했다. 커서 생각을 해보니 어렸을 적 기억을 떠올려보면 난 사실 그 괴물과 춤을 출 때 가장 행복했었던 것 같다. 부끄러운 과거이지만 그게 ’나‘였다. 부끄러웠지만 그게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기억이었다. 나는 이제 모든 걸 다 품기로 했다. 부끄러웠던 과거, 현재, 미래 전부 다 고이도 ‘나’이니까 말이다. 과거의. 어릴 적 나의 손, 현재 아내, 과거의 아내, 지금 사랑하는 아내, 혐오하던 사람, 사랑하는 사람 전부 잡고 난 나의 길을 향하기로 했다. 혐오, 사랑, 죽음, 과거를 전부 사랑하기로 했다. 보르헤스는 삶은 실수의 박물관이라 했다. 항상 실수나 부끄러운 선택을 했다면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박제하라고 했다. 나는 그 기억들을 내 곁에 항상 두어 손을 잡아보기로 했다. 그것도 전부 나라는 삶에서 이정표가 됐던 요체들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난 왜 바보같이 하나의 규칙과 한 명을 정하려 했을까. 선택하려 했을까. 고마워. 내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준 것 같아 어릴 적의 고이도 고마워. 육체밖에 사랑하지 않는 애인에게도, 헤어질 용기가 없어서 살고 있는 아내에게도.. 그들의 춤은 결국 안갯속으로 사라진다. 사회가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그곳으로….안갯속 질긴 잔향의 춤을 계속된다. 수치스러움의 농도는 짙어진다. 우린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한 문장과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다.. 사실 이 세상을, 또는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 무의미한 말이다. 말할수록, 고민할수록 무의미해진다. 그처럼 아무런 실체가 없는 세상이기에 그 속에서 겸허히 본인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것만큼 아름다운 건 없을 것이다. 어차피 정의할 수 없는 세상이라면 ‘나’를 살아보는 게 세계의 피조물인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저항이 아닐까? 남들이 사탄이라 비난할지라도 그것이 ‘나’의 소중한 기억이라면 나는 여전히 그 기억과 손을 잡을 생각이다. 나는 고이도가 마주한 안개(세상이 숨겨둔 미지의 과거, 기억들)와의 조우를 이뤄내고 싶다. 내 안개를 찾고 싶다. 가끔 내가 말할 때마다 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너를 보면 이 영화가 생각난다. 내 안개를 찾고 싶다. 내 대답은 이 영화와 그 말 뿐이다. “우리는 기억으로 구성된다. 우리는 동시에 아이, 사춘기, 성장, 성숙이다.“ -페데리코 펠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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