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T0.5나는 정말 이 영화를 사랑하고 싶었는데, 미화해서는 안될 주제를 건드려버렸다. 프릭쇼로 돈벌이를 하고 장애를 가진 이들을 물건마냥 전시했던 바넘의 모습은 마법같이 사라지고 가족을 사랑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백인 구세주의 환한 미소만이 걸려있다. 그에게 노예로 팔려와 이를 전부 뽑혀 신기하고 징그러운 것으로 전시되었다가 죽음마저도 엔터테인먼트로 포장되어 부검 ‘쇼’로 생을 마감했던 장애인 흑인 여성의 이야기는 감춰졌다. 주 류 관객에게서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각본가들이 의도적으로 선택한 장치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기만적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이게 나야!’ 를 외치며 인간애를 이끌어내려는 시도는 더없이 공허하고, 역겨울 정도로 불편할 뿐이다. 훌륭한 음악과 배우들, 제작 역량이 이 주제에 낭비된 것은 크나큰 비극. 21세기의 할리우드가 낳은 괴물이다.Like1886Comment17
민건우0.5클리셰 범벅인 건 둘째치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편견 덩어리인 영화 주제의식은 그냥 가식인 것 같음 가부장 백인 남자의 기만질 잘 보았습니다 사고가 20년 전에 멈춘 사람이 각본 썻나보다 20년 전에 나왔어도 촌스러웠을 영화Like667Comment13
JE2.0바넘의 쇼를 "훌륭한 인류애"로 만들고 싶었으면, 그 본질에 충실해야 하지 않았을까. 비윤리적인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쇼건만, 영화는 이미 입장을 스스로 전제한다. 바넘의 쇼를 말하기보다 바넘을 동정하려 한다. 말하자면 영화는 ㅡ바넘의 쇼처럼ㅡ 눈속임이다. (※ 스포주의) <위대한 쇼맨>은 바넘의 상업을 낭만적으로 포장한다. 그의 방황을 동정하고, 끝내 면죄부를 허락한다. 쇼는 그의 성장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쇼와 영화의 주요한 화두인 "누구나 특별하다"는 선언은 "This Is Me", 단 한 곡으로 대충 얼버무리고 만다. 모든 캐릭터는 기실 바넘을 위한 존재일 뿐이다. 물론 바넘과 단원들의 진의는 알지 못한다. 또한 애초에 바넘을 담고자 하는 영화기에 이는 부당한 지적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스스로 볼거리가 되겠다는 영화는 오직 대중을 위한 예술임을 자처하지 않던가. "남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이라면서, 민감한 지점은 의도적으로 피해가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태도가 진정한 행복인지, 누굴 위한 행복인지 의문이다. 영화는 서사마저도 음악에 맡긴 채 단지 스펙타클이 되어 관객을 현혹한다.(사실 그조차 샷 구성이 게으른 면이 있다) 말해야 할 것엔 침묵하고선 은근슬쩍 시선을 돌린다. 결국 "누구나 특별하다"는 말은 위선적으로, 비평가와 상류 문화를 향한 어줍잖은 비판은 오만하게 들릴 뿐이다. 이런 게 대중 예술이라면, 차라리 "공연을 즐기지 못하는 공연 비평가"가 되고 싶다.Like640Comment0
HBJ4.5'라라랜드'가 21세기가 재해석한 50년대식 뮤지컬이었다면, 이 영화는 21세기식 뮤지컬 스펙터클의 진수다. 스케일을 강조하는 연출, 디즈니 애니를 방불케하는 무한긍정 판타지, 시각적 즐거움을 극대화하는 미술과 퍼포먼스에 넋을 잃었다Like631Comment7
5020.5-바넘과 채리티는 원래 친구여서 어릴 적부터 서로 반말은 했음에도 -심지어 채리티가 신분이 더 높음에도 결혼 후 갑자기 채리티만 바넘에게 존대를 하네요. 번역가의 사상을 잘 엿볼 수 있었습니다.Like595Comment16
hannah
5.0
가끔 스토리가 어떻든 상관없는 ‘영상미’와 ‘퍼포먼스’가 있다.
KAT
0.5
나는 정말 이 영화를 사랑하고 싶었는데, 미화해서는 안될 주제를 건드려버렸다. 프릭쇼로 돈벌이를 하고 장애를 가진 이들을 물건마냥 전시했던 바넘의 모습은 마법같이 사라지고 가족을 사랑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백인 구세주의 환한 미소만이 걸려있다. 그에게 노예로 팔려와 이를 전부 뽑혀 신기하고 징그러운 것으로 전시되었다가 죽음마저도 엔터테인먼트로 포장되어 부검 ‘쇼’로 생을 마감했던 장애인 흑인 여성의 이야기는 감춰졌다. 주 류 관객에게서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각본가들이 의도적으로 선택한 장치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기만적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이게 나야!’ 를 외치며 인간애를 이끌어내려는 시도는 더없이 공허하고, 역겨울 정도로 불편할 뿐이다. 훌륭한 음악과 배우들, 제작 역량이 이 주제에 낭비된 것은 크나큰 비극. 21세기의 할리우드가 낳은 괴물이다.
정혜인
1.5
This may contain spoiler!!
민건우
0.5
클리셰 범벅인 건 둘째치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편견 덩어리인 영화 주제의식은 그냥 가식인 것 같음 가부장 백인 남자의 기만질 잘 보았습니다 사고가 20년 전에 멈춘 사람이 각본 썻나보다 20년 전에 나왔어도 촌스러웠을 영화
JE
2.0
바넘의 쇼를 "훌륭한 인류애"로 만들고 싶었으면, 그 본질에 충실해야 하지 않았을까. 비윤리적인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쇼건만, 영화는 이미 입장을 스스로 전제한다. 바넘의 쇼를 말하기보다 바넘을 동정하려 한다. 말하자면 영화는 ㅡ바넘의 쇼처럼ㅡ 눈속임이다. (※ 스포주의) <위대한 쇼맨>은 바넘의 상업을 낭만적으로 포장한다. 그의 방황을 동정하고, 끝내 면죄부를 허락한다. 쇼는 그의 성장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쇼와 영화의 주요한 화두인 "누구나 특별하다"는 선언은 "This Is Me", 단 한 곡으로 대충 얼버무리고 만다. 모든 캐릭터는 기실 바넘을 위한 존재일 뿐이다. 물론 바넘과 단원들의 진의는 알지 못한다. 또한 애초에 바넘을 담고자 하는 영화기에 이는 부당한 지적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스스로 볼거리가 되겠다는 영화는 오직 대중을 위한 예술임을 자처하지 않던가. "남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이라면서, 민감한 지점은 의도적으로 피해가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태도가 진정한 행복인지, 누굴 위한 행복인지 의문이다. 영화는 서사마저도 음악에 맡긴 채 단지 스펙타클이 되어 관객을 현혹한다.(사실 그조차 샷 구성이 게으른 면이 있다) 말해야 할 것엔 침묵하고선 은근슬쩍 시선을 돌린다. 결국 "누구나 특별하다"는 말은 위선적으로, 비평가와 상류 문화를 향한 어줍잖은 비판은 오만하게 들릴 뿐이다. 이런 게 대중 예술이라면, 차라리 "공연을 즐기지 못하는 공연 비평가"가 되고 싶다.
HBJ
4.5
'라라랜드'가 21세기가 재해석한 50년대식 뮤지컬이었다면, 이 영화는 21세기식 뮤지컬 스펙터클의 진수다. 스케일을 강조하는 연출, 디즈니 애니를 방불케하는 무한긍정 판타지, 시각적 즐거움을 극대화하는 미술과 퍼포먼스에 넋을 잃었다
502
0.5
-바넘과 채리티는 원래 친구여서 어릴 적부터 서로 반말은 했음에도 -심지어 채리티가 신분이 더 높음에도 결혼 후 갑자기 채리티만 바넘에게 존대를 하네요. 번역가의 사상을 잘 엿볼 수 있었습니다.
헤실
4.0
대출 땡겨서 욕망으로 가즈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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