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냐 전통이냐
근대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세계관 전쟁의 내막
과학 수용과 전통의 재해석 과정에서 촉발된
과학찬양론과 과학비판론의 대립으로부터
이른바 중국판 문화전쟁의 종결까지
‘과학과 인생관’ 논쟁의 핵심을 해부한다
20세기 초 중국에서는 서구의 과학문명을 수용해 과거에 얽매여 있던 전통적인 삶의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려는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의 시도가 있었다. 여기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신문화운동의 대표자들은 서구의 신문명을 몸소 체험하고, 유교ㆍ유학으로 대표되던 중국문명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당대 중국의 현실을 장악하고 있던 인생관(세계관)을 총체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중심에 각계의 지식인들이 진영을 나누어 참여한 ‘과학과 인생관’ 논쟁이 있었다.
이 책은 그 논쟁을 실마리로 근대 중국사상계의 핵심과제로 떠올랐던 과학수용과 전통의 재해석이라는 문제를 체계적으로 검토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과학수용 문제를 두고 당시 중국에서 벌어졌던 다양한 논쟁들을 사상사적으로 분석해낸 뒤, 이를 바탕으로 논의의 범위를 현대과학과 종교담론의 문제로까지 고양시킨다. 요컨대 지금도 양상을 바꾸며 반복되고 있는 이 논쟁은 서양에서 도입된 새로운 세계관으로서의 근대과학과 유교ㆍ유학을 비롯한 전통적인 세계관으로서의 종교(철학) 사이에 발생한 갈등, 한마디로 종이 위에서 전개된 ‘세계관 전쟁’이었다.
근대 동아시아에서
서구문명과 과학의 의미
저자는 먼저 중체서용론에서 시작되어 제도개혁론으로 이어지는 초기 단계의 소박한 과학론을 살펴본 뒤, 그런 낙관적이고 소박한 과학론이 과학만능주의적인 과학신앙으로 확대 발전해가는 과정에 대해 논의한다. ‘과학과 인생관’ 논쟁의 전개상황에 대해서는, 각기 장을 나누어 장군매(張君?, 장쥔마이)의 중심의 ‘인생관파’, 정문강(丁文江, 딩원장) 중심의 ‘과학파’, 그리고 진독수(陳獨秀, 천두슈) 중심의 ‘유물사관파’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를 통해 당대 지식인들의 과학이해, 서구문명에 대한 인식, 중국 전통문화에 대한 입장을 입체적으로 재설정한다.
‘과학과 인생관’ 논쟁의 핵심은 이른바 “과학이 인생관을 포함하는 세계관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혹은 “과학이 제공하는 설명이 인생의 의미나 세계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충분한가” 등등의 근원적 문제에 닿아 있었다. 달리 말해 전형적인 ‘근대과학[新]과 전통적 세계관[舊]의 갈등’이나 ‘과학과 종교 간 갈등’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저자가 이 책에 ‘세계관 전쟁’이란 제목을 붙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논쟁에서 과학과 서양 근대사상의 세례를 받은 지식인들은 전반적 서양화를 지지하면서 과학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파했다. 이들에게 과학은 중국문명의 미래를 보여주는 도표(道標)였다. 이들은 과학이 제공하는 가치관, 즉 ‘과학적 인생관’의 수립을 사상적 과제로 삼아 전통청산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유불도로 대표되는 전통사상과 가치관은 과학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폐기되어야 하며, 과학이 새로운 가치관을 제공하는 역할을 떠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크게 자유주의자 그룹과 유물론자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 정문강과 호적(胡適, 후스)은 전자를 대표하며, 구추백(瞿秋白, 취추바이)과 진독수는 후자를 대변했다. 이 두 그룹은 이념적으로는 대립했지만, 과학주의와 서양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같은 지향을 가지고 있었다. 저자가 보건대, 이들은 과학이 아닌 모든 것은 ‘미신’이라는 진화론적 지식론을 수용하여, 전통사상을 미신의 범주에 넣는 이론을 생산했다. 그에 따르면 과학은 고등지식이며,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