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본성상 그리고 영원히
종교적 인간(homo religious)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터키석, 이게 행운을 가져다준다는데.” 웬 미신이냐고 석연찮은 투로 대꾸하면서도 못 이기는 척 반지를 건네받았고,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안 되어 사고를 입는다. “이만하면 천만다행입니다.” 간신히 큰일은 면했다고 말하는 의사선생님을 보자 반지를 선물해 준 이의 얼굴과 함께 반지가 나를 구했다는 생각이 뒤미처 떠오른다. 눈앞이 흐려지며 시간이 정지되고, 공간감은 사라진다. 반지가 끼인 손가락 언저리의 통증에 그쪽으로 시선을 옮기니 반지의 터키석 부근만 깨져 있다. 돌이 깨진 자리에 성스러움이 깃들었는지 그로부터 반지를 볼 때면 숙연한 마음이다.
우리는 어떤 때, 어디에서고 성스러움을 경험한다. 라이터가 총알을 막아 목숨을 건졌다는 베트남전 당시 모 중사의 사례까지 가지 않더라도, 생일날의 케이크나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는 볼펜, 찾을 때는 없더니 이상스레 신발 속에 들어가 있는 네잎클로버, 우연히 책을 펼치다 발견한 문장이 어떤 중요한 선택에서의 계시처럼 느껴질 때, 합리적 결정이 아님을 아는데도 뭔가 이끌리듯 행하게 되는 결정들... 이러한 경험은 예기치 않은 때 우리의 일상을 오리며 비집고 들어오고, 좀처럼 잊기 힘든 감각으로 우리에게 흔적을 남긴다.
성과 속의 변증법, 범속한 것에서 출현하는 성스러움
우리가 범속함의 세계를 살아가다 성스러움을 체험하는 것은 이러한 종교적 경험을 통해서다. 현대종교학을 대표하는 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성과 속』에서 이같이 성스러움이 범속함의 세계에서 나타나게 되는 것을 성현(聖顯, hierophany)이라고 규정한다. 이전까진 의미가 분화되지 않고 균질적이었던 시공간이 차별화되어 비균질적인 것으로 탈바꿈되며 성스러움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 신호재 교수는, 엘리아데가 “현상학적 직관에 따라 종교적 체험의 본질로서의 성현이라는 사태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기술”했다고 보았다. 그런 점에서 엘리아데의 종교학을 ‘종교현상학’으로 평가해도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해설서에서 『성과 속』을 현상학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며, 그 핵심 내용을 찬찬히 해설해 나간다. 본문에서 제시되는 섬세한 설명과 아울러 독자의 이해를 돕는 다양한 그림자료와 도표로 『성과 속』의 핵심에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알차고 짜임새 있는 구성, 찬찬한 설명
『성과 속』의 복판으로 나아가다
1장에서는 『성과 속』의 저자 엘리아데에 대해 살피면서, 종교현상학이라고 불리는 엘리아데의 종교학에 대해 살펴본다. 간략하나마 후설의 현상학을 함께 살펴 독자가 『성과 속』을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2장에서는, 엘리아데의 종교학이 지닌 현상학적 성격을 방법론의 관점에서 규명하기에 앞서, 현상학의 문제의식을 시작으로 현상학의 방법인 현상학적 판단중지, 현상학적 태도변경, 현상학적 본질직관, 초월론적 현상학적 환원에 대해 짚어 독자가 현상학적 방법으로 『성과 속』을 이해하는 발판을 마련한다. 3장에서는 현상학의 방법적 절차를 통해 엘리아데가 종교의 본질로 규명해 낸 ‘성현’의 개념을 고찰한다. 4장 성스러운 공간에서는 일상적인 삶의 공간으로부터 어떻게 성스러운 의미로 구조화된 공간이 출현하게 되는지, 5장 성스러운 시간에서는 일상적인 시간으로부터 어떻게 성스러운 시간이 나타나게 되는지 살펴본다. 6장 성스러운 자연에서는 땅·물·나무·달·해·돌 등의 자연물이 상징하는 성스러운 의미를 알아볼 것이다. 7장 성스러운 인간에서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성스러운 존재로 만들어 나가는 초월적인 존재임을 고찰한다. 8장에서는 앞의 내용을 종합하면서 성스러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본성이라는 점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