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film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
平均 3.7
우리가 왜 기어코 우리가 떠나오기 전에 이미 떠난 무언가를 되뇌이고 되뇌이는지. 어째서 한 시대보다 한 시절을, 한 시절보다 한 순간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지. 필연적으로 떠날 당신이 여기에 있었던 순간만은 영원하기를 비는지. 그리고 영원하도록 이곳에 이 마음에 이 기억에 새기기를 바라는지. 떠나보내지 못한 상처는 내게 끝없는 침묵을 강요하고 떠나버린 사랑들은 메울 수 없는 구멍이 되었다. 나는 죽은 고대의 시인과 같이 내 사랑을 내 고통을 장면으로 만들어 온몸에 새겼다. 이 기억은 그때의 나를 그리고 너를 애도하기 위한 것이다. 수많은 시대착오적인 고통이 그러하듯이, 너무 아픈 기억들은 내 몸을 파고들어 내 영혼을 빼먹는다. 그 긴 세월을 지나며 나는 내내 추락하였다. 그러니 기억이란 얼마나 물리적인가. 기억한다는 건, 내내 아프다는 것. 나는 단지 과거의 복권을 위해서만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지독히도 현재적인 고통을 명명하기 위해, 지금의 나의 생존을 위해서 쓰는 것이다. 그러나 생존으로부터 어떻게 진짜 살아남을 것인가. 결국 남은 건, 그도 나도 떠나지 않은 대과거에서 외치는 일 뿐이다. 우리가 함께한 순간에 아직 그가 여기에 있을 때에 나는 당신으로부터 아팠고 당신으로부터 행복했다고. 먼 미래에 폐허를 더듬어 나의 고통과 슬픔을 토해내고 있다고. 살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ㆍ ㆍ ㆍ 프랑스어로 '당신이 집에 도착하면 눈이 그쳤을 것'이라고 할 때 '그치다'라는 동사는 전미래 시제로 쓰입니다. 전미래. 도착한 미래에서 이미 되바꿀 수 없는 과거. 저는 지금 당신이 죽은 미래에 있습니다. 언제나 과거형인 가혹한 그 소식은 이미 들었습니다. 심장이 내려앉고 침묵하고 울고 무너지고 울지 않고 웃지않고 이제는 근근이 살아가지만 도리 없이 영영 없어진 채로, 미래에서 당신에게 이 편지를씁니다. 당신이 죽고난 뒤에 이렇게 씁니다. 삶이란 피차 사라지는 것들을 떠나보내며 살아가는 것이겠지만, 당신이 떠난 후에 저는 비로소 그것을 견딜 수 없어졌습니다. 사라지는 것들이 사라진 다음, 사람은 어떻게 계속 살아가는가 비로소 아득하게 물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사라져 제가 슬픈 것은. 차마 생을 지속하기가 이토록 버거운 것은, 당신이 있었다는 증거겠지요. 예고도 없이 떠오르는 고통들이 있지요. 한때의 선연한 아픔. 그때 그 추위 너무도 육체적인 공포, 절망으로 멈춘 심장. 길을 걷다 문득 되살아나는 그것들을 당신도 느끼셨습니까. 당신의 몸에게도 그 고통이 언제나 거듭 현재적이었습니까. 그럼에도 그것을 형언할 수 없었습니까. 그 깊은 구멍을 아셨습니까. 그러나 당신. 그 구멍 안에, 우리의 사랑도 있었습니까. 오늘 저의 슬픔이 증명하고 있는, 그리하여 분명 존재했던, 우리의 사랑이 지금도 현재적으로 되돌아옵니까. 당신에게도. 이 책은 그러니까 감히 영원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 실린 사진들을 저는 어느 과거에, 누군가의 전미래에 적었습니다. 삶의 모양을 알 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저 떠돌다 장면을 발견하면 그에 항복하듯, 실패하듯 셔터를 눌렀습니다. 두고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갖고 오고 싶었습니다. 미래로. 없는 당신에게로. 이 답장은 아직 늦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집에 도착하면 눈이 그쳤을 것입니다. 이 문장에서 지금 눈이 오고 있는지 아닌지는 밝혀지지 않습니다. 다만 당신은 집에 도착할 것이고. 그 전에 눈이 왔다가 그칠 것입니다. 눈이 왔을 것입니다. 눈이 올 것입니다. ㆍ ㆍ ㆍ 한 장소를 가스실로 규정하기 위해 나는 그 가스실의 회 생자만을 증인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죽은 사람 외에는 희생자가 있을 수 없고, 만일 그렇지 않다면 가스실은 그럴 것으로 추정됐던 바와 같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스실은 없다.1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사람들의 법정에서 한 생존자가 위의 논지에 가로막힌다. 살아 돌아온 그는 문장을 뱉을 수 없다. 그의 말이 참이라면, 그토록 끔찍한 곳이 정말로 있었더라면,그도 거기서 죽었어야 할터인데. 죽지 않은것을 보니 그렇게 끔찍한 것은 아니었나 보다. 그런 곳은 없었나 보다. 이것이 법정의 언어이므로. 저 질서 속에서 그는 이중의 고통을 산다. 아우슈비츠에서부터 여기까지 간신히 기어 통과해온 고통과, 그 고통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는 고통. 그리하여 그는 침 묵한다. 그러나 이때, 침묵이란 무엇인가. ㆍ ㆍ ㆍ 바르트는 언젠가 사진과 함께 기어이 소멸할 사랑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는이 문장으로부터 도리어 사랑의 잔존을 읽어낸다.그때까지, 사랑이 있을것이다. 종이로 인화된 사진의 소멸이야 그다지 안타까울 것 없는 시대. 혹여 저장된 파일이 지워지더라도 사진은 사라진다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사진은 애초부터 물성을 갖지 않는것 같다. 그리하여 역설적으로 사라지지도 않을 것 같다. 촬영된 이미지를 일별하는 것만으로 내게 그사진은 영영 존재한다. 한때 사랑이 있었던 것을 증명하며. 그리하여 사랑이 끝난뒤에, 사랑이 남을 것이다. ㆍ ㆍ ㆍ ㆍ 그날 시모니데스는 공간에 기대 기억을 길어냈다.우리가 생의 많은 순간을 장면으로 기억하듯이. 삶에는 장면이 되는 순간과 채 장면이 되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어, 허다한 얼굴이야 희미해져도, 장면 속 당신이 어디에 앉아 있었는지, 그때 당신의 왼쪽 뺨으로 겨울 한낮의 햇살이 쏟아지던 것을,나는 잊을 수가 없는 것처럼. 그러므로 언제고 보다 많은 것을 기억하기 원했던 가련한 인류는 가능한 한 많은 순간을 장면으로 만들어 야 했고, 존재의 판별을 도울 만한 공간적 지표들을 망막에 새겨야 했다. 그것이 시인의 기억술이다. 그리고이때 기억은 애도를위한 것이다. 장례에 영정 사진이 필요한 까닭이다. 다른 누구도아닌 그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우리는 사진 속 얼굴을 마주할 때 실감한다. 당신이 없어졌다는 것을. 사진에 대고 절한 뒤 몇 개의 음식을 앞에 두고 우리는 길어낸다. 저마다의 삶 속에서 당신이 있었던 먼 장면들을. 당신이 있었던 날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페허가 된 연회장의 흩어진 잔해를 밟고. 그것이나마 남기려 최초의 정물화를 그렸을 먼 옛날의 화가처럼. 첫 번째 사진가처럼 2025.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