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끝난 뒤에 무엇이 남을까”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의 저자 목정원이
사진과 글로 전하는 기억의 기술에 관한 이야기
2021년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을 펴내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목정원의 사진산문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가 아침달에서 출간됐다. 목 작가가 2016년부터 찍어온 사진 100여 장과 함께 사진에 관한 에세이를 한 권의 아름다운 책으로 엮었다.
사랑하는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시인과 화가와 사진가 들은 공간에 기대 기록을 남겼다. 따라서 예술은 기억과 애도의 역사이기도 하다. 목정원은 장면을 영원히 보존하려는 시도인 사진에서 사랑의 잔존을 증명하려는 기억의 기술을 읽어낸다. 우리 눈앞의 어떤 장면들은 어느 미래에 없을 사랑으로 흐르기에, 그것을 남기려 하는 일은 영원한 사랑을 말하고자 하는 의지와도 같다. 목정원이 사진으로 이야기하는 일은 그렇게 사랑에 닿아 있다.
사진을 통해 전하는
소멸 뒤에도 잔존할 사랑
“사랑이 끝난 뒤에 무엇이 남을까.”
―본문에서
정물들이 놓인 강변을 지나, 눈밭이 빛처럼 흩날리는 숲을 걷는다. 인력에 의해 물이 빠져나가는 해안가를 지나 낯선 마을로 향한다. 그처럼 높고 거대하면서도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눈안개에 가려 있는 산과 마주한다. 사라진 인류의 역사를 유물로 보관한 장소들. 그리고 사진으로 박제되어 영원히 아름다울, 누워 있는 꽃들을 지나며 작가는 묻는다. 사랑이 끝난 뒤에 무엇이 남을까.
아름다운 자연들은 무정하여 우리보다 오래 남는다. 우리는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우리 중 누군가는 먼저 사라진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못내 슬픈 일이다. 우리는 사라지지만, 우리가 있었다고 전할 수 있을까.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이를 사라진 것들을 기억할 수 없을까.
인류는 사라진 존재들을 기억하고 애도하기 위해 기억술을 발달시켰다. 머물렀던 공간에 기대어 가능한 한 많은 순간을 장면으로 만들고자 했다. 시로, 회화로, 그리고 사진으로. 그리고 사진은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기 위해 택하는 기술이다.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에서 작가는 사진으로 말한다. 사진의 근본은 그 대상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데 있다. 나의 죽음과 더불어 인화된 필름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을 통해 기어이 소멸할 사랑을 이야기했던 롤랑 바르트의 글에서, 목정원은 도리어 사랑의 잔존을 읽는다. 이미 인화된 사진이 사라져가며 사진의 물성이라는 의미가 모호해진 디지털 필름의 시대, 목 작가는 “어쩌면 사진은 애초부터 물성을 갖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동시에 “가지지 않았기에 사라지지도 않을 것 같다”라는 역설을 던진다. “촬영된 이미지를 일별하는 것만으로 내게 그 사진은 영영 존재한다”는 말을 통해 영원회귀와도 같은 역설이 이루어진다. 사랑이 있었던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남겼던 사진은, 이제 물성을 가진 그 존재가 사라지더라도 다시 개인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남게 된다.
작가가 전하는 이 사진들을 통해 우리에게도 사진이 그러한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생에 가끔씩은 타인들의 사진이 자신에게 곧 도래할 미래가 되기도 하듯이.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더 많은 장소들을 우리의 기억 속에 남기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아마 그것은 더 많은 사랑의 기억들을 나눠 가지는 일일 것이다.
우리 마음속 아름다운 기억의 장소를
건드리는 사진 풍경들
“셔터를 누를 때마다 나는 탄식한다. 이것을 담을 수 없다. 이것은 지나갔다. 그런데도 시간이 흘러, 훗날 현상된 사진을 보며 어떤 이들은 경탄할 것이다. 그 숲이 아름답다고.”
―본문에서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에는 목정원이 필름카메라를 통해 남긴 기억의 장소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그 사진들은 목정원의 기억 속 한 장면들이지만, 그가 ‘온전하게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기고자 했던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지난날 프랑스, 조지아, 에스토니아, 네덜란드, 스코틀랜드, 한국 등등에 머무르고 오가며 목 작가가 남긴 장면들에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지 않았음에도 영원히 아름답다 여겨질 자연의 얼굴이 있으며, 생에 한순간 일별하고 사라질 인간의 옆모습이 모래 위 자국처럼 남아 있다. 꽃과 나무, 산과 사막, 그리고 사람과 바다의 풍광들이 주는 아름다움은 어느 때인가 사진을 보는 이의 눈앞에 실제가 되어 찾아올 미래이기도 하다. 혹여 이러한 풍광에서 슬픔을 느끼는 이가 있다면, 이는 아마 셔터를 누른 이와 시간선을 넘어서 시선을 마주친 것이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사진산문이라는 형식을 통해 전하는
목정원 작가가 가져 오고 싶었던 장면들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는 목정원 작가가 2016년부터 여러 나라를 오가며 직접 찍고 고른 백여 장의 사진과 함께 사랑과 기억, 애도와 고통에 관한 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산문이라는 이름대로 사진은 그저 좋은 풍경을 담은 데서 그치지 않고, 사진에서 사진으로, 사진에서 글로 이어지는 이야기 형식이 된다. 사진의 흐름에 따라 글을 해체해 배치해둔 까닭 또한 사진과 글이 흐름 속에서 하나의 텍스트로 전달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책의 말미에 펼쳐지는 인덱스 페이지를 통해 많은 사진들을 한눈에 보며 장면들의 기원을 찾아보는 순간도 눈길을 요하는 대목이다. 있는 것과 있었던 것들 사이에 놓일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전하는 장면들이 부디 독자들의 마음속에 오래 남아 빛나기를 바란다.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
목정원 · エッセイ
240p

2021년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을 펴내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목정원의 사진산문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가 아침달에서 출간됐다. 목 작가가 2016년부터 찍어온 사진 100여 장과 함께 사진에 관한 에세이를 한 권의 아름다운 책으로 엮었다. 사랑하는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시인과 화가와 사진가 들은 공간에 기대 기록을 남겼다. 따라서 예술은 기억과 애도의 역사이기도 하다. 목정원은 장면을 영원히 보존하려는 시도인 사진에서 사랑의 잔존을 증명하려는 기억의 기술을 읽어낸다. 우리 눈앞의 어떤 장면들은 어느 미래에 없을 사랑으로 흐르기에, 그것을 남기려 하는 일은 영원한 사랑을 말하고자 하는 의지와도 같다. 목정원이 사진으로 이야기하는 일은 그렇게 사랑에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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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urent
4.0
여기 실린 사진들을 저는 어느 과거에, 누군가의 전미래에 찍었습니다. 삶의 모양을 알 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저 떠돌다 장면을 발견하면 그에 항복하듯, 실패하듯 셔터를 눌렀습니다. 두고 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갖고 오고 싶었습니다. 미래로. 없는 당신에게로. 이 답장은 아직 늦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집에 도착하면 눈이 그쳤을 것입니다. 이 문장에서 지금 눈이 오고 있는지 아닌지는 밝혀지지 않습니다. 다만 당신은 집에 도착할 것이고, 그 전에 눈이 왔다가 그칠 것입니다. 눈이 왔을 것입니다. 눈이 올 것입니다.
김망고
5.0
글을 읽고 나니 모든 사진이 슬프게 보인다. 언젠가는없을 것. 있었던 것. 있었고, 없는 것을 확인하는 것 혹은 있지만, 없을 것.
윤오
4.0
당신이 집에 도착하면 눈이 그쳤을 것입니다. 이 문장에서 지금 눈이 오고 있는지 아닌지는 밝혀지지 않습니다. 다만 당신은 집에 도착할 것이고 그전에 눈이 왔다가 그칠 것입니다. 눈이 왔을 것입니다. 눈이 올 것입니다.
김토마
5.0
2026년 2월 1일 LES 스타벅스에서 사진은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거라는 걸 말해주고 있다.
준영
4.0
왓챠 그냥 ‘봤음’ 정도의 평가는 추가해줄 수 없을까 마음엔 와닿지 않아도 그냥 좋았네 하고 퉁칠 수 있는 것들에 이유를 떠올리며 별점을 매기고 싶지 않다.
minnn
4.5
비 오는 밤에 읽었다. 너무 좋다..
afilm
4.0
우리가 왜 기어코 우리가 떠나오기 전에 이미 떠난 무언가를 되뇌이고 되뇌이는지. 어째서 한 시대보다 한 시절을, 한 시절보다 한 순간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지. 필연적으로 떠날 당신이 여기에 있었던 순간만은 영원하기를 비는지. 그리고 영원하도록 이곳에 이 마음에 이 기억에 새기기를 바라는지. 떠나보내지 못한 상처는 내게 끝없는 침묵을 강요하고 떠나버린 사랑들은 메울 수 없는 구멍이 되었다. 나는 죽은 고대의 시인과 같이 내 사랑을 내 고통을 장면으로 만들어 온몸에 새겼다. 이 기억은 그때의 나를 그리고 너를 애도하기 위한 것이다. 수많은 시대착오적인 고통이 그러하듯이, 너무 아픈 기억들은 내 몸을 파고들어 내 영혼을 빼먹는다. 그 긴 세월을 지나며 나는 내내 추락하였다. 그러니 기억이란 얼마나 물리적인가. 기억한다는 건, 내내 아프다는 것. 나는 단지 과거의 복권을 위해서만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지독히도 현재적인 고통을 명명하기 위해, 지금의 나의 생존을 위해서 쓰는 것이다. 그러나 생존으로부터 어떻게 진짜 살아남을 것인가. 결국 남은 건, 그도 나도 떠나지 않은 대과거에서 외치는 일 뿐이다. 우리가 함께한 순간에 아직 그가 여기에 있을 때에 나는 당신으로부터 아팠고 당신으로부터 행복했다고. 먼 미래에 폐허를 더듬어 나의 고통과 슬픔을 토해내고 있다고. 살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ㆍ ㆍ ㆍ 프랑스어로 '당신이 집에 도착하면 눈이 그쳤을 것'이라고 할 때 '그치다'라는 동사는 전미래 시제로 쓰입니다. 전미래. 도착한 미래에서 이미 되바꿀 수 없는 과거. 저는 지금 당신이 죽은 미래에 있습니다. 언제나 과거형인 가혹한 그 소식은 이미 들었습니다. 심장이 내려앉고 침묵하고 울고 무너지고 울지 않고 웃지않고 이제는 근근이 살아가지만 도리 없이 영영 없어진 채로, 미래에서 당신에게 이 편지를씁니다. 당신이 죽고난 뒤에 이렇게 씁니다. 삶이란 피차 사라지는 것들을 떠나보내며 살아가는 것이겠지만, 당신이 떠난 후에 저는 비로소 그것을 견딜 수 없어졌습니다. 사라지는 것들이 사라진 다음, 사람은 어떻게 계속 살아가는가 비로소 아득하게 물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사라져 제가 슬픈 것은. 차마 생을 지속하기가 이토록 버거운 것은, 당신이 있었다는 증거겠지요. 예고도 없이 떠오르는 고통들이 있지요. 한때의 선연한 아픔. 그때 그 추위 너무도 육체적인 공포, 절망으로 멈춘 심장. 길을 걷다 문득 되살아나는 그것들을 당신도 느끼셨습니까. 당신의 몸에게도 그 고통이 언제나 거듭 현재적이었습니까. 그럼에도 그것을 형언할 수 없었습니까. 그 깊은 구멍을 아셨습니까. 그러나 당신. 그 구멍 안에, 우리의 사랑도 있었습니까. 오늘 저의 슬픔이 증명하고 있는, 그리하여 분명 존재했던, 우리의 사랑이 지금도 현재적으로 되돌아옵니까. 당신에게도. 이 책은 그러니까 감히 영원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 실린 사진들을 저는 어느 과거에, 누군가의 전미래에 적었습니다. 삶의 모양을 알 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저 떠돌다 장면을 발견하면 그에 항복하듯, 실패하듯 셔터를 눌렀습니다. 두고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갖고 오고 싶었습니다. 미래로. 없는 당신에게로. 이 답장은 아직 늦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집에 도착하면 눈이 그쳤을 것입니다. 이 문장에서 지금 눈이 오고 있는지 아닌지는 밝혀지지 않습니다. 다만 당신은 집에 도착할 것이고. 그 전에 눈이 왔다가 그칠 것입니다. 눈이 왔을 것입니다. 눈이 올 것입니다. ㆍ ㆍ ㆍ 한 장소를 가스실로 규정하기 위해 나는 그 가스실의 회 생자만을 증인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죽은 사람 외에는 희생자가 있을 수 없고, 만일 그렇지 않다면 가스실은 그럴 것으로 추정됐던 바와 같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스실은 없다.1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사람들의 법정에서 한 생존자가 위의 논지에 가로막힌다. 살아 돌아온 그는 문장을 뱉을 수 없다. 그의 말이 참이라면, 그토록 끔찍한 곳이 정말로 있었더라면,그도 거기서 죽었어야 할터인데. 죽지 않은것을 보니 그렇게 끔찍한 것은 아니었나 보다. 그런 곳은 없었나 보다. 이것이 법정의 언어이므로. 저 질서 속에서 그는 이중의 고통을 산다. 아우슈비츠에서부터 여기까지 간신히 기어 통과해온 고통과, 그 고통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는 고통. 그리하여 그는 침 묵한다. 그러나 이때, 침묵이란 무엇인가. ㆍ ㆍ ㆍ 바르트는 언젠가 사진과 함께 기어이 소멸할 사랑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는이 문장으로부터 도리어 사랑의 잔존을 읽어낸다.그때까지, 사랑이 있을것이다. 종이로 인화된 사진의 소멸이야 그다지 안타까울 것 없는 시대. 혹여 저장된 파일이 지워지더라도 사진은 사라진다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사진은 애초부터 물성을 갖지 않는것 같다. 그리하여 역설적으로 사라지지도 않을 것 같다. 촬영된 이미지를 일별하는 것만으로 내게 그사진은 영영 존재한다. 한때 사랑이 있었던 것을 증명하며. 그리하여 사랑이 끝난뒤에, 사랑이 남을 것이다. ㆍ ㆍ ㆍ ㆍ 그날 시모니데스는 공간에 기대 기억을 길어냈다.우리가 생의 많은 순간을 장면으로 기억하듯이. 삶에는 장면이 되는 순간과 채 장면이 되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어, 허다한 얼굴이야 희미해져도, 장면 속 당신이 어디에 앉아 있었는지, 그때 당신의 왼쪽 뺨으로 겨울 한낮의 햇살이 쏟아지던 것을,나는 잊을 수가 없는 것처럼. 그러므로 언제고 보다 많은 것을 기억하기 원했던 가련한 인류는 가능한 한 많은 순간을 장면으로 만들어 야 했고, 존재의 판별을 도울 만한 공간적 지표들을 망막에 새겨야 했다. 그것이 시인의 기억술이다. 그리고이때 기억은 애도를위한 것이다. 장례에 영정 사진이 필요한 까닭이다. 다른 누구도아닌 그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우리는 사진 속 얼굴을 마주할 때 실감한다. 당신이 없어졌다는 것을. 사진에 대고 절한 뒤 몇 개의 음식을 앞에 두고 우리는 길어낸다. 저마다의 삶 속에서 당신이 있었던 먼 장면들을. 당신이 있었던 날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페허가 된 연회장의 흩어진 잔해를 밟고. 그것이나마 남기려 최초의 정물화를 그렸을 먼 옛날의 화가처럼. 첫 번째 사진가처럼 2025.04.03
백형
2.5
글이 참 좋은데 이미지와의 연계가 지나치게 안일하고 사적이라는 인상을 떨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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