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神の道化師 フランチェスコ
平均 3.8
이 영화는 얼핏보면 성 프란체스코의 일화를 단순히 기록한 영화로 보일 수 있으나 로셀리니는 영화에서 프란체스코의 일생을 기록하는것엔 관심이 없다. 프란체스코와 그의 제자들의 일화를 단편적으로 잡애내 나타낸 에피소드들의 연결은 파편적이고 불연속적이다. 프란체스코와 제자들이 정착할 마을에 도착한 것처럼 영화속 그들의 이야기들은 즉흥적으로 도착해 정착하고 갑자기 떠난다. 대신 그들의 이야기가 떠난 자리를 '받아들임'의 이미지와 행위들이 채운다. 그렇다면 <프란체스코 신의 어릿광대>는 역시 받아들임의 영화이다. 그들이 그들을 찾아오는 지네프로를,지오반니를,수녀들을 반기는 모습을 잡는 카메라의 롱쇼트가 그토록 아름다운것은 시각적 아름다움과 함께 이 영화가 받아들임의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들의 받아들임의 행위에 뒤따라오는것은 영화의 과제이기도 한 믿음 이다. 그러나 영화에선 믿음의 근거가 될 기적은 나타나지 않는다. 폭군 니콜라이의 후퇴를 이끌어낸 지네프로의 일화를 기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니콜라이가 후퇴하는 시퀸스의 끝에 떠나는 군대와 사람들, 불타는 건물과 대지에 공허하게 서있는 지네프로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것은 기적과는 다르다. 그것은 기적보다는 소멸에 가깝다. 앞선 장면에서 프란체스카와 나병환자의 말없는 대면이 니콜라이와 지네로프의 말없는 대면을 연상시킬때 나병환자가 어둠속으로 향하며 소멸하는것 처럼 영화속의 일화들은 믿음의 근거로 기적보단 생성과 소멸의 받아들임을 제시하고 있다. 적선을 받으려 찾아간 집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진정한 기쁨을 느끼는 프란체스카의 모습에서 보이듯이 <프란체스카 신의 어릿광대>는 땅위에서 실현할수 없는 믿음을 추구하기 위해 오히려 세계를 필사적으로 받아들이는 몸부림의 영화이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목적지를 정하기 위해 제자리돌기를 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어릿광대처럼 우습지만 동시에 웃음이 도저히 나오지 않을정도로 숭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