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환

シビル・ウォー アメリカ最後の日
平均 3.4
정치적인 것들을 끌고 오면서 제대로 하나 얘기하지 않는 애매한 위치의 영화를 겁이 많다고 비판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어느 한 쪽 편에 서지 않는 중립적인 영화의 태도라 표현할 순 없다. 사실적이든, 혹은 영화적이든. 이 영화는 둘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중인 것 같았다. “We take pictures so others can ask question.” 영화는 오히려 정치적인 것보다도 전쟁 기자들의 저널리즘에 집중했다. 둘로 나누어진 국가와 피로 물든 전쟁터에서 카메라를 든 언론인의 태도였다.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도 사진을 찍을 거냐는 말에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들을 영원에 가깝도록 기억하게 만들기 위해서 누군가는 이것을 찍어야만 한다는 것에는 어느 정도 납득을 한다. 그러니, 사람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정의감, 책임감이 카메라에게도 들어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진실을 위해 생사를 걸고 살아가는 영화라고 하기엔, 정작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저 대사가 영화 속 언론인의 무감각한 입장을 대변해 준다지만, 또 다른 카메라를 든 이 영화의 태도를 감싸주진 못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이 가상의 전쟁이 필요한 이유를 찾지 못해서였다. 이 영화는 상황만 있지, (명확한) 원인이 없다. 최근 미국의 다양한 사회적인 이슈들의 실제 뉴스 영상을 짤막하게 보여주지만 거의 대부분이 이 허구적인 세계에서 어떤 편을 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중립적이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개입을 하지 않으려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가상의 갈등에 몰입을 하는 것도 웃기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이 세계를 허구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 영화는 이 세계가 굉장히 무시무시한 사실적 세계로 묘사하는 것에 진심인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카메라를 든 언론인이 내전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가지고 잊지 않다는 것을 독자와 관객들에게 공정한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변명을 하겠다면. 그러기엔 영화 속 언론인은 눈앞의 전쟁과 살상 앞에서 때때로 무심하거나 무책임할 정도로 느껴진다. 사람이 죽어가는 전쟁통에서 저널리스트는 이 상황을 기록하는 참여자인지, 혹은 방관자에 불과한지에 관해서 생각해 봄과 동시에 과연 저널리즘의 객관성과 공정성은 불가능한지를 판단해야 했다. 트라우마로 인해 무감각해진 이들의 설명(영화의 텍스트)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영화의 방향성에 비해 이와 충돌하는 각본과 연기는 몰입을 방해하기(영화의 연출 선택) 때문이었다. 같은 전쟁터 한복판에서 함께있지만, 유독 그들에게만 거리감이 느껴진다. 고귀한 직업 윤리와 정신마저 캐릭터에 몰입이 되지 않고 표면적일 뿐이라 느껴지는 연출 때문이라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어떠한 사회적 갈등에서의 입장도, 얘기도 하지 않고서야 대체 이 가상의 전쟁을 왜 벌여야만 했는지를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의문이었다. 정치적인 입장을 지나치게 거부하면서 굳이 왜 이 설정을 가져온 걸까. 허구적인 세계를 가져오면서 무언가를 비판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언론에 대해 다루겠다면 왜 이 디스토피아가 존재해야만 했는지. 이 도발적인 설정 자체가 너무 공허하다는 점이다. 개입도, 설명도, 지지도 없다는 것이 영화의 문제는 아니지만, 그렇다면 굳이 가상의 전쟁을 일으키며 정작 본인은 이 세계의 개입에서 멀어져 버린 감독의 선택은 결국 영화로 담고 싶었던 무언가에 대한 감독의 개인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그토록 담고 싶었던 장면이 사실적이든. 영화적이든. 그러니 이 영화는 어느 진영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중도적인 입장인 점에서 문제가 아니라, 여러 모순점들의 충돌과 이유의 부재 때문인 것이다. 허구의 장르 영화 속에서 사실적이고 싶은 영화의 욕심, 전쟁 저널리즘의 윤리들과 충돌되는 폭력을 다루는 영화의 카메라. 허구이든 아니든 정치적 사건에 대해 객관적인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면서 미국과 미국의 정치, 문화에 특정한 내용을 말하지 않다는 모순점. 그리고 굳이 가상의 전쟁이 필요한 이유 말이다. 어떤 비판이나 경고의 역할도 없는 무의미한 설정. 공정성을 얘기하면서 뒤로 한 발 물어나려고 하겠다만, 영화가 계속해서 전쟁 속 대량 학살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과 장르의 재미를 위한 몇몇 씬들을 보고 있으면 맥락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때때로 음악의 개입과 버물어진 슬로우 모션 및 몽타주씬과 사실적이고 싶은 영화의 몇몇 장면들이 충돌할 때마다 어느 하나에 몰입하기를 방해받는다. 불안감과 긴장감을 불어넣는 장치는 굉장히 장르적으로 연출하면서도 이것이 허구의 상황임을 인지시키는 대신에 사실적인 연출 방식을 택한다. 그 방식은 영화가 디스토피아를 묘사하는 내부적인 방식(배경, 무대)보다도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키는 연출을 곳곳에서 활용하는 방식을 선호하면서. 다만, ”이것은 굉장히 사실적입니다.“로 말하는 것과 ”이것은 사실입니다.“로 말하는 방식은 제아무리 극영화의 또 다른 기능임을 알면서도 관객은 이 두 가지 영화를 동등한 입장에서 받아들이진 않는다. 영화에서 연쇄살인마의 폭력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과 실제 일어난 일이라며 호소하는 입장에서 이를 보여준 것에는 윤리적인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곡성과 랑종의 차이처럼) 이 영화의 대부분을 다큐멘터리 식으로 찍었다는 것은 전혀 아니며, 지극히 장르 영화에 불과하지만, 종종 불현듯 튀어나오는 다큐멘터리의 장치들이(포토저널리즘의 전쟁 사진 묘사) 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총격 시퀀스가 끝나고 머지않아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은 스탠릭 큐브릭의 ‘풀 메탈 재킷’에서 Trashmen의 “Surfin’ Bird”를 오마주 했던 거겠다만, ‘풀 메탈 재킷’과 달리 이런 경박한 태도가 이 영화에서만 괘씸하게 작용되는 이유는 위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사실적으로 묘사한 영화와 사실이라며 상기시켜주는 영화는 다르니까. 진지할수록 엄격해야 하고, 책임이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마저 어떠한 비판적 기능으로써 수행을 못한다면 결국 영화의 오락적 유희에 그치지 않는다. 소재는 참신한데 소재 활용을 하지 않아서 그닥 의미가 없는? 영화의 사운드는 정말 좋았지만, 영화에서 음악의 사용은 별로였다. 리얼리티를 계속해서 추구하지만, 대뜸 장난스러운 장면들과 대사, 연기는 그 리얼리즘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싶은 다큐멘터리 적인 면모를 띈 장면들과 충돌하는 어설픈 슬로우 모션, 몽타주, 음악의 개입, 연기까지. 다시 볼 의향이 있다. 충분히 매력적인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내겐 곱씹어 볼수록 별로 남는 게 없는 공허한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