シビル・ウォー アメリカ最後の日
Civil War
2023 · アクション/戦争/ドラマ · アメリカ, イギリス
109分 · R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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連邦政府から19もの州が離脱したアメリカ。テキサスとカリフォルニアの同盟からなる“西部勢力”と政府軍の間で内戦が勃発し、各地で激しい武力衝突が繰り広げられていた。“国民の皆さん、我々は歴史的勝利に近づいている……”。就任 “3期目”に突入した権威主義的な大統領は、テレビ演説で力強く訴えるが、首都ワシントンD.C.の陥落は目前に迫っていた。ニューヨークに滞在するジャーナリスト4人は、14ヵ月もの間、一度も取材を受けていない大統領への単独インタビューを行うため、ホワイトハウスへ向かう。だが彼らは、戦場と化した道を進むにつれて、内戦の恐怖と狂気に呑み込まれてい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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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평론가
3.0
‘찍다’와 ‘쏘다’가 모두 영어로 ‘shoot’이라는 사실이 떠오르는 격렬한 딜레마.
무비신
4.0
전망하는 카메라, 기록하는 필름, 질문하는 사진들.
정환
2.5
정치적인 것들을 끌고 오면서 제대로 하나 얘기하지 않는 애매한 위치의 영화를 겁이 많다고 비판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어느 한 쪽 편에 서지 않는 중립적인 영화의 태도라 표현할 순 없다. 사실적이든, 혹은 영화적이든. 이 영화는 둘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중인 것 같았다. “We take pictures so others can ask question.” 영화는 오히려 정치적인 것보다도 전쟁 기자들의 저널리즘에 집중했다. 둘로 나누어진 국가와 피로 물든 전쟁터에서 카메라를 든 언론인의 태도였다.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도 사진을 찍을 거냐는 말에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들을 영원에 가깝도록 기억하게 만들기 위해서 누군가는 이것을 찍어야만 한다는 것에는 어느 정도 납득을 한다. 그러니, 사람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정의감, 책임감이 카메라에게도 들어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진실을 위해 생사를 걸고 살아가는 영화라고 하기엔, 정작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저 대사가 영화 속 언론인의 무감각한 입장을 대변해 준다지만, 또 다른 카메라를 든 이 영화의 태도를 감싸주진 못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이 가상의 전쟁이 필요한 이유를 찾지 못해서였다. 이 영화는 상황만 있지, (명확한) 원인이 없다. 최근 미국의 다양한 사회적인 이슈들의 실제 뉴스 영상을 짤막하게 보여주지만 거의 대부분이 이 허구적인 세계에서 어떤 편을 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중립적이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개입을 하지 않으려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가상의 갈등에 몰입을 하는 것도 웃기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이 세계를 허구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 영화는 이 세계가 굉장히 무시무시한 사실적 세계로 묘사하는 것에 진심인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카메라를 든 언론인이 내전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가지고 잊지 않다는 것을 독자와 관객들에게 공정한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변명을 하겠다면. 그러기엔 영화 속 언론인은 눈앞의 전쟁과 살상 앞에서 때때로 무심하거나 무책임할 정도로 느껴진다. 사람이 죽어가는 전쟁통에서 저널리스트는 이 상황을 기록하는 참여자인지, 혹은 방관자에 불과한지에 관해서 생각해 봄과 동시에 과연 저널리즘의 객관성과 공정성은 불가능한지를 판단해야 했다. 트라우마로 인해 무감각해진 이들의 설명(영화의 텍스트)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영화의 방향성에 비해 이와 충돌하는 각본과 연기는 몰입을 방해하기(영화의 연출 선택) 때문이었다. 같은 전쟁터 한복판에서 함께있지만, 유독 그들에게만 거리감이 느껴진다. 고귀한 직업 윤리와 정신마저 캐릭터에 몰입이 되지 않고 표면적일 뿐이라 느껴지는 연출 때문이라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어떠한 사회적 갈등에서의 입장도, 얘기도 하지 않고서야 대체 이 가상의 전쟁을 왜 벌여야만 했는지를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의문이었다. 정치적인 입장을 지나치게 거부하면서 굳이 왜 이 설정을 가져온 걸까. 허구적인 세계를 가져오면서 무언가를 비판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언론에 대해 다루겠다면 왜 이 디스토피아가 존재해야만 했는지. 이 도발적인 설정 자체가 너무 공허하다는 점이다. 개입도, 설명도, 지지도 없다는 것이 영화의 문제는 아니지만, 그렇다면 굳이 가상의 전쟁을 일으키며 정작 본인은 이 세계의 개입에서 멀어져 버린 감독의 선택은 결국 영화로 담고 싶었던 무언가에 대한 감독의 개인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그토록 담고 싶었던 장면이 사실적이든. 영화적이든. 그러니 이 영화는 어느 진영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중도적인 입장인 점에서 문제가 아니라, 여러 모순점들의 충돌과 이유의 부재 때문인 것이다. 허구의 장르 영화 속에서 사실적이고 싶은 영화의 욕심, 전쟁 저널리즘의 윤리들과 충돌되는 폭력을 다루는 영화의 카메라. 허구이든 아니든 정치적 사건에 대해 객관적인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면서 미국과 미국의 정치, 문화에 특정한 내용을 말하지 않다는 모순점. 그리고 굳이 가상의 전쟁이 필요한 이유 말이다. 어떤 비판이나 경고의 역할도 없는 무의미한 설정. 공정성을 얘기하면서 뒤로 한 발 물어나려고 하겠다만, 영화가 계속해서 전쟁 속 대량 학살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과 장르의 재미를 위한 몇몇 씬들을 보고 있으면 맥락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때때로 음악의 개입과 버물어진 슬로우 모션 및 몽타주씬과 사실적이고 싶은 영화의 몇몇 장면들이 충돌할 때마다 어느 하나에 몰입하기를 방해받는다. 불안감과 긴장감을 불어넣는 장치는 굉장히 장르적으로 연출하면서도 이것이 허구의 상황임을 인지시키는 대신에 사실적인 연출 방식을 택한다. 그 방식은 영화가 디스토피아를 묘사하는 내부적인 방식(배경, 무대)보다도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키는 연출을 곳곳에서 활용하는 방식을 선호하면서. 다만, ”이것은 굉장히 사실적입니다.“로 말하는 것과 ”이것은 사실입니다.“로 말하는 방식은 제아무리 극영화의 또 다른 기능임을 알면서도 관객은 이 두 가지 영화를 동등한 입장에서 받아들이진 않는다. 영화에서 연쇄살인마의 폭력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과 실제 일어난 일이라며 호소하는 입장에서 이를 보여준 것에는 윤리적인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곡성과 랑종의 차이처럼) 이 영화의 대부분을 다큐멘터리 식으로 찍었다는 것은 전혀 아니며, 지극히 장르 영화에 불과하지만, 종종 불현듯 튀어나오는 다큐멘터리의 장치들이(포토저널리즘의 전쟁 사진 묘사) 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총격 시퀀스가 끝나고 머지않아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은 스탠릭 큐브릭의 ‘풀 메탈 재킷’에서 Trashmen의 “Surfin’ Bird”를 오마주 했던 거겠다만, ‘풀 메탈 재킷’과 달리 이런 경박한 태도가 이 영화에서만 괘씸하게 작용되는 이유는 위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사실적으로 묘사한 영화와 사실이라며 상기시켜주는 영화는 다르니까. 진지할수록 엄격해야 하고, 책임이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마저 어떠한 비판적 기능으로써 수행을 못한다면 결국 영화의 오락적 유희에 그치지 않는다. 소재는 참신한데 소재 활용을 하지 않아서 그닥 의미가 없는? 영화의 사운드는 정말 좋았지만, 영화에서 음악의 사용은 별로였다. 리얼리티를 계속해서 추구하지만, 대뜸 장난스러운 장면들과 대사, 연기는 그 리얼리즘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싶은 다큐멘터리 적인 면모를 띈 장면들과 충돌하는 어설픈 슬로우 모션, 몽타주, 음악의 개입, 연기까지. 다시 볼 의향이 있다. 충분히 매력적인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내겐 곱씹어 볼수록 별로 남는 게 없는 공허한 영화였다.
STONE
3.5
예상외로 그냥 깔끔했던 전쟁 영화. 질문을 던진다기보단 그것의 무의미함만을 남긴다.
영화보고 밥먹고 커피마시고 산책해요
3.0
이 영화는 단순한 픽션을 넘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위기를 비추는 거울처럼 다가온다.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들이 믿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싸우지만, 그 과정에서 국가와 공동체가 무너져 내리는 모습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단면을 떠올리게 한다.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는 기념사진 컷은 폭력적 행위가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억되지 않고, 축하나 성취로 소비되는 현실을 통해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도덕적 기준이 무너지고 인간성이 상실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스토리 전개에서 저널리스트의 역할이 영화의 주요 서사에서 충분히 중심적이지 않다는 점이 아쉽다. 관객이 저널리스트가 위험을 감수하며 진실을 보도하려는 행위를 납득하고 공감하려면, 더 세밀한 서사적 설계가 필요했다. 그러나 영화 속 캐릭터의 행동은 논리적이거나 현실적이지 않고 단순히 극적 긴장을 위한 장치로만 보인다.
동구리
4.0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 영화의 개봉 타이밍이 참으로 기묘하게 되어버렸지만, 이 영화를 지금의 국내, 혹은 트럼프를 재당선시킨 미국의 현실 정치의 반영물로 바라보는 것은 오독에 가깝다. <시빌 워>는 내전 상황의 미국을 다루고 있지만 이는 트럼프가 선동했던 2021년의 국회 폭동 사건 같은 것과 일절 관계가 없다. 익숙한 정치 영화나 전쟁 영화의 틀 안에 속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담 맥케이류의 풍자 영화라 할 수도 없다. 영화가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지만 순간순간의 언급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설정은 그것을 명확히 한다. 영화에는 크게 두 세력이 대립 중이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동부의 주들이 뭉친 정부군,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를 중심으로 한 서부군. 그리고 플로리다를 중심으로 나머지 주들이 뭉친 플로리다연합이 두 세력의 틈바구니에 존재한다. 이러한 설정은 말도 안 되는 정치적 서커스의 결과이거나 <트로피코> 같은 파시즘 시뮬레이터 게임에서나 가능할 법한 게리맨더링으로만 가능할 것이다. 즉, <시빌 워>는 적어도 2016년 트럼프 당선 이후 할리우드에서 쏟아지는 일련의 정치 풍자극이나 정치비평과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시빌 워>의 기획은 무엇인가? 알렉스 가랜드의 연출작 필모그래피를 간단히 살펴보자. 데뷔작 <엑스 마키나>와 8부작 드라마 <데브스>에서 그는 실리콘 밸리에 대한 혐오를 드러낸다. 표면적으로는 AI 기술로의 매혹을 담아내는 것 같지만, 두 작품 속에서 AI의 창조자들은 결국 줄행랑 혹은 살해대상이 되지 않던가. 기묘한 SF 탐험극 <서던 리치>는 미국식 정복주의, 다시 말해 북미 대륙 바깥의 땅을 직접적으로 점령하지는 않지만 문화적, 경제적, 이념적 테라포밍을 통해 하나의 거대 블록을 형성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라고 바라볼 수 있다. 갑작스레 나타난 이공간을 탐사하고 정복하고자 하는 ‘과학적’ 욕망은 끝내 실패한다. 다분히 할리우드적인 게임 디자이너 코지마 히데오가 <데스스트랜딩>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대륙횡단철도의 건설을 재현하고자 했던 것과 대비된다. 영국 국적의 가랜드가 영국에서 연출한 유일한 영화 <멘>은 유해한 남성성(toxic masculinity)의 주요한 기능이자 기술로서의 가스라이팅을 바디호러의 장르적 관습 속에서 풀어낸다. 전작들에서 취한 가랜드의 정치적 윤리성은 <시빌 워>의 기반이 된다. 이 영화의 목표는 건국 이래로, 혹은 대륙횡단철도 건설 이래로 미국이 타 대륙에 외주화 해온 제노사이드, 자살폭탄테러, 국지전과 같은 폭력을 미국의 땅 위에 펼쳐 놓는 것이다. 현재도 미국의 지원과 묵인하에 장기화되고 있는 제노사이드와 전쟁이 이어지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이 역사는 2차대전 이래로 세계경찰의 역할을 자임해온 미국이 두 세기에 걸쳐 이어가고 있는 정치적, 군사적 프로젝트다. 리(커스틴 던스트)를 비롯한 영화의 주요 인물 4인방이 모두 종군기자 혹은 종군기자 지망생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군기자는 태생적으로 폭력 안에 존재하는 직업이다. 그들은 눈앞에서 총살당하고, 화형당하고, 폭탄에 사지가 찢어진 사람들을 찍는다. 진부한 비유이지만 영화에서도 여러 차례 등장하기에 써보자면, 그들은 총(shot)에 반격하기 위해 촬영(shot)하는 이들이다. 다만 이것은 정말로 반격인가? 종군기자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을, 베트남전부터 21세기 초반까지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들을 떠올려보자. 해당 지역의 민간인들, 그곳을 점유하며 살아가는 주민들에겐 전쟁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로서의 카메라가 극히 제한적으로만 존재했다. “이라크전은 발발하지 않았다”는 보드리야르의 도발적인 발언에 함의된, 종군기자의 카메라를 통해 사진과 영상으로, 시뮬라크르로서 매개된 전쟁은 전쟁을 독자나 시청자 앞에 현현하게끔 해줌과 동시에 그 대상을 뒤덮어버린다는 것이 지난 시기 이어졌던 비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종군기자의 카메라는 진실을 포착해 외부로 전파하는 장치임과 동시에 필연적으로 외부의 시선으로 자리한다. 특히 미국 국적의 기자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그렇기에 <시빌 워>는 남북전쟁 이래로 전장이 되어본 적 없는 미국 본토를 전장으로 테라포밍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미국이 전장이 되었을 때, 현장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종군기자의 윤리는 여전히 이어질 수 있는가? 이 영화는 그들의 카메라가 가진 위선 내지는 윤리적 개입의 불가능성을 드러낸다. 카메라가 담아낸 내전의 상황은 그 상황을 전파함과 동시에, 영화 내내 드러나듯 특정한 전쟁 세력의 보조를 통해서만 촬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파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정부군과 싸우는 플로리다연합군의 시야에서 촬영한 사진은 무엇을 반영하는가? 리의 악몽 속에서 등장한 중동과 아프리카의 전쟁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촬영할 때의 거리감은 사라진다. 대통령이 사살당하기 전에 인터뷰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뉴욕에서 워싱턴 D.C.까지의 위험천만한 여정을 시작할 때, 익숙한 듯 전장을 가로지르고 사진을 찍는 그들 앞에 놓인 것은 ‘적’이 아니라 친구, 동료, 시민이 된다. 영화 중반부 등장해 리 일행을 위협하는 한 극단주의자를 커스틴 던스트의 실제 남편 제시 플레먼스가 연기한다는 지점은 이를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러한 맥락에서 그들의 카메라로 촬영된 전장으로서의 미국, 총격과 폭탄테러로 죽어간 미국 시민의 사진은 로이터와 AP통신 등의 매체로 전송된다. 하지만 이 보도는 이전과 같을까? 리와 제시(케일리 스페이니)는 각자의 부모가 이 모든 내전 상황을 무시한 채 시골 농장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워싱턴 D.C.로 향하던 중 그들은 내전이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 살아가는 마을에 당도하기도 한다. 그들의 사진은 영향력 있는 동시에 무시의 대상이다. 일상적 뉴스로 받아들여지던 타국의 전쟁은 카페테리아에 놓인 TV에서 흘러나오는 백색소음이 될 수 있지만, 자국의 땅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그렇지 못하다. 그것과 거리를 두기에 그들은 너무 지근거리에 존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빌 워>와 겹쳐지는 영화는 미국에서 생산된 정치 비평적 영화들이 아니다. 타국으로 파견된 종군기자와 저널리스트들이 촬영해 온 영화도 아니다. 전쟁이 벌어지는 바로 그곳에서, 그곳의 국적을 갖고, 그곳의 사람들과 직장과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찍는 현장. <시빌 워>에 그러한 이미지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알렉스 가랜드는 종군기자의 카메라가 그곳의 사람들이 꺼내든 카메라와 같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미국 정치의 지금이 아니라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미국 정치에 던진다.
창민
3.5
분열은 총알보다 깊게 박힌다.
후니
3.5
침묵보다 고요하고 총소리보다 요란할때 터지는 살떨리는 플래시 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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