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린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平均 3.5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엘리자베스 핀치를 잘못 알고 있다." 어릴때는 누군가를 단정짓는 걸 좋아했다. 사실 지금도 어느정도 그렇다. 저 사람은 어떤 타입의 사람일거야, 역시 내 말이 맞았네! 하는 식으로, 그 사람을 예상하고 그려내고 내가 그린 점선에 맞는 사람인지 확인했다. 사실 이건 어쩔 수 없는 사람의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종종 그렇게 누군가를 틀에 가두고(나쁜 말로), 서사를 부여한다(좋은 말로?). 특히 후자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하기 쉽다는 점인데, 이 책은 그 아이러니의 단계를 정말 세심하고 독자로 하여금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좀 부끄러울만큼 겹겹이 잘 쌓아놓았다. 누군가를 보고, 어떤 점을 보고 반하고, 그 사람을 이상화하고, 내가 만든 그것에서 벗어난 그 사람의 모습에 실망하거나 혹은 그냥 무시하고 제거한다. 마치 그건 없었던 일인것처럼.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치면, 차마 그걸 잘라내지 못하고 내 마음에 드는 타입으로 어떤 해석을 덕지덕지 붙여 전혀 다른 사실로 주조해버리기도 한다. 이런식으로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멋대로 서사를 부여한다. 난 이런 과정에는 제법 전문가로 살아온 편이라, 책을 읽으며 자주 뜨끔하고 종종 소리내서 웃었다. 아 부끄럽다, 하면서. 누군가의 사랑할만한 구석을 자꾸자꾸 찾는 건 나쁜 버릇은 아닌 것 같다. 다만 결국 주인공이 깨닫게 된 것처럼, 그걸 내멋대로 매듭지어 서사를 완성해버리지만 않는다면. - 그때 우리 나머지학생들이 창피까지는 아니어도 순진하다고 생각할만한 말을 하는 데 언제나 두려움이 없던 린다가 주장했다. "괴테는 맞는 여자를 만난 적이 없을 거 같아요." 다른 강사 앞이었다면 우리는 부담없이 키득거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EF는 스스로의 생각에는 엄격하면서도 우리 생각이나 제안은 하찮거나 감상적이거나 대책없을만큼 자전적이라는 이유로 물리친 적이 없었다. 대신 우리의 시시껄렁한 작은 생각을 훨씬 흥미로운 것으로 바꿔주었다. "특별히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을 찾고 있지는 않았다. 여자는 친구로서 좋아했다. 특히 어떤 식으로든 나를 조종하려하지 않을 때, 특히 나에게 더 많은 것을 기대하는(위협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네덜란드 사람일 때." "지금 그녀를 신비의 여인처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는 그렇지않았다. 신비함이 전혀 없었다. 특별하다고 할만큼 늘 명료했다." "많은 이교도 신은 하나뿐인 기독교 신, 거기에 그 모든 성자와 순교자를 모은 집단만큼 강하지 못하다. 이교도신들은 변덕스럽고 제정신이 아니다. 전쟁을 한다고 시끄럽게 떠들기만 하는 아레스는, 한번도 율리아노스를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록시아스는 점의 결과를 거짓으로 알려주었다. 벼락 던지기를 즐기는 신은 율리아노스를 죽인 쪽으로는 그것을 보내지 않았다. 이것은 종교적일 뿐 아니라 정치적인 주장이기도 하다. 우리 종교가 더 진실할 뿐 아니라, 우리 신이 더 강하고 믿음직스럽다. 우리와 함께하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다. 갈릴리인들에게 한 표를!" "내가 카드를 보냈어요. 일주일정도 답이 없었어요. 그건 드문 일이었죠. 보통은 답을 했거든요. 그래야 그걸 치워서 쓰레기통에 넣을 수 있으니까. 어쨌든, 열흘 쯤 뒤에 짧은 편지를 받았어요. 완전히 리즈다운 편지. 누이는 이렇게 썼어요. 가족을 망신시켜서 미안하다고 했죠. 아니, 그렇게 표현하지는 않았죠, 가족의 방패를 더럽혀서 고통스럽다고, 우리 모두가 마을에서 쫓겨나지를 바라지 않는다고 했어요. ... 아, 누이는 이렇게 서명했어요. 죄를 지었지만 회개하지 않는 여동생 엘리자베스. 그걸보니 기운이 났어요, 솔직히 말해서. 그새끼들이 누이를 쓰러뜨리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