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기현

Dear You, Unrelated (英題)
영화라는 매체는 기본적으로 죽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사를 찍고 스크린에 영사하는 매체임에도 피사체가 프레임에 담기는 순간 그 이미지는 어쩔 수 없이 과거의 것이 된다. 프레임 속에 시간이 갇히는 것이다. 그렇게 영화가 아무리 현실을 담았다고 할지언정 우리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을 수 밖에 없고 일방적인 방향의 전달을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를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라는 매체의 속성일 뿐이다. 그러나 영화의 마법은 그 죽은 세계에서 살아있는 것을 발견할 때 시작된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클로즈업>의 경우 현실과 픽션을 교묘하게 섞어내며 카메라가 비추는 대상은 이미 지나버린 세상임에도 우리에게 넘어오는 지점들이 존재한다.(실제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도 그렇지만 오랫동안 카메라가 비추는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캔이나 저화질 카메라로 찍은 듯한 재판 과정이 그렇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8과 1/2>는 영화의 현실 장면과 귀도가 만드려는 영화의 일치되는 부분을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통해 꿈과 현실을 뒤섞으며 나아가 관객과 영화의 경계를 해체하기도 한다. 요컨대, 아무리 영화의 세계는 이미 죽었을지언정 좋은 영화들의 세계는 관객들 안에서 다시 생명을 얻게 된다. 아마 이 마법 덕분에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울고 웃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1955년에 개봉한 "박남옥" 감독의 <미망인>은 결말이 유실된 작품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어떻게 결말이 나는지 이야기가 남아있긴 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원래의 결말의 이야기를 가져와서 스크린에 복원하면 이는 과연 해당 영화를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아니다. <미망인>의 결말의 이야기가 남아있을지언정 이를 복원하는 감독마다 연출 방향성이 다를 것이며 이야기의 해석 또한 다를 것이다. 마치 부품을 갈아 끼운 테세우스의 배처럼 결말이 유실된 <미망인>에 결말을 복원해 붙여도 완전한 복원이 될 수 없으며 그 순간 이미 "박남옥" 감독의 <미망인>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말 없는 영화를 보는 것도 진정한 의미의 <미망인>을 관람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감독은 분명 결말까지 감상하는 것을 상정하고 만든 영화일테니까 말이다. 뭐가 됐든 어떤 방식으로도 결국 현대 관객들은 박남옥 감독의 진정한 <미망인>은 볼 수 없을 것이다.(물론 유실된 결말이 찾아진다면 그렇진 않을 수도 있긴 하다만...) 그럼에도 <무관한 당신들에게>는 유실된 <미망인>의 결말을 복원한다. 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소개와 같은 김태양 감독의 <무관한 당신들에게>로 시작하여 결말을 두 개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이종수 감독의 <이신자>와 이미랑 감독의 <미망인: 다시 맺음>, 그리고 박남옥 감독이 연모했던 김신재 배우와의 관계를 탐색하는 <보이지 않는 얼굴(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 영화들은 <미망인>의 결말을 "그대로" 복원하려 하지는 않는다고 느꼈다. 어쩌면 "복원"이라는 관점에서는 무용해보이는 이 시도를 통해 오히려 다각도로 <미망인>을 탐색하고 해체해서 재조합하는데 성공한다. 오히려 과거의 대한민국이 아닌 당당히 현재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보여주며 시간을 분해하기도 하고,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닿을 수 없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통해 공간을 나누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결국 <미망인>의 세계가 복원이 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의해 "죽어버린" 세계임을 역설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무관한 당신들에게>는 <미망인>에게 그렇게 새로운 생명을 주게 된다. 죽어버린 세계의 시간과 공간의 해체는 어쩌면 영화만이 해낼 수 있는, 죽어버린 세계이기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무관한 당신들에게는>은 말한다. 복원할 수 없기 때문에, 이미 죽어버린 세계이기에,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영화가 살아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죽음이란 사는 것들만 가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객은 이 경험으로 70년의 시간의 흐름을 경험할 수 있고, 다른 공간을 가보며, 영화는 관객들의 안에서 다시 한번 새로운 가치로써 살아나게 된다. p.s.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던 단편은 손구용 감독님의 <보이지 않는 얼굴(들)>이었다. 같은 공간에 있는 두 남녀는 20평 남짓하는 놀이터에서 돌아다니지만 그들은 만나지 못한다. 그들의 만남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일까? 시간일까? 애초에 그 둘이 만날 필요가 있는 걸까? 그 일상적인 몸짓과 배우들과 공간의 상호작용은 관객들로 하여금 일상을 오히려 낯설게 만들고 그리고 그 사이에서 관객들은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된다. 일방적으로 전달할 뿐인 영화가 체험의 영역으로 관객들을 이끌어 주는 것이다. 그런 작품을 관객들이 꽉 찬 극장에서 영화의 세계로 들어가는 경험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원래는 전시로 기획된 작품이라고 하는데 전시로도 보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