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천수경

천수경

5 year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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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대

本 ・ 2014

平均 4.0

내 엄마는 여력이 남아돌 땐 좋은 엄마였고 대부분의 시간엔 안 좋은 엄마였다. 나는 무언가를 사달라고 떼써본 기억이 없다. 갖고 싶은 모든 레고 세트와 바비 세트, 만화책들을 쉽게 가졌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엄마를 보고 자랐다. 엄마는 하루종일 방에 쳐박혀서 영화를 보거나 비디오 게임을 했고, 그러다가 나와서 이유 없이 나와 동생들의 모든 행동에 트집을 잡고 비이성적으로 소리질렀다. 집에 함께 살던 가사도우미가 말리면 화를 냈다. 일하시는 분은 자주 바뀌었다.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시기를 보내던 중학생 때였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내 얼굴을 향해 사전을 던진 적이 있다. 내가 기적적인 속도로 피하지 않았더라면 그 사전은 내 머리를 쳤을 거고 거기에 꽂혀 있던 펜이 내 눈을 찔렀을 수도 있다. 그 사물들이 내 바로 뒤의 벽을 때리는 소리가 너무 커서 지금도 귀에 들리는 듯하다. 나를 몸서리치게 만드는 그 사건을 엄마는 기억도 못한다. 아주 많은 다른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그녀가 왜 그랬는지 나는 영영 모를 것이다. 엄마가 왜 그렇게 늘 불행해서 온 집안에 불행을 전염시켰는지,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나는 알고 싶지 않기 때문에 영영 모를 것이다. 엄마가 감히 그것을 설명하려 든다면 여태 했던 모든 용서를 다 취소할 지도 모른다. 그녀에겐 변명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얼마나 구구절절하고 아픈 사연이 있었는지는 엄마가 혼자 주인공인 페이지에서나 중요하다. 나는 EBS다큐 극한직업을 통해 내 일상의 물건들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알게 될 때 희열을 느끼고, 세상 모든 사람의 모든 소식과 모든 역사가 궁금하다. 잔혹한 일을 저지른 가해자들의 서사도 나는 다 알고 싶다. 히틀러의 첫사랑이 어땠는지 알고 싶다. 하지만 내 엄마의 이야기는 알고 싶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의 삶을 더욱더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가 살면서 느꼈을 세상에 대한 원망, 박탈감, 무기력, 주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 뭐 그런 것들의 장황한 전말을 나는 이제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세상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 생겨버린 것이다. 엄마에게 이슬아와 백수린의 책을 추천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날이 온다면 그녀를 결혼식에 초대하진 않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날이 왔을 때 엄마의 축복에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응답할 것이다. 엄마의 생일날 꽃을 사주지만, 억지로 산 것이라는 티를 내는 것이 내 기준에서 공정함을 유지하는 일이다. 지금 엄마는 다른 나라에 있고 언제 또 볼지 기약도 없다. 동생을 통해 소식을 전해 들을 땐, 당신에게 생일날 꽃을 사줄 필요가 없어서 얼마나 좋은지 직접 전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어떤 관계의 비극엔 너무 많은 것들이 얽혀 있다. 부조리한 사회 구조, 그에 따른 역사적인 혁명, 혁명에 참여한 누군가의 사랑, 그의 죽음, 그의 가족, 그로 인해 바뀌어버린 한 여자의 운명, 그 여자의 적성, 결혼 생활의 구조, 거기에 태어난 아이. 그 아이는 자신이 어떤 사랑의 순간에 잉태된 존재인지 영영 모를 것이다. 벨라는 가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나도 엄마를 용서하지 않겠지만, 벨라를 대신해서 내가 가우리를 용서했고, 내 엄마를 이해하는 대신 가우리를 이해하기로 했다. 소설의 힘이다. 줌파 라히리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