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구리

1980 Sabuk (英題)
平均 3.7
"1980년 4월, 광주 이전에 사북이 있었다"는 포스터의 강렬한 홍보문구가 말하듯, 5.18 이전 강원도 정선군 사북면에서 있었던 '사북사태'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감독이 내레이션을 맡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1980 사북>의 화자는 감독도, 사건의 당사자인 광부/경찰/계엄군도 아니다. 사건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으며 서울로 대학을 갔다 나이들어 '정선지역사회연구소'를 차리며 고향에 돌아온 황인욱 정선지역사회연구소장이 영화의 내레이션을 맡았다. 그는 어린 나이에 사북사태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음을 고백하면서도, 사북민주항쟁동지회의 2대 회장을 맡은 친형 황인호와 사건 당시 '어용노조' 지부장의 아들인 친한 학우 사이에 놓여 있다. 당사자 자체는 아니지만 당사자에 가까운 인물이랄까. 일종의 중간지대에 놓인 인물로서 그의 내레이션은 단순히 '중립'적인 시선으로 사북사태를 바라보는 것으로 활용되지 않는다. <1980 사북>은 황인욱이 그간 벌여온 연구와 조사, 그리고 그의 내레이션을 따라 사북사태를 연대기적으로 구성하고 소개하는 것을 택하지 않는다. 사건 발생의 순간까지를 연대기적으로, 익숙한 역사서술의 방식으로 가져올 뿐, 그 이후의 구성은 당시 항쟁에 참여한 노조 간부와 광부들, 그들과 연계되어 계엄군의 고문을 받은 여성들, 사태의 광기 속에서 과도한 폭력에 놓인 어용노조 지부장의 아내, 그들의 증언을 따라 지난 40여 년의 시간 이곳 저곳을 바쁘게 오간다. <1980 사북>은 다소 불친절하게 다가올 수 있는 구성 속에서 황인욱의 관점과 위치를 관철시킨다. 사태의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간 동안 '당사자'에서 빠져 있는 동원탄좌 당국과 그들을 지원한 국가로 질문의 방향을 돌리고, 그저 과거의 치부로 사건을 여기며 '잊히기'를 결심한 사북 주민들 사이에 벌어진 틈 사이에서 화해를 시도한다. 물론 그 화해의 결과는 영화에 담기지 않았다. 관객은 그저 황인욱의 내레이션을 따라 재설정된 질문을 목격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 지점에서 <1980 사북>의 구성은 단순히 잊힌 사건을 현재에 소환하는 것을 넘어, 여전히 미해결되고 제대로 설정되지 못한 책임 주체를 차근차근 재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