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기즘

Gloaming in Luomu (英題)
2025年09月20日に見ました。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에 대하여 <백탑지광>부터였을까. 언젠가부터 장률의 영화에서 자욱한 그리움의 정서를 엿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대상에 대한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한 인간이 홀로 견뎌내는 부재의 감각인 듯하다. 주인공은 어떤 빈자리를 응시하고 있고, 이로부터 파생되는 정서는 ‘돌아가고 싶음’보다 차라리 ‘결코 닿을 수 없음’에 가깝다. <백탑지광>에 수십 년간 연락을 끊고 지냈던 아버지에 대한 구원통의 부재의 경험이 있다면, <루오무의 황혼>에는 샤오왕에 대한 샤오바이의 잔류하는 감정의 찌꺼기가 있다. 그러니까 장률의 세계에서 부재의 감각은 사람이 떠난 자리, 전하지 못한 말과 기억, 관계의 단절이 남긴 공백을 영화적으로 담아내는 과정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루오무의 황혼>은 전직 무용수였던 샤오바이가 어메이산 근처의 한 숙소에 방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숙소의 주인 리우는 ‘슈슈’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데, 샤오바이는 꿈에서 본 적이 있다며 고양이의 이름을 정확하게 부른다. 게다가 이 숙소는 헤어진 연인 샤오왕이 생각을 정리하려고 3년간 머물렀던 숙소인데 샤오바이가 어떻게 그 숙소에 도착했는지는 알 수 없다. 리우의 말대로 샤오바이에게 진짜 신기神氣라도 있는 걸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영화가 인물에게 신적인 지위를 부여하고 그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영화가 현실세계에 꿈과 환상을 덧대고 샤오바이가 갖는 ‘부재의 감각’을 필연적인 이끌림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유의미한 해석일 것이다. ‘황혼’이라는 시간은 순간이나 풍경이라기보다, 샤오바이가 루오무에서 보낸 시공간 자체다. 낮과 밤, 시작과 끝, 생명과 죽음, 현실과 환상 등의 모호해진 경계에서 샤오왕의 부재를 되새기는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이 천국에 있다면 나는 가기 싫다. 내가 싫어하는 것이 지옥에 있다면 나는 가기 싫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바로 당신이다. 벗이여, 나는 그대를 따라가기 싫다. 머무르고 싶지도 않다.” - 그림자의 고별, 루 쉰 샤오바이가 샤오왕을 정말로 미워하고 있을까? 그녀가 루오무에서 보내는 시간은 ‘의도치 않게’ 샤오왕의 흔적을 따라가보는 여정이 된다. 30분이면 다 돌아 볼 수 있는 작은 동네를 그녀는 며칠을 돌아다니는데, 이때 부재하는 샤오왕의 목소리를 듣고, 존재하지도 않는 기차 소리와 말발굽 소리를 듣는다. 환청은 샤오왕에 대한 그리움이 투영된 기억과 환상이다. ‘잊었다고 하면, 다 기억하는 것‘이라는 리우의 말처럼 샤오바이는 아마 샤오왕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을 것이다. 영화 속 그녀의 모든 발걸음이 알게 모르게 샤오왕의 행적을 따르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녀는 급기야 카메라를 직시하며 샤오왕이 앞에 있는 듯 따라오지 말라며 소리치기도 한다. 이는 영화에서 관찰자 시점을 샤오왕에게 부여한 것이며, 그래서 신적인 지위가 부여되었다면 그것은 샤오바이보다 차라리 샤오왕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만일 샤오왕이 카메라를 대신할 수 있다면 그는 필연적으로 유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이같은 죽음의 정서, 부재와 상실이 야기한 트라우마는 영화에서 중요한 심리적 기제이다. 샤오바이는 샤오왕이 떠난 날 들었을지도 모를 기차 소리와 룸메이트였던 샤오리의 투신을 기억하고 있다. 리우는 ‘금융맨’이었던 전 애인이 자신을 강간하려 했던 기억이 있다. 해설사 시절 자신을 쫓아다니던 라오황에게 리우가 딱 한 번 잠자리를 허락한 날은 금융맨을 루오무에서 마주친 날이다. 샤오바이도 샤오리가 죽기 전에 했던 말과 행동을 따라해보며, 연못에 비친 자신을 응시해보기도 한다. 내내 무기력한 샤오바이가 꽃을 구경하는 리우를 자살 시도로 오해하고 필사적으로 막은 것 역시 트라우마에 기인한다. “아직 서해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어야 할까봅니다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 서해, 이성복 영화는 부재와 상실이 야기한 상처를 봉합하지 않은 채 끝이 난다. 샤오왕과 닮은 사람을 봤다는 소식에 샤오바이는 리우와 함께 망월사로 향하다가 돌연 숙소로 돌아가자고 한다. 샤오왕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망월사에서 그녀는 샤오왕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마주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가 있을지도 모를 공간을 남겨두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홍수에 휩쓸려간 연인교처럼 어쩌면 이들은 영영 재회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