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김민지

김민지

2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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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라이프

本 ・ 2016

平均 3.9

문학을 읽는 것은 작가와 독자 사이의 합의된 학대라는 평론을 읽은 적이 있다. 어떤 픽션을 읽고 난 후에 그 사람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가 중요한 과제이고 그만큼 어떤 독자들은 자신이 붕괴된 정도가 클 수록 카타르시스를 느낌과 동시에 좋은 작품이라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학의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Booktok이라 불리는 릴스에서 수많은 외국인들이 비행기에서, 방에서, 기차에서 이 책을 읽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바이럴되고 그걸 본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각하진 않겠지만- 눈물을 흘릴 기대감을 가지고 이 두꺼운 책을 읽기 시작할테다. 그리고 이 무지막지하게 두꺼운 책을 대부분 완독할 것이다. 눈물을 흘리게 할 부분은 후반부에 있고 사람들은 그 부분을 위해 딱히 슬프지 않은 초반부와 중반부를 견딘다. 독자들이 이런 호의호식을 즐기며 주드를 소비할 동안에도 이 세상에 살아남은 주드들은 매 순간 상처받는다. 하지만 독자들이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으로도 그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고통에 대한 장편이 연극으로 만들어지고 수많은 리액션 비디오로 재생산되어도 괜찮은 것이다. 독자들은 눈물을 그치고 다른 책을 집어들 것이고 연극은 누군가의 등용문이 될 것이며 작가는 돈을 벌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에 주드는 없다. 이 소설과 비슷한 내용인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이라는 책이 대만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얼마 후 작가는 자살했다. 작가는 팡쓰치였고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글을 쓰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했다. 독자들에게는 팡쓰치가 있다는 걸 기억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긴 채 죽었다. 너는 선택할 수 있어. 팡쓰치가 존재했다는 걸 모른 척할 수도 기억할 수도 있어. 그 소설은 눈물이 나기보다 역겨워서 속이 불편했다. 그래도 팡쓰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길 어떤 팡쓰치들은 위로 받길 그것도 아니라면 시간이 흘러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 하게 되길 그리하여 평안에 이르길 바라며 책장을 덮었다. 이런 류의 픽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이라는 자유를 등에 업고 너무 큰 상처를 남기곤 한다. 어쩌면 독자는 벌을 받는 걸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 마음껏 모른 척 했기 때문에 문학을 통해서는 직시할 수밖에 없으니까. 한 줄 글이 쉽게 읽히는 것도 부끄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