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인생이지만
그것도 인생이라고 말해주길”
전 세계 독자를 사로잡은 한 남자의 삶
★ 2015 맨부커상 ·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작 ★ 커커스 문학상 수상작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월스트리트저널.NPR.가디언.이코노미스트
외 25개 언론사 선정 ‘올해의 책’
천 페이지를 압도하는 폭풍 같은 서사
2015년 맨부커상 최고의 화제작
이 소설을 소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너무나 흔한 관용구대로 “결코 손에서 놓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독자를 두렵고 불편하게 하면서도 사로잡는 소설을 묘사할 더 적절한 표현은 없다. _커커스 문학상 선정단
영미권을 대표하는 문학상 맨부커상과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에 나란히 오르고,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가디언> <월스트리트저널>을 비롯한 25개 언론사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은 화제작 《리틀 라이프》가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영국과 미국의 대표 문학상 후보에 선정되기 전부터 독자들 사이에서는 “밤을 새워 읽었다” “천 페이지가 더 길었으면 하는 소설은 처음이다” “눈물이 나 몇 번을 읽다 멈춰야 했다” “충격적이고 가슴 아프다” “읽는 내내 매일 밤 이 소설에 관한 꿈을 꿨다” 같은 리뷰와 함께 이미 입소문이 퍼진 작품으로, 맨부커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후 이례적으로 홈페이지에 응원 댓글이 달리며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어린 시절 끔찍한 학대와 폭력의 트라우마를 간직한 비밀스러운 인물 주드의 이야기를 담은 《리틀 라이프》는 또한 그 소재의 선정성과 가차 없음으로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품이 되기도 했다.
현대 소설로는 드물게 요약본과 해설서가 등장하고, 서평 사이트 ‘굿리즈’에 4만 명이 넘는 독자들이 별점 4점 이상의 평점을 남기고 있으며, 영화 <캐롤>의 배우 루니 마라가 추천 도서로 꼽는 등, 출간된 지 일 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독자들의 가슴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감히, 생의 어둠을 마주한 소설”
전 세계 독자를 사로잡은 한 남자의 삶
“쓰레기봉지 안에 달걀껍질과 비실해진 양상추, 상한 스파게티, 그리고 네가 있었지.” _본문 중에서
대학 동창인 네 친구 윌럼, 맬컴, 제이비, 주드는 각자의 꿈을 안고 뉴욕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윌럼은 배우, 맬컴은 건축가, 제이비는 화가이고, 주인공인 주드는 고통으로 가득 찬 비밀스러운 과거가 있는 변호사다. 주드는 잘생긴 외모와 비상한 머리에도 불구하고 대학 시절부터 비밀투성이에 자존감이 낮았지만 친구들은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며 사랑한다. 친구들은 주드가 왜 다리를 저는지, 팔과 등에 상처는 왜 끊이지 않으며, 어려서는 어떻게 살았고 가족은 있는지 등 그에 대해 모르는 게 많지만 주드가 불편해하기 때문에 묻지 않는다.
사실 주드는 태어나자마자 쓰기레봉지에 담겨 버려졌고, 수도원에서 자라는 동안 끔찍한 학대를 당했다. 아홉 살 때 한 수사와 함께 수도원을 도망쳐 나오지만, 그를 기다리는 바깥세상은 수도원보다 더욱 끔찍하기만 했다. 그러다 십대 후반 어느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대학에 들어간 뒤에는 “마치 인생이 그에게 용서해달라고 빌고 있는” 것처럼 끔찍했던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삶이 펼쳐졌다.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믿을 수 없는 행복을 마주한 주드. 하지만 한 번도 자신의 것이라 여겨본 적 없는 행복이 커져갈수록 과거의 기억 또한 점점 또렷해지며 현재의 그를 비난하고 조롱한다. 과거의 불행과 현재의 행복 사이의 낙차가 클수록 그는 자신의 생이 견디기 어렵다. 생의 지옥은 어디까지이며 생의 행복은 어디까지일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부당함을 넘어서려 했던 남자, 살아내기 위해 스스로를 파괴해야 했던 한 남자의 삶을 그린 이 작품은, 한 가닥 희망의 가능성마저 거부하며 생의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예측을 거부하며 세상을 도발하는 작가
한야 야나기하라
“네 남자의 이야기 속에 삶의 고통과 공포와 사랑 모두를 담아내고 싶었다.” _한야 야나기하라
비평가들이 “잔인한 걸작”이라고 찬사를 보내는 《리틀 라이프》는 마지막까지 예측을 거부하며 거듭 충격을 안겨주지만, 쉽게 예측할 수 없기로는 작가 한야 야나기하라 또한 마찬가지다. 맨부커상 최종후보까지 오른 작가로는 드물게 야나기하라는 전업작가가 아니며, 단순히 생계를 위해 부업을 유지하는 작가도 아니다. 야나기하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급 여행 잡지 《콘데나스트 트래블러》에서 일했고, 지금은 《T: 뉴욕타임스 스타일 매거진》의 부편집장으로 있다. 한 인간의 생의 어둠을 끝 간 데까지 파고든 작품으로 화제를 몰고 온 작가치고는 화려한 이력이다. 작가 약력에는 자신을 “뉴요커”로만 소개해,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 작가라는 복잡한 정체성들을 모두 걷어낸다.
“본업을 갖는 것은 창작할 시간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더 창의적인 예술가가 될 자유를 준다”라고 말하는 야나기하라는 자신의 두 번째 소설 《리틀 라이프》 역시 잡지사를 다니는 동안 주중에는 세 시간씩, 주말에는 여섯 시간씩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작품을 썼고, 그 결과 18개월 만에 대작을 완성했다. 천 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보더라도 놀라운 창작력이지만, 그 천 페이지가 무색하도록 엄청난 흡인력으로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 또한 대단한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스스로 “주로 밤에 집필을 하면서 이 어두운 세계에 파묻힐수록 다음 날 출근을 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고 말할 만큼 묵직한 울림을 주는 이 소설을 통해 야나기하라는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 작가에게 흔히 기대할 법한 소재들과는 어떠한 접점도 없는 독창적인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냈다.
“고통스럽거나, 혹은 기쁘거나”
눈을 뗄 수 없는 한 남자의 얼굴
《리틀 라이프》의 표지에 쓰인 인물 사진은 유명한 미국의 사진작가 ‘피터 후자’의 작품으로, 야나기하라는 처음부터 이 사진을 표지 이미지로 염두에 두었다고 전해진다. 피터 후자는 소외된 사람들의 고통과 고독,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특유의 섬세하고 애잔한 시선으로 담아낸 흑백 초상 사진들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사진 속의 가차 없고 무력한 어떤 것이 내 소설 속 인물인 주드와 윌럼을 떠올리게 했다”는 야나기하라의 말처럼 힘겹게 울음을 참는 듯한 남자의 얼굴은 소설 속 주인공의 인생과 맞닿아 있어, 이 사진을 염두에 둔 작가의 의도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사진의 제목 때문에(역설적이게도 작품의 제목은 <절정에 달한 남자(Orgasmic Man)>다) 출판사 측에서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결국 “이 남자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인지 기뻐하는 것인지”의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기자는 야나기하라의 말에 동의했고, 그 결과 한국을 비롯한 스페인, 네덜란드, 스웨덴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저 ‘우는 남자’의 얼굴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옥수수
5.0
천사같은 글솜씨로 악마같은 글을 썼어
JackQKwag
4.5
행복은 추상적이고, 불행은 구체적이다. . 표지가 힙해보여서 집어들었고 맨부커상 최종 후보였다는 것을 보고 주저 없이 샀다. 맨부커상을 받은 작품들은 대부분 엄청난 시련과 고난을 주인공에게 줬고, 베베 꼬인 심성을 가진 나는 그냥 망설임 없이 읽었다. 그런데 웬걸, 생각보다 충격이 더 크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말그대로 페이지를 찢어 갈기는 고통이다. 각 페이지마다 커터칼이 있어 넘길 때마다 베이는 느낌이랄까. . 심성이 베베 꼬인 것도 모잘라 나는 속도 좁다. 아직 30이 안 됐지만 죽을 때까지 다시는 절대로 마주치지도, 엮이지도, 나를 언급하지도 않았으면 하는 사람이 몇 있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고 했다는데 그말을 조금 비틀어 "그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고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 것이다.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잘 되면 세상에 존재하는 예술작품의 절반 이상이 없어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런 걸작도 볼 수 없었을거다. . 이렇듯 누구나 마음 속에는 카펫에 무심코 흘린 와인처럼 지워지지 않는 사람들이, 상처들이 있다. 평생 계속됐으면 하는 순간들은 언제나 짧고, 제발 끝났으면 하는 순간들은 절대 끝나지 않고 머리 속에 남아 그 시절 그 공간으로 나를 계속 소환한다. . 행복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대신 불행이 뭔지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잘 안다. 행복은 추상적이고 불행은 구체적이기에 주변에서 쉽게 불행의 예시를 찾을 수 있다. 불행의 이유는 가지각색으로 다른 것 같지만, 고통이라는 공통적인 조미료가 들어간다. 그래서 불행은 항상 쓴맛이다. . 쥬드는 무엇인지도 모르는 행복을 위해 구체적 불행에 대항했지만 쉽지 않았다.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의 은밀한 고통을 즐기는 편이지만 이번만큼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튀긴 여름
5.0
주드가 울어도 눈물 나고 주드가 웃어도 눈물 나고 주드가 암 생각 안 해도 눈물 나고 주드가 걸어도 눈물 나고 주드가 뛰어도 눈물 나고 주드가 잠을 자도 눈물 나고 주드가 누워 있어도 눈물 나고 주드가 쇼파에 앉아 있어도 눈물 나고 주드가 밥 먹어도 눈물 나고 주드가 물 마셔도 눈물 나고 그냥 주드가 숨만 쉬어도 눈물 남 그냥 매일을 지하철에서 콧물 흘리다가 휴지 꺼내고 새벽에 누워서 읽다가 휴지 한 통 다 뽑아 쓰고 울음 참다가도 갑자기 윌럼이 주디, 하고 다정한 한 마디만 해도 갑자기 하..XX..ㅠㅠ~~하면서 휴지 한 통 다 뽑아 씀.. 그냥 리틀 라이프 2권 읽는 내내 5호선 오열녀, 길거리 콧물녀, 상태로 살다가 회식 갔는데 인상이 왜이렇게 달라졌냐 함. 그냥 새벽 내내 울다가 출근한 것 뿐인데 다들 내가 쌍수한줄 앎.. 말도 못 하고 그냥 어..? 아닌데..?이상하다..?얼굴 똑같은데..? 와 정말 이상한 일이네요.....이질알하는 와중에도 머릿 속으론 주디와 윌럼 생각 중이었음 치료도 못 할 리틀라이프병 걸려서 하루하루 살기가 힘듦 걍.. 리틀 라이프 절대 보지 마세요..
adela
4.0
끔찍한 이야기를 탐욕스럽게 읽어내리고 있다는 죄책감에 몇번이나 책을 덮고 주인공이 더 빛날 수 있었을 가설을 엄청나게 생각했다. 초기생애 발달과업은 기본 신뢰를 성취하는것이라는데 그게 불가능했던 주인공이 자신과 타인을 끊임없이 깍아내리는 이야기들에 중후반부터는 아주 질려버렸던것 같다. 그래서 비극을 끊임없이 맞이하는 주인공보다 주인공의 주변인물에 대해 더 생각해본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에 달리 할수있는게 없는 무력함, 그럼에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어느 누가 말한 인간이 신없이 종교적일수있는 방법에 대해서
Solo
3.5
윌럼이 주드를 사랑하는 것처럼,
김민지
4.0
문학을 읽는 것은 작가와 독자 사이의 합의된 학대라는 평론을 읽은 적이 있다. 어떤 픽션을 읽고 난 후에 그 사람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가 중요한 과제이고 그만큼 어떤 독자들은 자신이 붕괴된 정도가 클 수록 카타르시스를 느낌과 동시에 좋은 작품이라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학의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Booktok이라 불리는 릴스에서 수많은 외국인들이 비행기에서, 방에서, 기차에서 이 책을 읽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바이럴되고 그걸 본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각하진 않겠지만- 눈물을 흘릴 기대감을 가지고 이 두꺼운 책을 읽기 시작할테다. 그리고 이 무지막지하게 두꺼운 책을 대부분 완독할 것이다. 눈물을 흘리게 할 부분은 후반부에 있고 사람들은 그 부분을 위해 딱히 슬프지 않은 초반부와 중반부를 견딘다. 독자들이 이런 호의호식을 즐기며 주드를 소비할 동안에도 이 세상에 살아남은 주드들은 매 순간 상처받는다. 하지만 독자들이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으로도 그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고통에 대한 장편이 연극으로 만들어지고 수많은 리액션 비디오로 재생산되어도 괜찮은 것이다. 독자들은 눈물을 그치고 다른 책을 집어들 것이고 연극은 누군가의 등용문이 될 것이며 작가는 돈을 벌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에 주드는 없다. 이 소설과 비슷한 내용인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이라는 책이 대만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얼마 후 작가는 자살했다. 작가는 팡쓰치였고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글을 쓰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했다. 독자들에게는 팡쓰치가 있다는 걸 기억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긴 채 죽었다. 너는 선택할 수 있어. 팡쓰치가 존재했다는 걸 모른 척할 수도 기억할 수도 있어. 그 소설은 눈물이 나기보다 역겨워서 속이 불편했다. 그래도 팡쓰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길 어떤 팡쓰치들은 위로 받길 그것도 아니라면 시간이 흘러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 하게 되길 그리하여 평안에 이르길 바라며 책장을 덮었다. 이런 류의 픽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이라는 자유를 등에 업고 너무 큰 상처를 남기곤 한다. 어쩌면 독자는 벌을 받는 걸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 마음껏 모른 척 했기 때문에 문학을 통해서는 직시할 수밖에 없으니까. 한 줄 글이 쉽게 읽히는 것도 부끄러운 것이다.
Rina
4.5
어쩌면 오래전에 죽었다고 생각한 저 철쭉 덤불에 갑자기 피어난 꽃일지도,저 구름,저 파도,저 비,저 안개일지도 몰라. 주드가 죽었다거나 어떻게 죽었다는 것만이 아니라,무엇을 믿으며 죽었는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져. 그래서 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게 친절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모든 것들에서 주드를 봐.
Alice Kim
5.0
감성은 풍부하지만 눈물은 잘 흘린적없었는데 이 책이 내 눈물을 다 짜냈다. 이런 책은 처음이고 마지막 2권의 마지막 100페이지는 그냥 칼로 심장을 후 벼파는거같다.
さらに多くのコメントを見るには、ログインして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