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윤준희

윤준희

2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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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의 성정치

本 ・ 2018

平均 3.8

인식론으로서, 하나의 행동주의로서 비거니즘의 당위성과 정치적 올바름을 깨닫게 한 나의 첫 번째 게슈탈트적 전환은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이다. 그럼에도 캐롤 제이 애덤스의 <육식의 성정치>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와 육식주의(육식을 둘러싼 우리의 공고한 종차별적/성차별적 인식과 실천들)의 공모 관계를 세심하게 폭로해, 여성 해방과 동물 해방이 함께 갈 수 있다는/함께 가야 한다는 도덕적 확신을 주는 또 다른 차원의 지적 충격을 준다. 물론, 캐롤 제이 애덤스가 시도하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상세한 비거니즘 비평이 드러내는 바와 같이, 이와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은 어디선가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텍스트(고기 이야기)에 맞서다 제우스에게 잡아먹힌 메티스, 채식주의 에덴 동산을 꿈꾸다 집단에서 끊임없이 쫓겨나온 채식주의자 괴물들의 유구한 지적/문화적/역사적 전통 덕일 테다. 더 나아가 캐롤 제이 애덤스는 책의 후반부 전쟁의 성 정치학에 대한 자세한 언급 속에서 남성 지배, 동물 도살, 인간 학살의 분명한 연관성까지도 지적하며 명백한 사적 행위인 채식주의가 전쟁을 공적으로 거부하는 영역에 겹쳐있다는 흥미로운 주장까지로 나아간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책 제목을 빌리자면, '육식과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쌀을 먹는 것이 여성을 믿는 것." "'섹시하다'와 '맛있다'는 둘 다 불평등하다." "우리에게는 서로 평행선을 그리는 사안들, 곧 여성과 동물에 공통된 억압의 흔적을 추적하고 은유의 문제와 부재 지시 대상의 궤적을 뒤쫓을 수 있는 이론이 필요하다. 나는 대상화, 절단, 소비의 주기를 제안한다. 이 주기가 우리 문화에서 동물 도살과 여성 성폭력을 서로 결합한다고 주장할 생각이다. 대상화는 억압자가 또 다른 어떤 존재를 하나의 대상으로 보게 만든다. 억압자는 이 존재를 대상으로 취급하면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를테면 '안 돼'라고 말할 수 있는 여성의 자유를 부정하는 성폭행과 살아 숨쉬는 존재인 동물을 죽은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도살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과정은 절단fragmentation, 또는 잔인한 해체dismemberment, 마지막으로 소비로 이어진다. 앞서 예를 든 대로 남성은 글자 그대로 여성을 먹기도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여성에 관한 가상적 이미지들을 소비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소비란 억압의 이행이며, 자유 의지와 산산이 조각난 정체성이 완전히 소비돼 사라진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주체는 우선 은유를 통해 판단되거나 대상화된다. 그리고 절단을 통해 대상화된 대상은 존재론적 의미에서 분리된다. 마지막으로 소비를 통해 주체는 오직 소비가 표상하는 것에 따라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이 지시 대상의 소비는 그것 자체로 중요한 목적이 되며, 그 대상을 표상하는 것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곧 절멸시키는 반복 과정이다." "우리는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수준에서 동물 억압을 제도화하는 문화에서 살고 있다. 하나는 도살장, 정육점, 동물원, 실험실, 서커스단처럼 공식적인 구조의 수준이고, 다른 하나는 언어의 수준이다. '시체를 먹다corpse eating'라고 하지 않고 '고기를 먹다meat eating'라고 하는 표현은 우리의 언어가 육식에 관한 지배 문화의 승인을 후대에 전수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한 예다. 동물은 부재 지시 대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고기를 먹으면서 '지금 나는 고기하고 상호작용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육식을 동물이 아니라 음식을 접촉하는 일로 생각한다." "육식을 통한 자기만족이 육식을 방어해주는 이유의 하나겠지만, 또 다른 그럴 듯한 이유는 육식의 언어가 육식의 문제를 표면화할 이유가 없다고 보면서 이의 제기를 가로막아 고기에 관한 논의를 흡수해버리기 때문이다. 언어는 우리를 육식의 실체에서 떼어놓고, 육식의 상징적 의미, 다시 말해 원래 가부장제적이고 남성 지향적인 상징적 의미를 강화한다. 고기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있는 것, 존재하는 것, 동물과 언어에 가부장제적 통제로서 하나의 상징이 된다."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은 여성 억압과 동물 억압의 교차 지점으로 우리를 안내하지만, 바로 방향을 바꿔 동물 억압 문제가 아닌 여성의 문제만을 제기하며, 여성 문제에서 부재 지시 대상의 기능과 가부장제 구조를 다룬다. 고기와 도살을 여성 억압의 은유로 사용할 때, 사실 우리는 우르술라 햄드레스(돼지)의 비명에는 침묵하면서 우리 자신이 내지르는 비명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남성 지배 문화에서 여성이 겪는 가슴 아픈 기억을 들춰내려고 동물 억압이라는 은유에 의지하는 대부분의 페미니스트 이론에서 사실상 부재하는 요소는 이런 은유의 이면에 존재하는 실체다.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동물 억압과 여성 억압이 문화적으로 서로 닮아 있고 상호 의존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억압을 묘사하는 한편, 이런 억압에 저항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