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x Kong

기술공화국 선언
平均 3.4
1984에서 조지 오웰이 그려낸 미래는, 세계가 세 개의 초국가적 블록으로 재편된 사회다. 국가는 더 이상 국민국가의 형태를 띠지 않고, 거대한 세력 단위로 통합된다. 이들 사이의 끊임없는 견제와 균형 속에서 전쟁은 끝나지 않으며, 모든 개인은 감시당한다. 언론은 완벽히 통제되고, 사적인 의사 교류나 다른 의견은 존재할 수 없다. ‘빅 브라더’라는 상징적 권력에 의해 사회 전체가 관리·통제되는 세계다. 이 책의 저자이자 팔란티어의 공동 창업자인 알렉스 C. 카프는, AI의 급격한 발전이 머지않아 초강대국 간의 정보 전쟁을 현실로 만들 것이라 본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미국 내부에 흩어져 있는 기술·자본·정보·정치 권력을 하나의 방향으로 결집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로운 시장과 자율적인 기술 발전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으며, 국가 차원의 명확한 목표 설정과 동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엔지니어와 자본, 그리고 국가 권력이 다시 한 번 ‘미국’이라는 이름 아래 모여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주문한다. 불편한 감정이 자연스레 따라온다. 우리는 이미 민주주의가 이 땅에서 언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최고의 정치 체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중국에서 6년간 살며 중국인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과 정치와 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해본적이 있디. 아니, 내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중국내에서 중국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었는데, 오히려 중국인 친구들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었다. 외부의 시선으로 보면 중국은 강압적인 독재 국가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민주주의가 점점 유효기간을 드러내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생활 방식과 국가의 방향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금, 혼란 없이 일관된 방향을 유지하며 속도감 있게 국정을 운영하기에 가장 유리한 체제를 중국이 실험하고 있다고 믿고 있고, 그 실험의 선두에 서 있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1984>에서 묘사된 빅 브라더의 세계는 과연 우리가 도달해서는 안 될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일까. 아니면, 기술과 권력이 결합된 미래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몸부림일까. <기술공화국 선언>은 노골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현재 중국이 구축하고 있는 정치·행정 체계를 부러워하고 있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그것이 저자 스스로가 생각하는 ‘현실적인 방향’임을 숨기지 않는다. 세계사를 돌아보면 늘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강대국은 주변 국가를 정복하고, 때로는 노예로 삼고, 민족성과 문화를 말살하며 잔혹한 폭력을 행사해왔다. 그 과정은 분명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질문이 따라붙는다. 내가 이기지 못하면, 결국 당할 수밖에 없는 생존의 게임에서 과연 옳고 그름이 얼마나 중요한가. 강해지는 것이 곧 정의가 되어버리는 세계에서, 우리가 끝까지 붙잡아야 할 이상이란 무엇일까. 차라리 저자처럼, 아니 어쩌면 중국 정부처럼,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서슴없이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맞는 선택일까. 민주주의의 느린 합의와 끝없는 갈등을 감내하는 대신, 효율과 속도를 택하는 것이 기술 시대의 합리적 해답일까.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마음은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