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호의 씨네만세

인간 불평등 기원론
平均 3.7
루소의 상상력의 원천은 자유가 아니라 무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문과 예술이 인간의 덕성을 순화시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타락시켰다는 그의 주장에서, 그리고 자연상태에 행복이 있다며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그의 주장에서 나는 그의 상상력의 원천이 무지에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당대 계몽사상의 대표자였던 볼테르도 루소의 사상을 무지를 찬양하는 거지철학이라 비난했다니 루소의 글에서 무지를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자연상태의 인간이 어떠한 이유로든 사유를 시작하게 되고 평등이란 개념을 깨달을 수 있는 수준이 되고난 이후 불평등이라는 개념도 태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유이전에는 인간은 그저 수많은 동물들과 다르지 않은 존재였을테고 그때의 인간은 지금의 인간이 느끼는 소외와 불평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사유를 하지 않는다면 소외되지도 불평등하지도 않을지언정 진정으로 인간다울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평등에 시달리는 욕심많은 존재로서 끊임없이 고통받아야 하는 운명이지만 가장 인간다운 덕목, 곧 예술이 그를 구원하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럼에 나는 루소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보다 깊이있게 생각을 해 보면 루소는 틀렸을지언정 무지한 것은 결코 아니었던 것 같다. 실증적인 자연상태가 아닌 가설적이고 조건적으로 추론된 자연상태를 가정하고 그 시점부터 인간이 불평등해지게 되는 과정을 추론한 그의 태도는 결코 무지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부자와 빈자가 나뉨으로써 강자와 약자가 나뉘게 되고 다시 강자가 약자를 영구적으로 착취하게 된다는 것, 강자가 약자를 영구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약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부당하게 착취당한다는 것을 알 수 없도록 교묘한 제도와 법칙을 만든다는 것, 이는 21세기에도 통용되고 있는 진실이 아니던가. 분명히 자연은 모든 인간이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양의 재화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은 기본적인 음식과 약품이 없어 죽어가야 하고 그럼에도 일부의 부자들은 끊임없이 사치와 향락을 누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루소의 말처럼 명백하게 자연의 법칙에 위배된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부가 부를 창출하는 것을, 승자가 재화를 독식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고 자본주의의 선택받은 자들은 일말의 죄의식도 없이 자신의 재화를 사치와 향락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단초를 제시했다는 루소의 이 논문이 볼테르의 말처럼 어리석지만은 않다는 것을 나는 확신할 수 있다. 루소가 이 글을 쓰기 전에도 쓰고 난 이후에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인간들은 도처에서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다. 모든 인간이 완전히 평등할 수는 없겠지만 신체적 불평등과 균형을 이루지 못한 사회적 불평등이 자연법에 어긋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루소의 이 글에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의 이 논술이 지향하고 있는 바에는 완전히 동의할 수 없고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글에 내포된 통찰과 진실함에는 완전히 동의하고 동의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 부분에선 그가 옳기 때문이다. 시대의 통념을 뒤집고 당당히 자신의 소견을 펼친, 루소, 그는 멋진 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