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고봉만
제네바 공화국에 바치는 글
머리말
인간 사이의 불평등의 기원과 근거들에 대한 논문
- 제1부
- 제2부
해제 -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나 도처에서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다|고봉만
1. 루소의 삶
2. 통념에 대한 도전, 《학문예술론》과 《인간 불평등 기원론》
3. 인류의 역사에 대한 가설적 추론
4. 원초적 자연 상태의 인간
5. 인간 불평등의 원시적 기원들
6. 불행한 문명을 치유할 방법은?
주
더 읽어야 할 자료들
옮긴이에 대하여
인간 불평등 기원론
장 자크 루소 · 社会科学
230p

평등하게 태어난 인간은 부와 학벌, 권력 따위에 의해 평가받는다. 인간은 과연 평등한 것일까? 루소는 인간의 평등과 불평등의 문제를 시초에서부터 검토한다. 자연상태에서 평등했던 인간이 어떻게 불평등하게 되었으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는지를 성찰한다. 또한 인간 불평등이 인간에서 불행을 가져왔음을 주장하고 그것이 소유와 권력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의 불행에 대한 200년 전 루소의 선구자적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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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目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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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은 평등한가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났다. 그러나 사회라는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부와 학벌, 권력 따위가 개인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과연 평등한 것인가? 프랑스 혁명의 아버지라 불리는 루소는 이미 200여 년 전에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평등과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시초에서부터 재검토한다. 그는 원시적 자연 상태의 인간의 삶을 가장 이상적인 삶으로 제시한다. 이는 당시 학문과 예술을 바탕으로 진보적 역사관을 추종했던 계몽주의자들의 사상에 정면으로 대립하는 것이었다. 루소는 인간의 역사를 진보가 아니라 타락과 퇴보의 과정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을 토대로 인류의 역사를 추론하고 원시적 자연 상태에서 평등하고 행복한 삶을 누렸던 인간이 어떻게 해서 불평등하게 되었는지를 가족, 사회, 국가, 계급의 형성 과정을 통해 면밀히 분석한다. 아울러 불평등의 근원이 무엇이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성찰한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불평등이라는 문제에 대한 루소의 분석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보여준다. 아울러 21세기라는 이 시점에서 프랑스 혁명에 영감을 주었던 루소의 사상이 우리에게는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는지 생각하게 한다.
2. 불평등을 고발한다
루소는 《학문예술론Discours sur les sciences et les arts》에서 학문과 예술의 발달이 도덕의 타락을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역사야말로 문명의 진보에 따른 도덕의 퇴화로 얼룩진 불행과 악덕의 창궐의 대서사시’라고 말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좀더 전진한 논문이 바로 《인간 불평등 기원론》이다. 이 책은 인간이 타락하는 상황과 과정을 근원적으로 캐내고 있다. 루소는 때묻지 않은 원시 사회에 눈을 돌려 원시 사회의 조건과 원시인의 본성에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인간이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은 인간의 욕망이 불평등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본래 평등했던 인간이 어떻게 불평등의 길로 들어섰는가를 조직적으로 탐구한다. 그는 인간이 불평등하게 된 것은 공동체 즉 사회의 형성과 거기서 비롯되는 소유와 권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루소의 이러한 불평등한 상황에 대한 고발은 직접적인 문명 비판으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불평등이 극에 달한 근대 문명의 상황, 즉 ‘어린애가 노인에게 명령하고 바보가 현명한 사람을 이끌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마저 갖추지 못하는 판국인데 한줌의 사람들에게서는 사치품이 넘쳐”나는 상황을 고발하면서 글을 맺고 있다.
3. 통념에 대한 도전 《인간 불평등 기원론》
이 논문은 ”인간 사이의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허용되는가?”라는 문제로 디종 아카데미가 기획한 현상 논문에 응모하는 형식으로 씌어졌다. 모든 관례를 무시하고 기존의 편견에 정면으로 도전한 이 논문은 인간의 문제를 시초에서부터 재검토하고자 하는 루소의 야망과 열정이 대담하고 순수하게 표현된 저술이다. 그러나 디종 아카데미는 이 저술을 채택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루소는 이 저술에 ‘제네바 공화국에 바치는 글’이라는 길고 장중한 헌사를 덧붙여 1755년에 출판했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에서는 문명 이전에 인간 자체가 지녔던 근원적인 모습들을 역사적으로 추론해냄으로써 강자의 법칙이 적용될 수 없는 자연 상태의 인간, 자유로운 존재이자 불평등의 악에서 완전히 해방된 인간의 모습을 서술한다. 2부에서는 인간의 행복이 어떻게 상실하게 되었는지, 인간 사이의 불평등의 양상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다룬다.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나 도처에서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다’라고 요약할 수 있는 이 책에서 우리는 이 불행한 문명을 살아내고 있는 인간의 불행에 대한 루소의 선구자적 진단을 살펴볼 수 있다.



Jeonghee Lee
3.5
루소(1754) vs. 스미스(1776)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뭔가을 가지려 할 때마다 우리는 가진 재산에 관계없이 가난해진다." 혹은 "아무리 지위가 낮고 가난 한 노동자라 해도 근면하게 일하고 절약을 하기만 하면, 과거의 어떤 야만인이 얻을 수 있었던 것보다 많은 생활필수품을 손에 넣고 편리한 생활을 즐길 수 있다." - 우리는 편리하게 가난함 속에 지내고 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3.5
루소의 상상력의 원천은 자유가 아니라 무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문과 예술이 인간의 덕성을 순화시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타락시켰다는 그의 주장에서, 그리고 자연상태에 행복이 있다며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그의 주장에서 나는 그의 상상력의 원천이 무지에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당대 계몽사상의 대표자였던 볼테르도 루소의 사상을 무지를 찬양하는 거지철학이라 비난했다니 루소의 글에서 무지를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자연상태의 인간이 어떠한 이유로든 사유를 시작하게 되고 평등이란 개념을 깨달을 수 있는 수준이 되고난 이후 불평등이라는 개념도 태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유이전에는 인간은 그저 수많은 동물들과 다르지 않은 존재였을테고 그때의 인간은 지금의 인간이 느끼는 소외와 불평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사유를 하지 않는다면 소외되지도 불평등하지도 않을지언정 진정으로 인간다울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평등에 시달리는 욕심많은 존재로서 끊임없이 고통받아야 하는 운명이지만 가장 인간다운 덕목, 곧 예술이 그를 구원하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럼에 나는 루소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보다 깊이있게 생각을 해 보면 루소는 틀렸을지언정 무지한 것은 결코 아니었던 것 같다. 실증적인 자연상태가 아닌 가설적이고 조건적으로 추론된 자연상태를 가정하고 그 시점부터 인간이 불평등해지게 되는 과정을 추론한 그의 태도는 결코 무지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부자와 빈자가 나뉨으로써 강자와 약자가 나뉘게 되고 다시 강자가 약자를 영구적으로 착취하게 된다는 것, 강자가 약자를 영구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약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부당하게 착취당한다는 것을 알 수 없도록 교묘한 제도와 법칙을 만든다는 것, 이는 21세기에도 통용되고 있는 진실이 아니던가. 분명히 자연은 모든 인간이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양의 재화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은 기본적인 음식과 약품이 없어 죽어가야 하고 그럼에도 일부의 부자들은 끊임없이 사치와 향락을 누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루소의 말처럼 명백하게 자연의 법칙에 위배된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부가 부를 창출하는 것을, 승자가 재화를 독식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고 자본주의의 선택받은 자들은 일말의 죄의식도 없이 자신의 재화를 사치와 향락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단초를 제시했다는 루소의 이 논문이 볼테르의 말처럼 어리석지만은 않다는 것을 나는 확신할 수 있다. 루소가 이 글을 쓰기 전에도 쓰고 난 이후에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인간들은 도처에서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다. 모든 인간이 완전히 평등할 수는 없겠지만 신체적 불평등과 균형을 이루지 못한 사회적 불평등이 자연법에 어긋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루소의 이 글에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의 이 논술이 지향하고 있는 바에는 완전히 동의할 수 없고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글에 내포된 통찰과 진실함에는 완전히 동의하고 동의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 부분에선 그가 옳기 때문이다. 시대의 통념을 뒤집고 당당히 자신의 소견을 펼친, 루소, 그는 멋진 남자다.
김현승
3.5
'역사는 진보한다.' 정말? / 개인의 행복도를 기준으로 본다면 인간은 끊임없이 퇴보하고 있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그 주장의 중심에는 자연성이 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본인의 안전'과 '타인에 대한 연민'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엤지 않다. 소유와 계급이 발생하면서 인간은 타인에게 얽매이게 되고, 복종과 정치체제가 성립되면서 얽매임은 심화된다. 인간은 자연성을 잃은 뒤 한없이 추락한다. / 책의 아쉬운 점은 마땅한 해결책이 전혀 제시되어있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크다. 심지어 '한 번 순수성(자연성)을 잃으면 다시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단언하며 종말을 예언한다. / 나름 18세기의 빅 히스토리물이다. 사피엔스에도 이 책의 주제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농업 혁명이 일어나고 인간은 파격적인 생산량을 얻었지만, 모순적이게도 노동시간은 훨씬 길어졌다.' / <기억에 남는 문장> 1. 자연의 인간은 선악의 개념을 초월한 존재 2. 결국 국가라는 제도가 생기면서 불평등은 매우 견고한 모습을 갖추어서 더 이상 누구도 거역하거나 도전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 3. 인류의 모든 진보가 인간을 끊임없이 원시 상태에서 멀어지게 하기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축적할수록 모든 지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획득하는 수단이 상실된다는 점이다. 4. 널리 실시해보니 결과가 좋았다는 것 이외에 다른 근거는 없다. 5. 우리가 무엇을 알고자 하는 것은 그것을 즐기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욕망도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 자가 무엇 때문에 애써 이치를 따지려고 하겠는가? 6. 죽음과 그 공포에 대한 지식이란 인간이 동물적인 상태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얻게 되는 것들 중 하나다. -> 공포의 대상을 모르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상태인가 7. 모든 형용사는 추상적인 단어이며 추상화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자연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작용이기 때문이다. 8. 모든 일반적인 관념은 순전히 지적인 것이다. 거기에 조금이라도 상상이 섞이면, 그 관념은 곧 개별적인 것이 된다. 9. 인간이 악을 행했을 때 느끼는 혐오감의 원인은 교묘한 논거 속보다 오히려 자연의 감정 속에서 찾아야 한다. 10. 사랑이 육체적인 것에 한정되어 감정을 자극하거나 어려움을 더하게 하는 사랑의 선택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행복한 사람들은 격렬한 성욕을 빈번하게 또는 강하게 느끼지 않는다. 11. 사람들은 편리함을 누려도 행복하지 않은 반면에 그것을 잃으면 몹시 불행해지게 되었다. 12. 비천하고 황폐해진 인류는 이미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었고 불행하게도 스스로 얻은 것을 포기할 수도 없다. 13. 누구나 자신의 자유를 확보할 심산으로 자신의 쇠사슬을 향해 달려갔다. 14. 스토아 학파의 아타락시아도 미개인의 다른 모든 것에 대한 깊은 무관심에는 미치지 못한다. 15. 자신의 노예 상태에 자부심을 느끼는 그는 그 노예 상태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경멸감을 가지고 얘기한다. 16. 사회인은 언제나 자기 밖에 존재하며 타인의 의견 속에서만 살아간다. 자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타인의 판단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다. 17. 대다수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살아가든 데 꼭 필요핮 최소한의 것마저 갖추지 못하는 판국인데 한줌의 사람들에게서는 사치품이 넘쳐난다는 것은 명백히 자연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 군대에서 본 책(076/100)
sonatine
4.5
“인간은 본래 누구나 평등하게 태거났으나 역사의 어느 순간부터 불평등해졌다”
아가쓰
3.0
악의 근원은 불평등인가? 예술은 사치에서, 학문은 무위에서 생겨나는가? .. 이러한 질문(의심)들이 떠오르지만 이에 반박할 만한 근거는 쉽게 대지 못하겠다. 그치만 타인의 견해를 따르고 자신의 존재를 타인에게서 인정받으려 함으로써 기만적이고 경박한 겉치레를 가지게 되었다는 건 너무 너무 너무 맞는 말이야..~ 평화로운 예속보다 격동적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자 🤡
구일스
4.5
굉장히 신랄하달까.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토대라는 말이 이해가 되는. 그렇다, 나는 미개인이다. 미개인, 미개인.
하루키
4.5
18세기까지 종교, 철학자들은 민중의 대리인 혹은 보호자 역할만 했다. 하지만 루소는 민중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 경제, 사회를 말한 선구자이자 어쩌면 최초의 민중 혁명가였다.
이태경 Lee Taegyeong
3.5
관념으로 도피한 이상주의자의 탁월한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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