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또래 영화 좋아하던 사람들이 정은임의 영화음악을 말할 때면, 꼭 어릴 때 크게 앓았던 병을 회상하는 표정을 짓는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척하는 거 말이다. 주인집 할머니가 죽은 딸 방에 찬실이를 들어가게 해주었다.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가져가라고. 그녀가 가져 나온 카세트에는 정은임씨와 정성일씨의 대화가 녹음되어 있다. 베를린 천사의 시가 떨림이었다면 집시의 시간은 눈물입니다. 누구는 죽었고 누군가는 남았다. 저 대화가 지금껏 남아있는 이유는 정은임씨의 아버지가 딸의 프로그램을 하루도 빠짐없이 테이프로 녹음했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가져온 정성일씨의 달뜬 목소리, 얼마나 달그락거리는지 영화에 대한 사랑이 그대로 전해져 웃었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그가 적은 책 제목 그대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