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Mino

Mino

5 year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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暗殺の森

映画 ・ 1970

平均 3.8

1. 과연 마르첼로는 리노를 죽였을까? 아니면 죽였다고 믿고 싶어 하는 걸까. 과거 성추행을 당했던 기억에서 그 일을  당하고만 있었다는 죄책감에 그를 죽였다고 믿게 된 건 아닐까. 그런 거짓 과거를 품은 채 마르첼로는 멀쩡히 살아있는 리노를 목격한다. 죽은줄 알았던 그에게 과거를 언급하며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어두운 과거와 그의 생존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어느 정도의 용기를 낸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르첼로는 화내는 와중에 사람들에게 리노가 콰드로 부부를 사살한 파시스트라며 콰드로 부부의 죽음은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식으로 책임을 전가한다.  자신을 추행한 성범죄자를 죽였다는 거짓 과거를 만들어낸 것처럼, 그는 또 한번 콰드로 부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리노에게 돌림으로써 파시스트였던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동료인 이탈로를 파시스트라며 사람들에게 떠벌리는 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테다. . 2. 한때 플라톤의 '사슬에 묶인 죄수' 강의를 들은 경험과 베이컨의 '동굴의 우상'을 토대로 반 파시즘을 주제로 졸업논문을 쓰려 했던 마르첼로이지만, (반 파시즘 진영인)콰드로 교수와 거리가 멀어지게 되면서 그는 파시즘에 순종한다.  이윽고 파시즘이 무너지자 그는 파시스트였던 과거는 잊으려는 채 새로운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려 한다.(이는 리노를 콰드로 교수와 안나를 죽인 범인이라 모함하고, 이탈로를 파시스트라며 대놓고 떠벌리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파시스트가 무너지고 이를 환호하는 군중들에 섞이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을 뒤편에서 멀찍이 바라만 보고 있는 마르첼로의 모습은 결국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아웃사이더의 모습이다. 그는 순응을 자처하는 순응자이지만 단 한 번도 그 체제에 제대로 '순응'한 적이 없다. 겉으로만 순응한 척, 일원인 척 겉돌기만 했을 뿐이다. 파시스트를 자처해 비밀경찰이 되었을 때조차 그는 파시즘과 반 파시즘 사이에 서성일뿐이었다. (콰드로 교수의 거짓 편지를 거부한 것에서 드러나듯 그가 진짜 파시스트였다면 오히려 그 편지를 역이용했을 것이다.) 또한 그는 후환이 두려워 안나를 지키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그녀를 자신의 손으로 죽인 것도 아니었다. 보좌관 망가니엘로에게 사부아에 위치한 콰드로교수 저택의 주소를 넘기며 자신의 임무를 떠넘기기까지 했다. 마르첼로는 시대적 격랑에 몸을 내맡기는 척하며 심지어 자신이 믿고 싶어 하는 것만 믿으려 하는 동굴의 우상, 사슬에 묶인 수감자에 불과했다. . 3. 라스트 신을 얘기하고싶다. 침대 위에서 헐벗은 채로 노래를 듣고 있는 호모인 남성을 바라보는 마르첼로의 모습은 마치 창살에 갇혀있는 듯한 동굴 속 그 수감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작은 불씨와 대비되는 어두운 풍경, 그리고 창살은 극중 언급된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를 그대로 구현한 듯하다. ) '동굴의 우화' 속 수감자가 그림자를 실체라고 믿었듯, 마르첼로 또한 진짜 실체를 보지 못하고 거기서 비롯된 그림자를 실체라 믿으며 피상적인 것에 종속된 삶을 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바라보는 나체의 남성은 자유분방한 '나체'의 모습인 동시에 성소수자인 '호모'다. 보편성을 갈망했지만 그 보편성에도 속하지 못하였고 그렇다고 주체성 넘치는 사람도 아니었던 자신과 현저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가 바라보는 대상의 남성이 호모인 점이나, 과거 모자를 벗은 리노에게 다가가는 마르첼로를 담은 앵글 등은 그에게 동성애 성향이 어느정도 있음을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 성정체성을 감추기 위해선 즉, 평범해지기 위해선 이성과의 결혼이 필요했을 것이다.) . 우리는 영화가 마르첼로의 후면이 아니라 창살 너머 호모를 바라보는 그의 측면으로 종료되었다는 것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그의 뒷모습을 마냥 바라보며 주체적인 호모 남성과 대비하면서 끝냈다면 거기엔 절망만 가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가 창살 너머에 있는 남성을 보기 위해 뒤를 돌아보는 것을 끝으로, 이제 자신의 처지를 자각한 것과 더불어 해당 남성처럼 좀 더 주체적인 삶을 살아보겠다는 열망을 그의 눈빛에 소량 담아둔다. 동굴 벽 그림자를 생성케한 불빛을 보기 위해선 수감자는 자신의 등 뒤를 바라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