レビュー
오세일

오세일

6 month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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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aming in Luomu (英題)

映画 ・ 2025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한 이들은 모두 루오무의 부름을 받는다. 무용수 친구의 죽음을 막지 못한 바이, 더 이상 남자를 믿지 않기로 한 리우, 짧은 혀가 부끄러워 스스로 목소리를 거세한 샤오펭. 그런 이들(만)을 초대하는 루오무는 세계 속의 세계이다. 상실이란 경험의 결집으로 유리된 조그마한 소우주. 루오무의 풍경을 구경하기에는 도보로 30분이면 충분하다. 여행이라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작은 규모의 마을. 그래서 관광객들에게 루오무는 마을 외곽의 산에 방문하기 전 숙소로 이용되는 휴식처, 혹은 경유지 정도이다. 하지만 바이는 계속해서 동네의 골목을 거닌다.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마치 무언가에 취한 듯이 목적 없는 방황을 반복한다. 최근까지 루오무에 머물렀던 남자 친구를 우연히 마주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그녀의 남자 친구는 왜 바이보다 3년 먼저 루오무의 부름을 받은 것일까. 루오무의 대지는 역사를 기억한다. 홍수로 인해 침수된 마을의 건물들, 지진의 영향으로 더 높이 솟아난 산의 키, 그보다 더 예전으로 거슬러 간다면 청나라 시절 기병대들이 애용했던 산의 초입 길까지. 어쩌면 바이가 자꾸만 루오무를 반복해서 거니는 행위는 과거의 기억을 복구하는 작업 일지도 모른다. 마을 곳곳에 남아 있는 남자 친구의 흔적, 홍수 이후 아직 재건되지 않은 채 무너져 있는 현장의 모습들을 바라보며 말이다. 바이는 여전히 과거를 잊지 못하는 존재이다(이는 금융맨을 잊지 못한 리우 또한 동일하다). 그래서 루오무는 바이를 불렀다. 루오무에서 점점 바이는 황혼이 되어간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스름해지기 직전의 모습처럼, 바이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초연해지기를 원한다. 하지만 황혼의 끝에서 바이의 과거는 다시 기억 속으로 돌아온다. 여전히 손 떨림과 오한 등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부작용이 그녀의 육신을 지배하며, 루오무의 밖으로 나와 고대했던 남자 친구와의 대면 직전에 바이는 다시 루오무의 안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렇게 그녀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초연해질 수 있는 황혼의 단계를 거치지 못한다. 바이는 여전히 루오무에 결속된 영혼이다. 장률의 영화는 항상 공간을 탐미하는 재미가 있다. 점점 미니멀리즘으로 변해가는 홍상수의 근작들과는 다르게, 장률은 변함없이 관객을 여행객으로 만든다. 영화를 보기 위해 지불한 티켓값은, 사실 루오무로 향하는 비행기의 티켓값이었다. <루오무의 황혼>은 홍상수의 작품으로 치면 <북촌방향>과 비슷하지 않을까. 일상의 풍경으로 메워진 거리를 돌아다니는 유령들, 마치 현실이라기보단 사후세계에 가까워 보이는 공간의 특수성. 익숙했던 길이 그들의 카메라 앞에서는 이질적이게 된다. 관객은 익숙한 듯 동시에 이질적인 그 거리를 보며 서서히 이방인의 정서를 머금는다. 분명 루오무는 탈출해야만 하는 공간처럼 비추어진다. 그곳을 떠난 리우의 애인 황과는 다르게, 여전히 루오무에 갇힌 바이와 리우를 보면 볼수록 더 확신이 든다. 하지만 루오무의 기묘한 매혹을 떨쳐낼 수가 없다. 그래서 장률의 영화는 서늘하게 아름답다. 그 세계에 영원히 갇혀도 나쁘지 않을 것만 같은 최상의 영화적 도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