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H

사랑의 기술
平均 3.8
2년 전이었다. 에릭 프롬을 설명하시던 교수님의 말씀은 아직도 내게 충격적으로 남아 있다. 교수님은 흡사 숫자 8이 가로로 누운 것처럼 칠판에다 동그라미 두 개를 맞붙여 그리시더니, 이것이 곧 사랑이라고 하셨다. 나는 좀 어안이 벙벙해 그 그림만 한참을 바라보았다. 사랑이 얼마나 복잡다단한데 무엇이 저렇게 단순하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이어서 그려진 칠판 속 또 다른 그림 하나를 보고서야 그 동그라미들의 진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앞서 그려진 그림과는 달리 뒤이어 그려진 그림은 동그라미 두 개가 교집합처럼 일부분 겹쳐진 상태였다. 교수님은 그 그림을 가리키시며 보통의 우리는 이 후자의 그림이 사랑인 줄 안다고 덧붙이셨다. 이어서 이처럼 주체와 주체가 동등한 상태로 나란히 붙어 있는 게 아닌, 한 쪽이 어느 한 쪽을 일부분 잠식한 상태는 사랑이 아닌 폭력일 수 있다고도 말씀하셨다. 나는 그날 수업 이후로 꽤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한동안은 머릿속이 복잡해지다가도 또 어느 틈엔 마치 사랑에 답을 찾은 사람처럼 속이 편안해지기도 했다. 당시엔 연애중이었으므로 특히나 그랬다. 마음이 안정적이기 보다는 떠도는 연 마냥 이 바람 저 바람을 다 맞아가며 흔들거렸던 것 같다. 사랑은 꼭 그 그림처럼, 또 마음처럼 그리 쉽게 그려지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내게 좀 특별하다. 나는 이 수업 이후로 아직까지도 '사랑은 이런 것이다'하는 답을 찾진 못했으나(물론 답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근데도 왜 자꾸 있는 것처럼 찾게 되는지), 적어도 '사랑은 이런 게 아니다' 하는 반성적 사고는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됨으로써 나는 관계를 맺고 끊는 일에 있어서 전보다 조금은 더 유연해질 수 있었던 듯하다. 좀 비껴난 얘기지만, '-인 것 같다'거나 '-인 듯하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유독 사랑 앞에선 이 모호한 서술방식이 참 필수불가결한 것 같다. 이는 어떤 생각도 함부로 단정 짓기가 어렵기 때문일 거다. 사랑은 네 잘못인 것 같다가도 돌아보면 내 잘못이고, 성숙했다고 생각함에도 되새기면 한없이 유치하고 창피해지기도 하니까. 정말 너무나 알 수 없고, 알 수 없어서 쾌락적인 일이다. 그건 그렇고, 사실 에릭 프롬에게서 새겨 들을 말은 이 뿐만이 아니다. 사랑은 수동태가 아닌 능동태이며, 그러므로 받는 것이 아닌 주는 것이란 말. 이 말은 내가 참 좋아한다. 숨는 사람보다 용기 내는 사람이 얼마나 멋있어지는 말인가. 항상 친구들이 사랑을 고민해 올 때면 난 에릭 프롬의 이 말을 부적처럼 건네곤 했다. 솔직히 그들의 사랑은 나의 영역을 벗어난 오직 그들만의 일이지만, 용기 내는 사람이 끙끙 앓다 되려 초라한 사람이 되는 걸 코앞에서 두고 볼 수도 없지 않은가. 그 부적의 효력이 매번 얼마나 갈지는 몰라도, 그저 또 다른 고민으로 나를 찾을 친구들에게 앞으로도 꽤 요긴한 힘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