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1 사랑은 기술인가?
2 사랑의 이론
3 현대 서양 사회에서 사랑의 붕괴
4 사랑의 실천
미주
출간 50주년에 부쳐 - 에리히 프롬의 삶과 사랑
옮긴이의 말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 自己開発/人文学/エッセイ
2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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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인류의 영원한 화두인 사랑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프롬이 던진 이 질문은 《사랑의 기술》이 출간된 지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의 의미를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사랑의 기술》은 1956년 첫 출간 이후 34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전 세계에서 수백만 부 이상 판매되면서 우리 시대의 대표적 스테디셀러이자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프롬은 가장 능동적으로 자신의 퍼스낼리티 전체를 발달시켜 생산적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아무리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없는 한, 또한 참된 겸손, 용기, 신념, 훈련이 없는 한 개인적인 사랑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책에서 말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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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訳者
レビュー
750+目次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단순히 강렬한 감정만이 아닌,
결의이자 판단이고 약속이다!
《사랑의 기술》 개정 5판 출간
에리히 프롬의 마지막을 함께한 라이너 풍크 박사의
《사랑의 기술》 50주년 기념판에 부치는 글 수록
‘사랑’은 기술인가? 독일 태생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인류의 영원한 화두인 사랑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프롬이 던진 이 질문은 《사랑의 기술》이 출간된 지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의 의미를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사랑의 기술》이 얼마나 많은 독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는지는 1956년 첫 출간 이후 34개 언어로 번역되었다는 사실과, 전 세계에서 수백만 부 이상 판매되면서 우리 시대의 대표적 스테디셀러이자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문예출판사에서는 이번에 새로운 표지로 바꾼 《사랑의 기술》 개정판을 출간했다.
사랑에 성공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프롬은 사랑을 흔히 생각하는 ‘감정’의 영역이 아닌 ‘기술’의 측면에서 접근한다.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갈구하지만, 사랑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사회관계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 연인들 사이에서 ‘사랑’이 자취를 감추고 ‘관습’과 ‘계산’이 대신 들어서 있다.
프롬이 지적하고 있듯이 현대 사회가 시장의 교환 원칙에 지배받고 있고, 따라서 인간의 가치도 결국 경제적 교환 가치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은 인간의 사랑을 고갈시킨 외부적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외부적 요인에 더해 프롬은 개인의 무의식층까지 파고들어가 사랑의 능력을 상실한 이유를 밝혀낸다. 프롬은 인간이 참된 자아를 상실한 것이 사랑을 상실한 원인이라 진단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아의 상실, 즉 사랑하는 능력의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형이상학적 천착이나 종교적 설교, 도덕적 교훈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나 자신, 타인, 인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모든 인간을 사랑하라고 외쳐도, 또 모든 사람이 이러한 외침에 진심으로 공감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사랑의 부재 현상이 극복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랑하려고 하면 할수록 사랑에 실패하고 점점 더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되고, 점점 더 고립되고, 점점 더 뼈저린 고독을 느끼게 된다. 마침내 사랑하려는 노력의 실패는 사람에 대한 공포를 일으키고 자기 자신의 무능력을 은폐하기 위한 합리화에 급급하게 만든다. 분리 상태에서 불안과 고독이 두려우면서도 이 상태를 벗어날 길이 없다.
그렇기에 사랑은 자연적인 일이 아니라 기술적 문제가 된다. 사랑은 신이 준 능력이므로 우리가 느끼는 대로 행동하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안이한 대답을 하기에는 현대 사회와 인간은 너무나 복잡하고 교묘해졌다. 그러므로 이제 사랑을 회복하는 데는 절실하게 기술이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프롬은 우리가 사랑하려고 애쓰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는 진실한 사랑을 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실패하는 원인은 기술의 미숙성에 있다고 말한다.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이 점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사랑의 기술을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 밝혀놓았다. 프롬은 가장 능동적으로 자신의 퍼스낼리티 전체를 발달시켜 생산적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아무리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없는 한, 또한 참된 겸손, 용기, 신념, 훈련이 없는 한 개인적인 사랑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한다. 《사랑의 기술》에는 사랑에 대한 이론이나 사랑을 실천하는 기술 외에도, 뛰어난 정신분석학자였던 에리히 프롬의 현대 문명과 현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전망도 담고 있다.
라이너 풍크 박사의 50주년 기념판에 바치는 글 수록
또한 이 책에서는 에리히 프롬의 사회심리학 및 윤리학에 관한 논문으로 학위를 취득했고, 프롬의 마지막 조수이자, 프롬의 문헌과 관련된 저작권 및 사후 문헌의 유일한 관리자로서 프롬 전집을 발행한 라이너 풍크 박사가 《사랑의 기술》 50주년을 기념해 쓴 〈에리히 프롬의 삶과 사랑〉을 수록했다. 프롬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켜본 라이너 풍크 박사는 이 후기에서 프롬의 생애를 다루면서 프롬 자신은 어떻게 사랑했는지, 자신의 저서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얼마나, 어떻게 실천하면서 살았는지를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SH
4.5
2년 전이었다. 에릭 프롬을 설명하시던 교수님의 말씀은 아직도 내게 충격적으로 남아 있다. 교수님은 흡사 숫자 8이 가로로 누운 것처럼 칠판에다 동그라미 두 개를 맞붙여 그리시더니, 이것이 곧 사랑이라고 하셨다. 나는 좀 어안이 벙벙해 그 그림만 한참을 바라보았다. 사랑이 얼마나 복잡다단한데 무엇이 저렇게 단순하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이어서 그려진 칠판 속 또 다른 그림 하나를 보고서야 그 동그라미들의 진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앞서 그려진 그림과는 달리 뒤이어 그려진 그림은 동그라미 두 개가 교집합처럼 일부분 겹쳐진 상태였다. 교수님은 그 그림을 가리키시며 보통의 우리는 이 후자의 그림이 사랑인 줄 안다고 덧붙이셨다. 이어서 이처럼 주체와 주체가 동등한 상태로 나란히 붙어 있는 게 아닌, 한 쪽이 어느 한 쪽을 일부분 잠식한 상태는 사랑이 아닌 폭력일 수 있다고도 말씀하셨다. 나는 그날 수업 이후로 꽤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한동안은 머릿속이 복잡해지다가도 또 어느 틈엔 마치 사랑에 답을 찾은 사람처럼 속이 편안해지기도 했다. 당시엔 연애중이었으므로 특히나 그랬다. 마음이 안정적이기 보다는 떠도는 연 마냥 이 바람 저 바람을 다 맞아가며 흔들거렸던 것 같다. 사랑은 꼭 그 그림처럼, 또 마음처럼 그리 쉽게 그려지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내게 좀 특별하다. 나는 이 수업 이후로 아직까지도 '사랑은 이런 것이다'하는 답을 찾진 못했으나(물론 답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근데도 왜 자꾸 있는 것처럼 찾게 되는지), 적어도 '사랑은 이런 게 아니다' 하는 반성적 사고는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됨으로써 나는 관계를 맺고 끊는 일에 있어서 전보다 조금은 더 유연해질 수 있었던 듯하다. 좀 비껴난 얘기지만, '-인 것 같다'거나 '-인 듯하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유독 사랑 앞에선 이 모호한 서술방식이 참 필수불가결한 것 같다. 이는 어떤 생각도 함부로 단정 짓기가 어렵기 때문일 거다. 사랑은 네 잘못인 것 같다가도 돌아보면 내 잘못이고, 성숙했다고 생각함에도 되새기면 한없이 유치하고 창피해지기도 하니까. 정말 너무나 알 수 없고, 알 수 없어서 쾌락적인 일이다. 그건 그렇고, 사실 에릭 프롬에게서 새겨 들을 말은 이 뿐만이 아니다. 사랑은 수동태가 아닌 능동태이며, 그러므로 받는 것이 아닌 주는 것이란 말. 이 말은 내가 참 좋아한다. 숨는 사람보다 용기 내는 사람이 얼마나 멋있어지는 말인가. 항상 친구들이 사랑을 고민해 올 때면 난 에릭 프롬의 이 말을 부적처럼 건네곤 했다. 솔직히 그들의 사랑은 나의 영역을 벗어난 오직 그들만의 일이지만, 용기 내는 사람이 끙끙 앓다 되려 초라한 사람이 되는 걸 코앞에서 두고 볼 수도 없지 않은가. 그 부적의 효력이 매번 얼마나 갈지는 몰라도, 그저 또 다른 고민으로 나를 찾을 친구들에게 앞으로도 꽤 요긴한 힘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
스윗듀
4.0
*현대인들이 사랑을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 (사랑보다 쉬운 것은 없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이유) 1. 사랑의 문제를 ‘사랑받는’문제로 생각함.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2. 사랑의 문제를 ‘사랑할 대상’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함. -사랑할 올바른 대상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함. 3. 사랑을 하게 되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에 머물러있는 상태를 혼동함. 이러한 태도를 극복하기 위해 사랑도 기술이라는 점을 깨달아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에 대한 이론을 습득하고, 사랑에 대한 실천을 습득하고, 사랑에 대한 기술을 숙달시키는 것을 궁극적인 관심사로 삼아야한다. 분리되어 있는 인간들에게 결합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은 죄책감과 불안의 원천이며 수치심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아주 절실하게 이러한 분리상태를 극복해서 고독이라는 감옥을 떠나고자 한다. 그러므로 사랑은 인간의 실존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 성숙한 사랑은 자신의 통합성, 곧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 있어서의 합일이다. 곧 인간을 타인과 결합시키는 힘이며 사랑에 있어서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므로 능동적이다. 준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것, 빼앗기는 것,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주는 것은 잠재적 능력의 최고의 표현이다. 주는 행위에서 나는 나의 힘, 나의 부, 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고양된 생명력과 잠재력을 경험하고 매우 큰 환희를 느끼게 된다. 여기서 주는 것은 물질적인 영역이 아닌 각별히 인간적인 영역으로, 자기 자신, 내가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것, 다시 말하면 생명을 주는 것이다. 이 말은 남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것을 준다는 뜻이다. 자신의 기쁨, 자신의 관심, 자신의 이해, 자신의 지식, 자신의 유머, 자신의 슬픔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주는 행위로서의 사랑의 능력은 그 사람의 성격발달에 달려 있다. 자신의 인간적 힘에 대한 믿음, 곧 목표달성에 있어서 자신의 힘에 의존하는 용기가 결여되어 있는 정도에 따라, 인간은 자기 자신을 주는 것, 따라서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숲
5.0
인간은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상에서 벗어나 그 스스로가 자신의 부모가 되어야 한다
MinniePie5555
5.0
원제는 사랑의 기술이 아니라 Art of loving 즉 사랑의 예술입니다. 대체 왜 그렇게 번역이 됬는지 모르겠지만 기술이 별로 쓰여있지 않다거나 기술적으로 사랑에 접근한다는 비판은 제목이 오역이니 따라서 무용하네요. 저는 5점을 줬습니다만 그건 전적으로 원서에 관한얘기고 이 번역은 0.5점도 아깝네요. 원본이 담아낸 사랑에 대한 경이와 단순함이 번역자의 '지식인들의 단어 전시'로인해 완전히 망가졌다고 봅니다. 실제로 원서를 보면 굉장히 심플하게 글을 써놓았고, 그 문장과 단어의 간략함에서 깊은 감동을 받게 됩니다. 에리히 프롬이 하고자하는 말은 간단합니다. 사랑은 예술이다. 그러나 에리히 프롬의 말하는 예술은 단지 그림이나 시같은 것에 한하지 않습니다. 그가 말하는 예술은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 그러니까 전적으로 자신을 내어 주고 또 그 행위로부터 무언가가 창조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임신과 출산, 가구장이, 농부,.. 이 모두가 에리히 프롬의 그 예술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이라는 것도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저 한사람이 사랑받는 행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어주고, 받아들이고 또 그 사이에서 무언가가 움트는 것. 에리히 프롬은 단지 그걸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훈
3.0
미성숙한 사랑은 '그대가 필요하기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랑은 '그대를 사랑하기에 나는 그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p.62
은혜
3.5
좋은 글이긴 하지만 too idealistic +여성성, 남성성에 대한 명확한 분류와 강조, 모성애의 강조가 좀 불편함
최일섭
4.0
사랑은 일심동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의 합일’이다. 따라서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조건이 된다. 만약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나머지 동포에게는 무관심하다면, 그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공서적 애착이거나 확대된 이기주의다. 문제는 사람들이 세계에 대항하는 두 사람 사이의 동맹을 형성하고, ‘두 사람만의’ 이기주의를 사랑과 친밀감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프롬은 사랑을 사적이고 주변적인 것으로만 취급하는 사회는 구조적으로 변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Minsun Kim
4.5
결국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기술을 배우는 시작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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